요즘 힙합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특유의 허세, 자랑, 취향 등을 뜻하는 ‘스왜그’이겠지만, 내게 더 강렬하게 다가오는 단어는 존경, 존중을 뜻하는 ‘리스펙트’다. 음악평론가 강일권은 힙합에서의 ‘리스펙트’가 특정인의 인격, 행위, 업적에 대한 존경, 나 이외 다른 사람의 가치와 고유성을 인정하는 존중의 두 가지 뜻을 지닌다고 본다. 예를 들어 홍서범은 ‘한국 최초의 랩’이라 할 수 있는 ‘김삿갓’(1989)을 발표해서 존중받을 만하지만, 그가 이후 한국 힙합에 미친 영향이 크지 않고 오늘날 듣기엔 조금 촌스럽다는 점에서 존경하지 않을 수 있다. 힙합의 리스펙트란 이처럼 오묘하고 복잡한 개념이지만,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인정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영화 <남한산성> 스틸 이미지
영화 <남한산성>을 보면서 선조들의 리스펙트를 느꼈다. 신흥대국 청의 대군이 남한산성 앞에 진을 친 채 기세를 올리고 있다. 좁은 성안의 신하들은 인조를 가운데 두고 갑론을박한다. 그 중심에는 최명길과 김상헌이 있다. 청과의 협상을 주장하는 최명길은 소수파, 항전을 주장하는 김상헌은 다수파다. “상헌의 말은 지극히 의로우나 그것은 말일 뿐입니다. 상헌은 말을 중히 여기고 생을 가벼이 여기는 자이옵니다.”(최명길) “전하, 죽음이 가볍지 어찌 삶이 가볍겠습니까. 명길이 말하는 생이란 곧 죽음입니다. 명길은 삶과 죽음을 구분하지 못하고, 삶을 죽음과 뒤섞어 삶을 욕되게 하는 자이옵니다.”(김상헌) 이처럼 둘의 대립은 외교관의 차이를 넘어, 삶과 죽음, 현실과 이상의 충돌로 이어진다. 임금의 말 한마디에 명예, 심지어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상황이니 둘의 혀는 칼이 돋친 듯 날카롭다.
상황이 여의치 않자 최명길은 조정에 나오지 않고 칩거한다. 마당의 눈을 쓸던 최명길은 자신을 찾아온 김상헌과 마주친다. 둘은 공손히 인사한다. 이 인사에는 입장이 다른 상대방에 대한 최대한의 존중이 담겼다. 전세가 기울자 임금은 상헌에게 화친의 편지를 쓰라고 명한다. 그 굴욕을 대신 감내하겠다고 나서는 이는 명길이다. 명길은 임금에게 조정에 돌아가면 상헌을 내치지 말고 가까이 두고 쓰라고 간곡히 진언한다. 상헌이 충신임을 알아보는 이 역시 그와 목숨 걸고 싸운 정적 명길뿐이다.
26일, 그러니까 박정희가 세상을 뜬 지 38년째 되는 날에 개봉하는 <미스 프레지던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몰락 과정을 지켜보는 박정희·육영수 팬들을 그린 다큐멘터리다. 김재환 감독의 전작 <MB의 추억>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 ‘아무 말’이나 내뱉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그에 열광한 유권자들을 통렬히 풍자한 영화였다. <미스 프레지던트>도 그런 풍자 영화가 아닐까 짐작했다. 틀렸다. 지난 5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미스 프레지던트>를 처음 봤을 때 든 느낌은 ‘처연함’ 혹은 ‘슬픔’이었다.
영화에 나오는 이들은 맑은 얼굴의 촌부, 맛있고 싼 음식을 차려 내놓는 식당주인이다. 촌부는 새벽에 일어나 옷을 갖춰입고 박정희 초상에 배례한다. 식당에는 박정희, 육영수의 사진이 잔뜩 붙어 있는데, 손님들이 아무리 떼어내라고 성화를 부려도 주인은 웃어넘긴다. 그들에게 박정희는 못 먹고 못살던, 그래서 이름조차 없던 자신들을 주체로 호명한 지도자였다. 산업역군, 새마을역군 같은 이름을 붙여 자부심을 부여한 은인이었다. 이들에게 박정희 집권 이전과 이후의 경제성장률이 별 차이 없다는 ‘팩트’를 들이대도 소용이 없다. 박정희의 뒤를 이은 박근혜가 탄핵되자, 이들은 가족이라도 잃은 듯 시름시름 앓는다.
<미스 프레지던트>는 이들을 조롱하지 않는다. 탄핵반대집회에 태극기와 성조기 들고 나섰으나, 단상에 올라 악쓰지는 않은 사람들을 묵묵히 지켜본다. 그리고 그들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해보려 노력한다.
시인 김지하는 “풍자냐 자살이냐” 물었다. 그는 자신의 질문에 자답하듯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을 ‘오적’이라 칭하는 풍자시로 시대를 뒤흔들었다. 실로 그때는 풍자의 시대였다. <MB의 추억>이나 ‘나꼼수’도 필요할 때 정확히 나타난 풍자였다. 탄압받으면 받을수록, 풍자의 힘은 세졌다. <해리포터>의 ‘리디큘로스’ 마법처럼, 악하고 무시무시한 자들을 우스꽝스럽고 보잘것없게 변신시켜 힘을 약하게 한 것이 풍자였다.
지금도 풍자가 유효한가. 알 수 없다. 다만 <남한산성>의 명길과 상헌이 서로를 대한 태도, <미스 프레지던트>가 박정희·육영수 지지자들을 바라보는 태도는 풍자와 거리가 멀다. 마주보기조차 싫은 상대를 어떻게든 이해해보려는 태도, 그들의 입장을 그대로 존중하는 태도다. 물론 이는 갖추기 쉽지 않은, 엄청난 수양이 필요한 태도다. 그리고 시대의 앞길은 어려운 길을 택한 사람에게 먼저 열린다.
<백승찬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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