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 희망을 만드는 ‘연대’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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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생각꺼리

[문화비평] 희망을 만드는 ‘연대’의 힘

대형마트의 여성 노동자들이 퇴근하기 전 소지품 검사를 받는다는 뉴스는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고발되면서 문제가 해결되는 듯 보인다. 눈물을 흘리며 삭발 투쟁을 하고, 아무것도 없는 굴뚝 위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하는 파업노동자는 살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신문과 방송들은 왜 그 높은 곳에 올라갔는지보다 올라간 행위의 불법성과 처벌 가능성을 보도하는 데 더 집중한다.

무관심한 세상에 자신의 문제를 알리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방법은 노골적으로 나 자신을 드러내는 방법뿐이다. 하지만 파업 과정에서 드러나는 문제는 대중에게 부정적 이미지로 각인되기에 이른다. 우리 모두는 스스로를 책임지기에도 벅차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시대, 경쟁과 순응이라는 메커니즘이 사회에 내면화되면서, 내 문제가 아닌 일에는 무관심으로 대응하는 것은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비정규직의 증가와 부당한 정리해고 문제가 정말 나와는 상관없는 일인지,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무조건 참고 열심히 일하는 것만이 안전한 나의 미래를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인지에 대해 적극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이러한 의구심에 질문을 던지는 드라마가 근래 계속 제작·방송되고 있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 위기에 처한 노동자들의 현실을 모른 척하고 지나치는 삶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뉴스나 탐사·고발 프로그램이 아니라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되면서, 오히려 더 많은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 내고 있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카트>는 비정규직법 시행을 전후로 부당한 정리해고에 맞서는 대형마트 노동자들의 파업을 다뤘고, 지상파 드라마 <어셈블리>는 조선소 해고노동자인 주인공이 국회의원이 되어 현실정치에 개입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노동현장과 노동정책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평가받기도 했다.



대형마트 계산원인 주인공 지니는 ‘삶을 부정해야만 가능해지는 삶’을 살아간다. 사진은 비정규직의 투쟁을 그린 영화 <카트>의 한 장면._경향DB



동명의 인기 웹툰을 드라마로 제작해 화제가 되기도 했던 <미생>은 회사원들의 애환과 함께 본격적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시청자들의 큰 공감을 얻었다. 열심히 일해도, 아무리 참고 견뎌도 비정규직을 벗어날 수 없는 주인공 장그래의 상황은 많은 사람들이 차마 말 하지 못했던,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대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방송 중인 JTBC 드라마 <송곳>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관리자, 매장 관리 노동자, 파견 노동자 등 대형마트에서 일하고 있는 모든 직원이 회사의 불합리한 조건과 회유에 흔들리는 모습을 통해 순응하고 참는 방법만을 배운 우리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게 노동환경의 현실적 문제와 부당함에 맞서는 이야기들은 모두 공통적 특징이 있다. 인간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다. <카트>의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파업 과정에서도, <어셈블리>의 주인공이 현실정치에 개입하는 과정에서도, <송곳>의 주인공 이수인이 대형마트 내에 노동조합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 원동력은 바로 사람들 간의 신뢰와 믿음이었다.

신자유주의는 우리를 개별화시키고 파편화시킨다.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자신의 삶 속에서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은 인내하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열심히 노력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달콤한 말은 존재하지 않는 사막의 오아시스일 뿐이다.

선진국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배우는 인권, 노동법, 노동조합 등의 문제를 우리는 외면해야 하는 것, 불법적인 활동을 하는 조직이라고 배워왔다. 따라서 부당한 회사의 처우에 직면했을 때 적극적인 대처, 나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우리는 너무 늦게 알게 된다.

그렇다면 어두운 터널과 같은 지금의 현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우리는 완벽한 이성적 인간이 아니라 ‘시시한 약자’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시시한 약자이기에, 함께해야만 내 문제가 무엇인지, 우리의 문제가 무엇인지 문제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의 불안함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함께 ‘연대’해야만 한다는 것을 <송곳>은 이야기한다.

학교, 군대, 회사 등 자신이 경험한 모든 조직의 부당함을 고발하기 위해 혼자 외롭게 싸웠던 <송곳>의 주인공 이수인은 대형마트 노동자들과 함께 연대하면서 비로소 희망의 빛을 발견하게 된다. 굴뚝 위에서 자신의 부당함을 외쳐야만 한 노동자가 겪고 있는 삶의 무게를 볼 수 있는 냉소적이고 무관심한 사회가 아니라 함께 분노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인공 이수인의 말은 송곳처럼 마음의 한편을 찌른다.

“저는 사람에게 실망하지 않습니다.”



이종임 | 고려대 미디어학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