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여름이 무대 저편으로 사라졌다. 봄은 시작의 의미를 내포한다. 반면 겨울은 마무리에 적합한 계절이다. 여름이 열정의 전령이라면 가을은 사유의 전령이다. 하늘과 나무와 바람의 변화는 삶의 이유를 성찰하게 해주는 일종의 가을언어이다.
음악도 사계절의 변화에 온몸으로 반응하는 생명체다. 본격적인 가을의 문턱에서 관심 있게 들을 만한 음악을 골라 보았다.
내게 최고의 라디오 음악방송은 성시완 DJ가 진행했던 <음악이 흐르는 밤에>였다.
새벽 1시부터 시작하는 방송을 듣기 위해 밤잠을 설쳐야 했던 중학생 시절. 영국그룹인 스트롭스의 ‘Autumn’은 성시완을 통해 알게 된 곡이다. ‘Autumn’은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진 격정적인 가을을 묘사한다. 특히 피아노 연주로 시작하는 후반부는 가을의 절정을 들려주는 대목이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가야금 연주자 황병기의 ‘가을’을 좋아했다. 한국전통음악을 세계에 알린 황병기의 음악적 상상력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그는 전위예술가와의 협연도 마다하지 않는 미래형 음악가였다. 황병기 가야금시리즈 음반 <침향무>에 담긴 ‘가을’은 낙엽 밟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섬세한 연주가 특징이다. 가야금 명인이자 학자였던 황병기는 2018년 1월 말 귀천한다.
이후 재즈음악과 만나면서 쳇 베이커의 ‘Autumn leaves’를 즐겨 들었다. 지금도 좋아하는 재즈레이블인 CTI 음반의 수록곡이다. 비록 쳇 베이커의 서늘한 목소리는 없지만 폴 데스몬드, 론 카터, 밥 제임스, 스티브 갯과 협연하는 쳇 베이커의 트럼펫 연주는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감각을 자랑한다. 추가로 캐넌볼 애덜리와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반 <Something else>에 담긴 동명곡도 추천해본다.
에드가 윈터 그룹의 ‘Autumn’은 숙대입구 지하철역 인근의 라라음악사에서 발견한 음반에 수록되어 있는 곡이다. 그곳에서 백피증에 걸린 에드가 윈터의 상반신이 나오는 LP를 구입했다. 스트롭스와 달리 차분하고 정갈한 가을을 보여주는 곡이다. 대학시절 약속장소로 이용하던 라라음악사는 다양한 음악을 들려주던 공간이었다. 레코드점이 사라지면서 지금은 음악선율이 없는 적적한 거리로 변했다.
직장생활을 시작할 무렵에는 김민기의 ‘가을편지’를 애청했다. 기타리스트 이병우의 반주가 등장하는 ‘가을편지’는 정갈하면서도 진솔한 김민기류의 가을을 맛볼 수 있다. 이 곡은 서울음반사에서 발매한 4장짜리 연작음반의 시작곡이다. 그는 9월13일 JTBC 문화초대석에 출연했다. 방송에서 김민기는 자신은 가수가 아닌 그저 노래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언급한다. 그의 모습이 고맙고 반가웠다.
프랭크 시내트라가 부른 ‘Autumn in New York’은 작년부터 찾아 듣는 가을노래다. 영화 <대부1>에도 출연했던 그는 인터뷰에서 자신은 재즈가수 빌리 홀리데이의 음악적 추종자였다고 밝힌다. 연주곡으로도 잘 알려진 ‘Autumn in New York’은 프랭크 시내트라의 나른한 음성이 매력적이다. 그의 히트곡 ‘My way’와 ‘New York, New York’과 함께 사랑받는 음악이다.
이 외에도 크고 작은 기억들과 함께 떠오르는 가을음악이 적지 않다.
음악이란 감성과 이성의 중간 즈음에 위치한 소통의 언어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의 부족한 상상력을 채워주는 다섯번째 계절이기도 하다.
작가 알베르 카뮈는 ‘가을이란 모든 잎이 꽃이 되는 두번째 봄’이라고 말했다. 9월의 마지막 금요일이다. 가을음악과 함께 2018년의 봄을 다시 만나보자.
<이봉호 대중문화평론가·<음란한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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