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은 가볍게 꾸렸다. 화장은 할 필요가 없었다. 아이들에게 줄 학용품과 사탕을 가방에 넣고 이효리는 인도로 떠났다. 국제구호개발기구 월드비전과 함께한 5박 6일간의 인도 봉사활동. 반짝이던 아이들의 눈동자와 해맑은 미소는 지금도 손에 잡힐 듯 선하다.
베라왈리 초등학교 아이들과 함께 티셔츠에 그림을 그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세상에서 아이들의 환한 미소만큼 아름다운 건 없다는 것을 느끼게 한 순간이었다.
# 세계에서 일곱번째로 큰 나라, 10억 인구가 5개의 계급으로 나뉘어 살고 있는 나라, 천년 전의 번영과 빈곤을 21세기에도 여전히 이어가고 있는 나라, 그리고 가난한 아이들이 살고 있는 나라 인도. 신비한 매력으로 여행객들을 끌어당기는 인도의 속살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가난하다.
빈곤한 생활로 인해 교육을 받지 못한 15세 이상 인구의 문맹률이 40%에 달하고, 전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교육 환경도 여전히 열악한 상황이다. 그마저 집안 형편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도 많다. 이효리는 지난해 10월부터 월드비전을 통해 해외 아동을 후원해오던 중이었다.
작년 겨울 평소 롤모델이었던 한비야 전 월드비전 국제구호팀장을 만나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한비야씨가 했던 말이 “생각해오던 것을 행동으로 옮겨라”였다. 해외 아동 9명과 국내 아동 10명을 추가 후원하게 된 건 작은 시작점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국내외 스무 명 아이들의 ‘엄마’가 됐다. 언젠가 아이들을 만나 손을 잡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 올 여름 이루어졌다. 7월 4일부터 9일까지 그녀는 인도 뭄바이 지역개발사업장을 찾아 마을의 일손을 돕고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후원해오던 인도 소녀 툴시도 만났다. 희망을 전하러 떠난 여행. 그녀의 작은 소망이 이루어졌다.
뭄바이 슬럼가에서 맑은 눈의 천사와 함께.
# 인도에서의 첫날은 뭄바이 슬럼가를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배경이 되기도 했던 이곳은 하루 2천원 정도로 생활하는 도시 빈민 50만 명이 어깨를 부대끼며 살고 있는 곳이다.
그녀는 월드비전이 운영하고 있는 ‘거리아동센터’에서 만난 푸자(16) 자매의 집을 찾았다. 자매는 어렸을 때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마저 집을 나가 외할머니, 이모와 단칸방에서 살고 있다.
“어렸을 때 저를 보는 것 같아요. 중학교 때까지 아버지가 일하시던 이발소 단칸방에서 여섯 식구가 살았거든요. 비가 올 때면 집이 물에 잠겨서 친척집에 신세를 지기도 했어요.”
할머니가 식모살이를 하며 버는 수입은 우리 돈으로 한 달에 5만원. 어려운 형편에 끼니를 때우기도 힘든 상황이다. 그 때문일까, 푸자는 또래 아이들보다 몸집이 작다. 하지만 누구보다 의젓하게 동생을 돌본다. 요즘은 할머니가 자주 편찮으셔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란다.
가족을 생각하는 푸자의 마음이 예뻐 연신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어려운 환경에서 두 손녀를 키우시기에 할머니가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푸자가 꼭 의사의 꿈을 이뤄서 편찮으신 할머니도 고쳐주고, 동생도 잘 돌봐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한번 예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 인도는 우기가 한창이었다. 지대가 낮은 곳에 위치한 푸자네 집이 물에 잠기는 건 아닐까, 그녀의 걱정은 인도를 떠나오는 내내 계속됐다.
