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5일 첫 방송을 시작한 KBS 2TV <개그콘서트>의 ‘민상 토론’이 세간의 화제를 모으고 있다. 한동안 TV에서 ‘정치 풍자’를 보기 어려웠던 국내 방송 환경을 고려해 본다면 파격적인 시도다. ‘민상 토론’에서는 뉴스 프로그램에서도, 신문 지면에서도 다루기 쉽지 않은 우리 사회의 정치·사회 문제들을 전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문제들을 정확하게 설명한다는 점은 놀랍기까지 하다.
‘민상 토론’이 들고나오는 주제와 이와 관련된 사안들 그리고 그 사안들에 대한 정책적 대안까지. 마치 진짜 정치토론 프로그램을 보는 듯하다. 우리 모두가 알면서도 외면하고 침묵해 왔던 문제들을 개그 프로그램에서 들고나왔다는 점을 높이 사야 하며, 또 시의적절한 사안들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는 점 역시 우리가 주목하고 칭찬해야 할 점이다. 이렇게 저돌적이고 명확한 정치 풍자가 가능하다는 것을 시청자에게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프로그램이 갖는 사회적 의미는 충분하다.
이와 더불어 시청자들의 관심을 끄는 또 다른 이유는 ‘민상 토론’의 패널들로 나오는 출연자들이 만들어 내는 웃음코드의 ‘생경함’일 것이다. 사회자가 질문을 던질 때마다 당황하며 허둥대는 출연자들의 모습은 ‘민상 토론’의 중요한 웃음 유발 요인이다. 또 출연자들이 곤혹스러운 순간을 피하기 위해 내놓는 답변들은 사회자가 모두 정치적 의견으로 변질시켜 버린다. 이런 황당한 상황은 오히려 웃음을 유발한다. 즉, 정치의 ‘정’자도 모를 것 같은 출연자에게 전문적 대안을 제시하라는 이 상황, 모든 일상적 말과 행동이 정치적 기준으로 해석되는 기형적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웃음으로 유발되는 포인트다.
그렇다면 이러한 ‘황당함’ ‘생경함’이 유발하는 웃음에 우리는 왜 공감하는가? 아마도 그 이유는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강요’와 ‘정보의 왜곡’ 때문일 것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민상 토론’ 속 상황을 조금 더 들여다보자.
개그맨 유민상이 지난 3월 서울 삼청동 만정에서 열린 코미디TV ‘맛있는 녀석들’ 제작발표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사회자는 출연자에게 느닷없이 우리 사회의 정치·사회적 현안에 대해 의견을 말하라고 다그친다. 하지만 사회자가 던지는 주제들은 출연자가 의견을 낼 수 있는 문제라기보다는 ‘불안’을 증폭시키는 기제일 뿐이다.
불안감에 위축된 출연자의 의견은 곧바로 사회자의 입맛에 따라 각색된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출연자들은 결국 아무런 이야기를 할 수 없게 된다. 다른 사람을 웃기는 일에만 온 관심이 있는 개그맨, 즉 비전문가에게 정치적 의견을 묻고, 대안을 제시하라는 방식은 문제 해결의 의지보다는 그들의 당황스러움을 즐기는 ‘선정적 즐거움’만을 생산할 뿐이다.
말 못하는 상황에 놓인 사람의 곤혹스러움을 즐기는 방식은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은 우리 사회를 닮아 있다.
‘민상 토론’의 출연자들처럼 토론이 가능한 ‘장’이 만들어져도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와 자유가 보장되기 어려운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이 코너의 출연자가 겪고 있는 ‘불안감’은 웃음으로 희화되고 있지만 알 수 없는 씁쓸함이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 불안에 대한 공감일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민상 토론’의 출연자들은 서로에게 말할 기회를 미루며,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 표명을 두려워한다. 강요된 상황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말하게 되는 출연자의 의견은 사회자의 진행에 필요한 수단,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사회 문제에 대해 ‘사유하고 고민할 시간’은 출연자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사회자의 일방적인 판단과 단정만 있을 뿐이다. 심지어 프로그램 내용을 책임져야 할 PD는 이 문제와 관련 없으며, 지금 출연자가 말한 정치적 의견은, 개인적인 의견임을, 해당 프로그램과 전혀 관련이 없음을 사회자는 계속 강조한다.
정치토론 프로그램이라는 ‘장’이 만들어지고, 그 안에서 논의를 진행했어도 모든 책임은 ‘개인’에게 돌려진다.
이렇게 개인에게 모든 사회적 책임을 넘기는 상황은 슬프게도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결국 ‘민상 토론’에서 재현되는 발언의 기회 제공 방식, 사회자의 제멋대로 해석, 방청석(여론)을 감시하고 있는 검은 선글라스의 사나이, 책임지지 않는 언론의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다면, 그들의 토론은 의미 없이 겉돌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우리가 토론해야 하는 것은 정치적 문제에 대한 획일화된 책임 공방이 아니라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그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우리는 ‘민상 토론’의 출연자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지금은 <개그콘서트>의 ‘침묵 깨기’ 시도를 관망하기보다는 동참해야 할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종임 | 고려대 미디어학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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