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중후반부터 20, 30대가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서울의 대학가주변이나 특정 지하철역 주변 상권이 빠른 속도로 고급화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고기 뷔페’나 음식점 간판이 자리를 차지하던 거리에, 세련된 분위기의 카페 간판들이 등장해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를 두고 어떤 이들은 “요즘 젊은 애들은 돈 아까운 줄 모르고 오천원짜리 커피를 사 마신다”며 불만을 토로했고, 또 어떤 이들은 서울에서도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도시 재활성화)이 시작됐다며 새로운 창업 아이템을 제안하기 바빴다. 오세훈 전 시장이 ‘디자인 서울’을 외치며 간판 정비 사업에 뛰어 든 것도 이 시점이었다.
이런 변화의 흐름에 가장 촉각을 곤두세운 이들은 은퇴를 하거나 앞둔 베이비붐 세대의 중산층이었다. 그들은 빵과 커피에서 노후 보장의 가능성을 발견하고선 이 지역에 프랜차이즈 브랜드 간판을 내걸고 가게 문을 열었다. 이들이 선호한 업종은 나름의 공통점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은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드는 반면 아르바이트생 고용만으로도 충분히 운영이 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특정한 기호 식품을 주력 상품으로 내걸었지만 실제로 거래되는 대상이 ‘집’의 특정 기능을 외부화한 공간이라는 점이었다. 이를테면 카페는 커피를 미끼 상품으로 내걸고 일정 시간 공간을 빌려주는 업종, 즉 초단기 부동산 임대업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높은 비용을 지불하며 이 공간들을 임대한 이들은 누구였을까? 그들 상당수는 ‘이해찬 세대’로 불리다가 등록금 대폭등의 시대에 대학을 졸업한 뒤 당시 막 ‘88만원 세대’라고 불리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이들,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는 ‘삼포 세대’라고 불리게 될 이들이었다. 삼포 세대란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를 의미하는 신조어였지만, 실질적으로는 고도성장기의 대졸자들이 ‘연애, 결혼, 출산’을 관통하면서 인생의 중간 목표로 설정하곤 했던 ‘내집 마련’의 꿈을 포기한 세대를 뜻하는 것이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이전 같았으면 결혼 후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아파트 분양광고를 눈여겨볼 나이였으나, 여전히 미혼의 상태로 ‘월세방’을 전전하는 중이었다.
저임금과 저금리와 고분양가의 시대가 강요한 삶. 그들 중 일부가 집을 포기하는 대신에 골몰하기 시작한 것이, 잠시만이라도 ‘지지리 궁상’의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소박한 사치’의 비법들을 창안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들이 돈을 쓰는 방법은 대학 입학 이후 ‘방’에서 생활한 연차만큼이나 다양하게 가짓수를 늘려갔을 테고, 그들이 누리는 취향 역시 느린 속도이지만 조금씩 세련되어졌을 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거나 주말마다 모이는 지역을 중심으로, 집의 기능을 외부화한 방들의 임대업이 단순히 번창하는데 그치지 않고 빠르게 고급화된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집’을 장만할 능력은 없었지만, ‘방’을 빌릴 여력, 그리고 그 방의 급수를 따질 안목은 가지고 있었으니까.
문제는, 삼포 세대의 또 다른 이름인 ‘에코 세대’가 암시하듯이, 이들을 주요 고객으로 ‘방 임대업’을 벌이고 있는 베이비붐 세대의 중산층이 바로 이들의 부모 세대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부모-자녀 세대 간에 매우 기괴한 돌려막기 경쟁이 벌어지고 있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지금도 진행 중인 이런 식의 경쟁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부모 세대가 보유한 아파트 한 채가 보잘것 없는 자영업 생존율 앞에서 담보물로서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기 이전까지? 아니면 자녀 세대가 자신의 노동력을 적정 가격에 판매할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고안해 내기 이전까지? 아무래도 전자의 가능성이 더 현실적인 예측처럼 보이는 것은 내가 이미 ‘꼰대’가 되어 버렸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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