인도의 빈민가 ‘도비가트’는 세계에서 가장 큰 빨래터다. 이곳에는 평생 빨래를 하면서 고단한 생계를 이어가는 빨래꾼, ‘도비왈라’가 살고 있다. ‘도비왈라’는 인도 카스트제도의 최하위 계급인 수드라에도 속하지 않는 불가촉천민, 가장 낮은 계급의 사람들이다. 1995년부터 인도에서 카스트제도에 의한 차별은 공식 금지됐지만 아직도 이곳에는 대를 이어 도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걷기 시작해서 죽을 때까지 빨래를 하는 사람들. 태어날 때부터 너무 힘들게 일해 평균 수명이 40~45세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른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하루 16시간 이상을 일하고 받는 돈은 고작 5백 루피 정도, 우리 돈으로 5천원도 안 되는 이 적은 돈이 도비들의 하루 일당이다.
그럼에도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각 도시에서 모여드는 사람들과 이 조차도 벌기 힘든 어린아이들이 학교 대신 빨래터로 향한다.
최근에는 정부의 재개발 정책으로 인해 도비가트에서의 생활이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이미 빈민가는 대부분 철거됐고 200년 가까이 꿋꿋이 버티고 있던 도비가트도 철거 대상에 들어간 상태다. 도비왈라들은 생계를 유지할 일자리와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채 거리로 내몰리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곳 역시 아이들의 눈동자는 해맑았다. 한창 학교에서 뛰어놀 나이에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안쓰러워 눈물을 삼켜야 했지만 아이들은 오히려 그런 그녀를 위로했다. 맑은 눈빛으로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손을 마주잡고 그녀와 아이들은 좁은 골목을 돌고 또 돌았다.
# 다음날 그녀는 뭄바이에서 가장 큰 공립학교인 베라왈리 초등학교를 찾았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동자가 모두 그녀를 향해 있었다. 인도에 와서 느낀 것 중 하나. 아이들의 눈동자가 참 맑다는 것이다.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다가와 스스럼없이 손을 내민다.
그 손을 잡으면 눈을 마주치며 웃기도 하고 개구진 장난을 걸어오기도 한다. 어딜 가나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그녀를 위한 환영 퍼포먼스까지 준비한 꼬마 녀석들 덕분에 내내 싱글벙글했던 그녀의 표정이 점심 배식을 하며 어두워졌다.
각자 도시락 통에 음식을 담아 점심을 먹는데 도시락조차도 없어 친구 도시락 뚜껑에 밥을 받아가는 아이들을 보고 왈칵 눈물을 쏟을 뻔한 것이다.
이곳에 오기 전, 아이들 앞에서는 눈물을 보이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던 그녀다. ‘즐거운 마음으로 기쁘게 다녀오자’라고 다짐했는데 쉽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결국 전교생 3천5백명에게 도시락 통을 지원해주기로 했다.
한국에서 사서 보내주는 것이 나은지 아니면 현지에서 사는 것이 나은지 꼼꼼하게 따져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이들이 먹을 따뜻한 밥을 담을 3천5백 개의 도시락 통은 곧 학교에 전달될 예정이다.
# 마지막 날은 그녀가 후원하고 있는 인도 소녀 툴시(4)를 만나는 날이었다.
전날부터 월드비전 현지 직원에게 “너 예쁘다”, “뭐 먹고 싶니?”와 같은 말을 배워 열심히 연습한 그녀는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시골에 사는 툴시를 위해 뭄바이 시내 구경도 시켜주고 놀이공원에도 함께 갈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계획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야시딥에서 뭄바이까지 오랜 시간 기차를 타고 오던 중 툴시가 배탈이 난 것이다.
아픈 아이를 데리고 다니다 더 탈이 날까 싶어 아이가 머무는 호텔로 가 부채질도 해주고 그림도 그리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무언가 해주고 싶어 쇼핑몰에서 툴시와 툴시 언니 옷을 사서 선물했다.
오랫동안 기다려왔떤 시간, 예정보다 오래 함께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지만 더 건강해진 모습을 기대하며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나중에 툴시가 크면 저를 기억할까요? 괜히 기차 타고 오게 한 것 같아 무척 미안해요. 다음에 꼭 다시 만나고 싶어요.”
