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비엔날레 따라다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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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생각꺼리

[기자칼럼]비엔날레 따라다니기

처음에는 ‘뭔가 오류가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오류가 아닌 것을 안 뒤에도 ‘운영진들이 조율해서 날짜라도 조정하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미술 담당을 맡은 지 한 달여밖에 되지 않는 ‘미알못’(미술을 알지 못하는) 기자의 오산이었다. 이달 초 전국 각지에서 열린 비엔날레 개막식 일정은 통보받은 그대로 한 치의 조정도 없이 진행됐다.

 

지난 5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프레스데이가, 다음날인 6일에는 광주 비엔날레 프레스데이가, 7일에는 부산 비엔날레 프레스데이가 열렸다. ‘대장정’의 마지막은 8일 창원조각비엔날레 프레스데이가 맡았다.

 

5일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18<좋은 삶>에서 관람객들이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나흘 동안 모든 행사를 다 취재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해 광주와 부산만 1박2일간 출장을 다녀왔다. 그래도 체력이 달렸다. 광주에서는 3곳으로 나뉘어 있는 전시장을 따라다녀야 했고, 부산에서도 2곳을 다녀왔다. 이틀 동안 눈으로 본 작품만 수백점이다. 작품을 보며 생각나는 대로 메모를 하고, 사진도 찍어놨지만 나중에 정작 기사를 쓰려 할 때는 정리가 안돼 한참을 헤맸다.

 

따닥따닥 붙어 있는 비엔날레를 취재하느라 힘들었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미술계 사정을 잘 알지 못해서 그런지 몰라도 이런 상황이 너무나 비정상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서울과 광주, 부산, 창원이 모두 국제 비엔날레를 하나씩 운영하고 있고, 거의 같은 시기에 이를 개최하고 있다. 분야는 조금씩 다르고, 제목과 주제도 제각각이지만 현대미술의 특성상 작품을 보면 기시감이 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솔직히 얘기하면,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 머릿속으로 어느 작품을 떠올렸을 때 그 작품을 광주에서 봤는지 부산에서 봤는지 생각이 제대로 나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좀 달랐을까. 자료를 찾아보니 지난해 9월에도 2017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를 시작으로 ‘제5회 국제타이포그래피비엔날레’ ‘제주비엔날레’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청주공예비엔날레’가 비슷비슷한 시기에 개막했다. 웬만한 지방자치단체라면 비엔날레를 하나씩 다 갖고 있고, 모두 가을에 하고 싶어 하니 ‘격년제(비엔날레)’로 해도 만원버스처럼 운영되기는 마찬가지다.

 

비엔날레의 목적은 무엇일까. 동시대의 현대미술을 선보이는 자리(라고 배웠)다. 전위적, 급진적, 실험적인 미술언어를 추구해 미술계 전체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어야 하는 축제(라고 한)다. 그러나 최근 한국에서 열리고 있는 어떤 비엔날레에서도 이런 에너지를 찾기는 쉽지 않다. 한국 최고의 비엔날레라는 광주와 부산 역시 마찬가지다. 시대를 이끌어나가기보다는 그 시대의 유행이나 이슈를 따라가기에 급급하다. 광주에서 만난 한 미술계 인사는 “광주와 부산 비엔날레 중 하나만 봐도 될 것”이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타이틀은 ‘상상된 경계들(광주)’과 ‘비록 떨어져 있어도’(부산)로 달라보이지만 정작 작품을 보면 ‘거기서 거기’란 것이었다. 실제로도 ‘난민 문제’와 ‘북한’ 등 겹치는 주제가 많이 보였다.

 

내용만이 문제가 아니다. 대부분의 한국 비엔날레는 자생력이 없다. 정부와 지자체 예산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독립성이 생길 수 없다. 지자체장들은 하나쯤은 갖고 있어야 ‘구색’이 갖춰지는 지역활성화 사업으로 인식하고 있기 십상이다. 중앙정부의 예산을 따오는 도구로 활용되기도 한다. 이러다보니 타이틀은 ‘국제 비엔날레’라고 해놓고 해당 지역 작가의 참여를 늘려야 한다는 이상한 주장도 스스럼없이 나온다.

 

미술계뿐만 아니라 각 지자체에서도 비엔날레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장사가 되지 않으면 접으라는 말이 아니다. 어차피 돈을 벌기 어렵다면 차라리 비엔날레 본연의 역할에 전력을 다해보라는 말이다. 비슷비슷한 개최시기와 주제, 작품으로는 돈을 쓰고도 생색이 나지 않는다.

 

<홍진수 문화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