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용산 오리길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솔밭 사이 사이로 회오리바람 타고/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너는 가고 말았구나. 피어나지 못한 채/ 병든 장미는 시들어지고, 부용산 봉우리에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안치환 앨범 <노스탤지어>(1997) 수록)
박기동 작사, 안성현 작곡의 ‘부용산(芙蓉山)’은 반세기 동안 금지곡이었다. 안성현이 월북했고, 지리산 빨치산들이 주로 불렀다는 이유에서였다. 국어교사 박기동은 누이동생이 스물네 살의 나이에 폐결핵으로 사망하자 전남 벌교의 야산인 부용산 자락에 묻고 돌아오면서 이 시를 썼다. 그는 목포 항도여중으로 전근 가서 음악선생 안성현을 만났다. 안성현은 해방 직전 김소월의 시에 곡을 붙인 ‘엄마야 누나야’를 쓴 작곡가였다.
두 사람은 안타까운 죽음과 맞닥뜨린다. 교내에서 천재 문학소녀로 불리던 김정희가 열여섯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제자의 죽음을 앞에 두고 이 노래를 만들었다. 가사도 슬프지만 단조풍의 묵직한 선율 때문에 호남지방에서 구전되어 불렸다. 빨치산들 역시 혁명가요로 부르기보다는 고향 생각 나는 밤마다 나지막이 부르던 노래였다.
그러나 안성현은 한국전쟁 때 월북해 잊혀진 음악가가 되었다. 2006년 북한에서 작고했으며 뒤늦게 고향 나주에 ‘엄마야 누나야’ 노래비가 세워졌다. 박기동 역시 정보기관의 감시에 시달렸고,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미우라 아야코의 <빙점> 등을 번역하기도 했다. 호주 시드니로 이민을 떠났다가 귀국했으며 2004년 별세했다.
1997년 ‘부용산’을 안치환이 취입했고, 박기동은 1998년 호주에서 ‘부용산’ 2절을 썼다. 이후 장사익, 한영애, 윤선애 등 몇몇 가수들이 부르면서 대중에게 알려졌다.
<오광수 부국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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