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 ‘진달래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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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블라블라/노래의 탄생

마야 ‘진달래꽃’


김소월은 봄의 시인이자, 국민시인이다. 그의 대표시 ‘진달래꽃’을 얘기하면서 마야를 빼놓을 수 없다. 마야의 노래가 히트한 배경은 파격에 있다. 가곡이나 발라드에 어울릴 것 같은 시를 록음악으로 만들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로 조용히 시작된 노래는 ‘날 떠나 행복한지 이젠 그대 아닌지/ 그대 바라보며 살아온 내가/ 그녀 뒤에 가렸는지…/ 내 영혼으로 빌어줄게요’에 가서 폭발한다. 김소월의 시에 작사가 루시아가 후렴구를 붙이고, 작곡가 우지민이 힘이 넘치는 록음악으로 만들었다. 


28세의 적지 않은 나이에 데뷔를 준비하던 마야는 발라드를 원하는 기획사와 달리 록음악을 고집했다. 결국 기획사 대표가 마음대로 만들어 보라고 맡겨서 6개월간 작업 끝에 데뷔앨범을 완성했다. ‘진달래꽃’은 타이틀곡이 아니었고, 대중의 반응도 신통치 않았다. 그런데 몇 개월 뒤 ‘길보드’(길거리 불법복제 테이프상들이 만든 인기차트)에서 노래가 종일 나왔다. 길거리 리어카 차트가 그녀를 세상 밖으로 불러낸 것이다.


사실 김소월의 시는 대중음악의 원천이었다. 그가 쓴 59편의 시가 대중음악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 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로 시작되는 정미조의 ‘개여울’과 ‘가고 오지 못한다는 말을 철없던 내 귀로 들었노라’로 시작되는 활주로의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도 소월의 시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유주용 ‘부모’)와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동요)도 그렇다. 인류가 바이러스 공포에 직면했지만 아는지 모르는지 진달래꽃은 그 어느 때보다 곱게 피었다.


<오광수 부국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