일주일이 채 안 되는 시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5박 6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그녀는 처음 출발했던 모습 그대로 돌아왔다. 수수한 옷차림에 화장기 없는 얼굴. 인도 아이들의 희망이 된 그녀의 미소는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답게 빛났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자료제공 / 빽가, 월드비전
베라왈리 초등학교 아이들과 함께 티셔츠에 그림을 그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세상에서 아이들의 환한 미소만큼 아름다운 건 없다는 것을 느끼게 한 순간이었다.
# 세계에서 일곱번째로 큰 나라, 10억 인구가 5개의 계급으로 나뉘어 살고 있는 나라, 천년 전의 번영과 빈곤을 21세기에도 여전히 이어가고 있는 나라, 그리고 가난한 아이들이 살고 있는 나라 인도. 신비한 매력으로 여행객들을 끌어당기는 인도의 속살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가난하다.
빈곤한 생활로 인해 교육을 받지 못한 15세 이상 인구의 문맹률이 40%에 달하고, 전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교육 환경도 여전히 열악한 상황이다. 그마저 집안 형편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도 많다. 이효리는 지난해 10월부터 월드비전을 통해 해외 아동을 후원해오던 중이었다.
작년 겨울 평소 롤모델이었던 한비야 전 월드비전 국제구호팀장을 만나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한비야씨가 했던 말이 “생각해오던 것을 행동으로 옮겨라”였다. 해외 아동 9명과 국내 아동 10명을 추가 후원하게 된 건 작은 시작점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국내외 스무 명 아이들의 ‘엄마’가 됐다. 언젠가 아이들을 만나 손을 잡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 올 여름 이루어졌다. 7월 4일부터 9일까지 그녀는 인도 뭄바이 지역개발사업장을 찾아 마을의 일손을 돕고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후원해오던 인도 소녀 툴시도 만났다. 희망을 전하러 떠난 여행. 그녀의 작은 소망이 이루어졌다.
뭄바이 슬럼가에서 맑은 눈의 천사와 함께.
# 인도에서의 첫날은 뭄바이 슬럼가를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배경이 되기도 했던 이곳은 하루 2천원 정도로 생활하는 도시 빈민 50만 명이 어깨를 부대끼며 살고 있는 곳이다.
그녀는 월드비전이 운영하고 있는 ‘거리아동센터’에서 만난 푸자(16) 자매의 집을 찾았다. 자매는 어렸을 때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마저 집을 나가 외할머니, 이모와 단칸방에서 살고 있다.
“어렸을 때 저를 보는 것 같아요. 중학교 때까지 아버지가 일하시던 이발소 단칸방에서 여섯 식구가 살았거든요. 비가 올 때면 집이 물에 잠겨서 친척집에 신세를 지기도 했어요.”
할머니가 식모살이를 하며 버는 수입은 우리 돈으로 한 달에 5만원. 어려운 형편에 끼니를 때우기도 힘든 상황이다. 그 때문일까, 푸자는 또래 아이들보다 몸집이 작다. 하지만 누구보다 의젓하게 동생을 돌본다. 요즘은 할머니가 자주 편찮으셔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란다.
가족을 생각하는 푸자의 마음이 예뻐 연신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어려운 환경에서 두 손녀를 키우시기에 할머니가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푸자가 꼭 의사의 꿈을 이뤄서 편찮으신 할머니도 고쳐주고, 동생도 잘 돌봐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한번 예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인도의 빨래꾼들이 모여 사는 세상에서 제일 큰 빨래터, 도비가트. 고단한 일상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그녀도 웃을 수 있었다. |
