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의 트렌드 vs 클래식] BTS, 우리 시대의 비틀스(BeaT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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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의 트렌드 vs 클래식] BTS, 우리 시대의 비틀스(BeaTleS)

‘트렌드’라고 하든 ‘현상’이라고 하든, 혹은 그냥 ‘인기’라고 하든 세상 천지에 지금의 BTS만 한 것이 있을까 싶다. 한국어로 노래하는 아직도 한창 앳되어 보이는 방탄소년단의 노래가 빌보드 차트 1위를 점령한 데 그치지 않고 2015년부터 발매된 일곱 장의 앨범 모두 사실상 전부 빌보드 200에 차트되어 있는 이 경이로운 수준의 지속적이고 강렬한 팬덤 현상에 대해 모두 입을 다물지 못하고 한마디씩 논평을 보태고 있다. 미술이나 철학을 전공한 학자들조차 ‘예술혁명’으로서의 BTS를 논하고, 혹은 상처받은 오늘날의 젊은 세대에게 니체나 비트겐슈타인보다 더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는 철학자로서의 BTS에 대해 말한다.

 

심지어 철학자나 교수들이 스스로 BTS의 열성팬 ‘아미’를 자청하는 현상이 얼마나 흥미진진하던지…. 하지만 나로서는 그들에 비해 BTS에 대해 결코 잘 안다고 할 수 없어서 그저 ‘오 그렇구나! 진정 굉장하구나! 놀랍다! 멋지다!’식의 순수한 감탄사 말고는 더 이상 보탤 말이 없었다.

 

방탄소년단이 5월 20일(현지 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MGM 그랜드가든 아레나에서 열린 ‘2018 빌보드 뮤직 어워드’ 무대에 올라 강렬한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그러다 허리케인 플로렌스의 영향권 아래서 미국의 도시를 순회공연 중인 BTS에 대한 유튜브 동영상을 봤다. 정확히 많게는 400만원, 심지어 800만원까지 한다는 BTS 공연 암표를 구하지 못한 팬들의 모습을 공연장 밖에서 찍은 동영상이었다. 그런데 표가 없어서 공연장 안에 들어갈 수 없는 팬들이 일찍부터 모여 길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 춤을 추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했다. 하늘이 잘못된 것 같은 엄청난 비였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계속 춤을 췄다. 우산도 없이, 한데 엉켜 춤을 추며 놀았다. 영어보다는 스페인어가 더 많이 들리는 것이 히스패닉 쪽 소녀들이 많은 것 같았고 걔중에는 배 나오고 나이 많은 아저씨도 있었다. 그렇게 모두가 어울려 빗속에서 BTS의 춤을 추는 모습이 무척이나 감동적이었고 그 동영상을 찍은 ‘올리버쌤(80만명이 넘는 한국인들이 유튜브에서 그에게 영어와 미국 문화에 대해 배운다)’의 말처럼, 그렇다, 아름다웠다. 결코 과장이 아니다. 전혀 기대하지 못한 현장에서 진정 뭐라 말할 수 없이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걸 목도한, 그런 느낌이었다.

 

생각해 봤다. 내가 왜 그걸 보고 아름답다고 느꼈는지. 혹시 그건 디지털에 둘러싸인 우리 모두가 이제 좀 더 촉각적이고 인간중심적인 경험을 갈망하고 있다는 방증 같은 게 아닌지? 젊은이도 나이 든 사람도 모두들 자기 폰과 함께 자신들만의 세계 속에서 고립되어 살지 않은가? 가족이나 친한 친구라 하더라도 직접 만나는 일은 많지 않고 모바일폰이나 컴퓨터 매신저로 소통하는 게 더 편하다고 느끼며.

 

심지어 혼자 밥 먹고, 혼자 술 먹는 게 대세인 시대. 그런 시대에 BTS는 공연장 안팎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같이 노래하고 춤추게 한다. 소리로, 몸으로 서로를 느끼게 한다. 음악과 춤으로 공명하며 하나가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다 문득 악수를 하고 서로의 이름을 묻겠지. 디지털 기기와 함께 저마다 점점 더 개별화되어 가는 시대에 이만 한 ‘예술혁명’이 또 있겠는가?

 

심지어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미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BTS의 뮤직비디오를 통해 그 어려운 군무와 노래를 따라하면서 자신들을 둘러싼 비이성적 분리주의와 편견을 극복하고 하나가 되는 체험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심장이 뭉클해진다. 이제야 좀 이해가 되는 느낌이다. 왜 비오는 BTS의 공연장 밖 풍경을 보며 우리가 함께 감동적이고 아름답다고 느꼈는지.

 

이쯤 되면 BTS를 우리 시대의 비틀스(BeaTleS)라 해도 좋을 것 같다. 방탄소년단 본인들은 말도 안된다고 손사래를 치지만 끝없는 투어로 스스로 소모되지 않으려고 하는 멤버들의 각성과 열성팬을 자처하는 이들(스스로 BTS를 지키는 ‘아미’라 부르는)의 질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오히려 더 낫다는 생각마저 든다. 예컨대 비틀스의 광팬들은, BTS의 음악을 더 높은 순위에 올리기 위해 24시간 스트리밍시킨 채 학교에 가고 한국어 가사를 번역해 유튜브에 올리고 함께 안무 동작을 익히고 심지어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한국어를 배우는 BTS의 아미와 그 ‘클래스’가 달랐다. 그들은 그저 괴성을 질렀다. 심지어 비틀스 멤버들은 그 괴성 소리에 콘서트장에서 본인들의 연주조차 들을 수 없음에 완전히 질려버렸고, 1966년 세 번째 미국 투어를 끝내고 “이제 그만 됐다”(조지 해리슨), “비틀스 콘서트는 더 이상 음악과 아무 상관이 없다”(존 레넌)고 말한 후 투어 중단을 선언할 때부터 사실상 팀 해체의 싹이 돋아났다고 나는 생각한다.

 

미국 영어와 영국 영어가 다르다 하지만 결국 ‘영어’는 ‘영어’다. 하지만 한국어는 다르다. 낯선 외계의 언어나 다름없는 ‘한국어’로 BTS가 미국인들의 심장을 훔칠 수 있었던 건 말이 필요 없는 고난도 퍼포먼스와 스스로 온몸으로 부딪쳐 깨우친 세상에 대한 그들만의 진정성 있는 철학적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경이로운 세계에 아직 입문하지 않았다면 지금 당장 유튜브에 들어가 보시라. 시스템 안에 안주하는 수동적 인간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스스로 발견한 나를 ‘살아내기’ 위해 분투하는 청춘의 눈부심, 아름다움! 그 영광과 숭고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김경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