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찬 한국외대 교수·문화연구
지난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을 방문해 특별강연을 했다. 사상 처음으로 현직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대학을 방문한 것인데, 현 정부 들어 지난 몇 년간 사회적 소통 불능의 문제가 크게 부각된 상황에서, 한국의 젊은이들을 대하는 미국 대통령의 커뮤니케이션 방식과 능력은 과연 어떨지 커뮤니케이션과 문화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자못 궁금했다.
이날 그가 다룬 주제는 예상과 달리 매우 무거웠다. 거의 모든 관계자들이 한국 교육의 우수성이나 세계무대에서 한국 젊은이들의 역할 등에 대해 연설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시종일관‘핵 없는 세상’에 관한 자신의 비전을 쏟아냈다. 핵안보정상회의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배경을 감안하더라도, 이날 그가 북한과 이란에 단호한 메시지를 보내는 경로로 한국 대학생들과의 대화라는 장을 택한 것은 의외였다. 하지만 마이크가 켜져 있는 줄 모르고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나눈 대화에서도 드러났듯이 그 역시 재선에 신경을쓸 수밖에 없는 정치인이기에, 이날 그의 특강은 한국 젊은이들과의 만남이라는 순수한 명분 외에 정치·외교적 판단 또한 덧씌워져 있음을 보여준 셈이다.
한국외국어대ㅣ출처:경향DB
그런데 그의 연설 내용에 대한 논의와는 별도로, 이날 그의 스피치는 다른 측면에서 필자를 포함한 청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가 뛰어난 연설가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앞서가는 한국의 디지털 문화와 대중문화를 언급하는 대목에서 상대 국가의 문화를 존중하는 태도와 진정성이 충분히 느껴졌다는 점이다. 그것만으로도 그의 연설은, 아니 대통령으로서 그는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정치적 스탠스가 각양각색인 수많은 청중 앞에서 그 이데올로기적 차이를 넘어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이런 인상적인 스피치를 할 수 있는 힘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가 강조하는 교육, 폭넓은 독서, 다양한 경험, 타고난 성품과 인격, 지도자로서의 자질과 비전, 아마 이 모두 다 중요할 것이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무엇보다 제도권 교육과 가정에서의 교육이 중요하며 그 오랜 교육의 과정을 통해 어린 시절부터 한 개인이 축적하는 문화자본과 아비투스(내재적 경향성)가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는 케냐에서 유학온 아버지와 백인인 미국인 어머니로 이루어진 가정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인도네시아와 하와이에서 보냈다. 또 나중에는 한부모 가정에서 자라게 되었는데 그의 성장기에 형성된 정서구조가 ‘담대한 희망’과 같은 명연설을 가능하게 했을 뿐 아니라 미국 대통령이 되는 데도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외국어와 악기 연주에 대한 동경뿐 아니라 다름에 대한 인정, 외국 문화에 대한 관대한 수용과 외국의 교육 시스템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추구하는 진지한 태도도 이때 형성되기 시작했을 것이다. 문화연구 분야의 석학인 제임스 캐리 미 일리노이대 교수는 일찍이 ‘문화로서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설파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커뮤니케이션은 어원상 커뮤니티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 개념으로, 단순히 메시지나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의례(ritual)를 통해 의미를 교환하고 공유하는 행위다. 따라서 커뮤니케이션은 기존의 단선적인 모델을 벗어나 문화의 영역을 포괄하는 것으로 확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커뮤니케이션 과정과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화적 접근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오바마의 스피치를 이해하는 데에도 문화적 접근이 요구된다. 그의 스피치가 비록 처음에 예정했던 것처럼 대화가 아니라 일방향적이었기에 아쉬움은 있지만, 그가 보여준 한국의 문화·교육·경제에 대한 이해의 폭과 존중심은 그가 어떠한 문화적 환경에서 성장해왔는지를 보여주며, 동시에 감동적인 커뮤니케이션은 현란한 수사가 아니라 깊이 있는 문화적 소양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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