# 인도는 우기가 한창이었다. 지대가 낮은 곳에 위치한 푸자네 집이 물에 잠기는 건 아닐까, 그녀의 걱정은 인도를 떠나오는 내내 계속됐다.
인도의 빈민가 ‘도비가트’는 세계에서 가장 큰 빨래터다. 이곳에는 평생 빨래를 하면서 고단한 생계를 이어가는 빨래꾼, ‘도비왈라’가 살고 있다. ‘도비왈라’는 인도 카스트제도의 최하위 계급인 수드라에도 속하지 않는 불가촉천민, 가장 낮은 계급의 사람들이다. 1995년부터 인도에서 카스트제도에 의한 차별은 공식 금지됐지만 아직도 이곳에는 대를 이어 도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걷기 시작해서 죽을 때까지 빨래를 하는 사람들. 태어날 때부터 너무 힘들게 일해 평균 수명이 40~45세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른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하루 16시간 이상을 일하고 받는 돈은 고작 5백 루피 정도, 우리 돈으로 5천원도 안 되는 이 적은 돈이 도비들의 하루 일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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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정부의 재개발 정책으로 인해 도비가트에서의 생활이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이미 빈민가는 대부분 철거됐고 200년 가까이 꿋꿋이 버티고 있던 도비가트도 철거 대상에 들어간 상태다. 도비왈라들은 생계를 유지할 일자리와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채 거리로 내몰리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곳 역시 아이들의 눈동자는 해맑았다. 한창 학교에서 뛰어놀 나이에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안쓰러워 눈물을 삼켜야 했지만 아이들은 오히려 그런 그녀를 위로했다. 맑은 눈빛으로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손을 마주잡고 그녀와 아이들은 좁은 골목을 돌고 또 돌았다.
# 다음날 그녀는 뭄바이에서 가장 큰 공립학교인 베라왈리 초등학교를 찾았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동자가 모두 그녀를 향해 있었다. 인도에 와서 느낀 것 중 하나. 아이들의 눈동자가 참 맑다는 것이다.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다가와 스스럼없이 손을 내민다.
그 손을 잡으면 눈을 마주치며 웃기도 하고 개구진 장난을 걸어오기도 한다. 어딜 가나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그녀를 위한 환영 퍼포먼스까지 준비한 꼬마 녀석들 덕분에 내내 싱글벙글했던 그녀의 표정이 점심 배식을 하며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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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도시락 통에 음식을 담아 점심을 먹는데 도시락조차도 없어 친구 도시락 뚜껑에 밥을 받아가는 아이들을 보고 왈칵 눈물을 쏟을 뻔한 것이다.
이곳에 오기 전, 아이들 앞에서는 눈물을 보이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던 그녀다. ‘즐거운 마음으로 기쁘게 다녀오자’라고 다짐했는데 쉽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결국 전교생 3천5백명에게 도시락 통을 지원해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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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날은 그녀가 후원하고 있는 인도 소녀 툴시(4)를 만나는 날이었다.
전날부터 월드비전 현지 직원에게 “너 예쁘다”, “뭐 먹고 싶니?”와 같은 말을 배워 열심히 연습한 그녀는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시골에 사는 툴시를 위해 뭄바이 시내 구경도 시켜주고 놀이공원에도 함께 갈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계획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야시딥에서 뭄바이까지 오랜 시간 기차를 타고 오던 중 툴시가 배탈이 난 것이다.
아픈 아이를 데리고 다니다 더 탈이 날까 싶어 아이가 머무는 호텔로 가 부채질도 해주고 그림도 그리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무언가 해주고 싶어 쇼핑몰에서 툴시와 툴시 언니 옷을 사서 선물했다.
오랫동안 기다려왔떤 시간, 예정보다 오래 함께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지만 더 건강해진 모습을 기대하며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베라왈리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녀도, 아이들도 모두 행복한 시간이었다. |
일주일이 채 안 되는 시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5박 6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그녀는 처음 출발했던 모습 그대로 돌아왔다. 수수한 옷차림에 화장기 없는 얼굴. 인도 아이들의 희망이 된 그녀의 미소는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답게 빛났다.
툴시가 배탈이 나는 바람에 계획했던 놀이공원에는 가지 못했지만 대신 호텔방에서 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
■글 / 노정연 기자 ■사진자료제공 / 빽가, 월드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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