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읽지 않는 시대라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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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생각꺼리

시를 읽지 않는 시대라지만

시를 읽지 않는 시대에 관해서는 이미 적지 않은 이들이 그러한 현상과 흐름의 배경을 짚어낸 바 있다. 정신없이 돌아가며 과도하게 노동하고 소비하는 삶 속에서, 시라는 존재는 어쩌면 이미 화석화되고 ‘잉여스러운’ 대상이 된 듯도 하다. 누군가는 일갈할지 모른다. 그깟 시 몇 구절로는 젖은 손수건도 말리지 못하며, 굳은 관성과 예단에 틈을 낼 수도 없다고. 스마트폰이 순식간에 가져다주는 정보와 쾌락의 바다에서, 소비와 스노비즘이 새로운 상식이 된 삶의 낯익은 풍경 속에서 시란 존재는 독자를 끌 수 있는 힘을 잃었고, 독자는 자신의 귓가에 와서 속삭이는 숱한 광고와 홍보, 그리고 선동과 부추김 속을 부유하기도 한다.

한 시절 번지는 어둠과 폭력 속에서 섬광과도 같은 역할을 발산하던, 불온한 현실에 침을 뱉으라고 혹은 깨어 있으라고 말하면서, 읽는 이들의 감각과 폐부를 예리하게 찔러오던 시의 효용은 이제 지난날의 기억 속에 봉인된 것 같다. 혹자는 보다 감각적이고 시선을 끄는 구절과 표현들을 뽑아내는 영상시대의 대표 격 화자라 할 수 있는 광고에서 시의 대안재적인 역할과 대면할 수 있다고, 뭇사람들의 귓가에서 공명을 불러일으키는 대중가요가 한 시절 적지 않은 이들이 암송하고 필사도 하던 연시의 역할을 상당 부분 대치했다고 말할는지도 모른다.

며칠 전 오랜만에 서점에 갔다가 무엇인가에 이끌려 두 권의 시집을 손에 쥐게 되었다. 정신적인 허기에서일까 혹은 문득 찾아든 추억의 한 조각이 마음을 움직여서일까.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제목으로 담아낸 작업이나,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도 접할 수 있었다. 그 장소에서 뽑아든 한 선집에서는 한때 즐겨 찾던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와도 조우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에 송경동 시인의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가 필자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누구인가? 대추리에서 용산의 남일당과 밀양, 강정, 부산의 영도, 그리고 팽목항 등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아픔과 폭력이 체화되는 현장에 빠지지 않고 참여해온, 그 자신이 목공일과 용접을 하던 노동자였고, 계속되는 고초와 의혹을 받으면서도 쓰러지기와 일어서기를 수없이 해온, 숱한 상처에도 저항과 열망을 포기하지 않는 ‘거리의 시인’이 아니던가. 새로운 방식의 연대와 타인의 고통에 동참하는 창의적인 기획이었던 ‘희망버스’를, 이 현실의 벽을 넘어서는 결집된 행동을 만들어내는 데 크게 기여한 이가 아니던가. 시인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그는 ‘불량한 시들을 지으며, 여전히 반성하지 않고 꾸준하게 일수 찍듯 경찰서로, 검찰로, 법원으로 끌려’가며 ‘각기 다른 경찰서에서 보낸 소환장 일곱 통을 한날한시에 받는 가문의 영광’을 누리기도 하는 ‘이상한 나라’ 속 드문 존재이기도 하다.


체포영장이 발부된 송경동 시인이 출두 전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_경향DB



송경동의 신작은 지난 몇 해간에 우리가 목도하고 풍문으로 접했지만, 잠시의 분노와 관심으로 대했고 서서히 잊었던 일련의 사건들을, 그리고 사람들을 반추해낸다. 그가 토해내는 문장들은 ‘머리로 운동하고’ 가슴은 뜨거울 수 있지만 행동은 굼뜨고, 핑곗거리가 종종 모자라지 않는 필자와 같은 이들에게 곱씹지 않을 수 없는 사안들의 존재를 복기해준다. ‘피눈물 없이는 바라볼 수 없는 시절들이’ 결코 과거형이 아니며 현재 진행 중임을 일깨워주는 그의 작업은, 우리 안의 부끄러움과 방기했던 엄혹하고 비감한 사안들의 기록을 증언으로, 그리고 피맺힌 외침으로 망각의 지층으로부터 되짚어낸다. 그는 공권력이라는 묘한 이름의 당연시되는 강제력과 탐욕스러운 자본이 겁박하며 몰아내는 이들이 처한 현실과 불의, 그리고 ‘가파른 곳’에서 여전히 외치고 있는 이들의 상황을 담담하지만 강렬하고 단호한 어조로 그리고 이유 있는 항변으로 직조해낸다.

그가 던지는 표현들 속에서 법 바깥으로 밀려나며 생존과 권리가 무시되는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들, 고공농성 현장에서의 자전적인 체험들, 다수의 언론이 적대시하며 왜곡하는 노동과 투쟁의 초상들, 그리고 유명을 달리한 이들의 족적을 짚어내는 기억의 ‘화인’들이 일견 건조한 단어들의 연쇄 바깥으로 번진다. 소금기와 고통이 밴 그리고 ‘돌려 말하지’ 않는 서늘한 문장 하나하나가 지면을 넘어 마음을 후비며, 의식을 파고든다. 그는 말한다. ‘이 위대한 국가가 오늘 기를 쓰고 밀어내는 것이 우리가 그토록 기다려왔던 내일임을 고마워하자.’ 불온하고 비통한 동시에 희망을 품기 쉽지 않은 시대에, 의지와 열망을 잃지 않는 시인은 정신적으로 남루한 우리들에게 그렇게 반어법으로 그리고 드문 결기로 말을 건다.



이기형 |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