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미술 작품의 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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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생각꺼리

[기자칼럼]미술 작품의 가격

미술담당을 한 지 1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취재현장에서 질문을 하기가 어렵다. 어설픈 질문으로 나의 얕은 식견이 탄로날까 두려운 것이 첫번째 이유이고, 내 얕은 질문으로 작가나 큐레이터가 행여 상처를 받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 두번째다. 그래도 기사를 써야 하니, 또 취재를 하다보면 나도 궁금한 것이 자연스럽게 생겨서 질문을 하기는 한다. 지금까지는 다행히 좋은 취재원들을 만나서 무식한 질문이라고 타박을 받은 적은 없다.


그렇지만 아직도 쉽게 입에 올리지 못하는 질문이 있다. 작품의 가격을 대놓고 묻거나 따지는 것이다. 경매 낙찰가가 화제가 됐던 제프 쿤스나 데이비드 호크니 같은 작가의 작품이 아닌 이상 “이 작품은 얼마나 하나요?” “왜 이렇게 비싼가요?” “이렇게 비싸도 사람들이 사나요?” 하고 질문하기 어렵다. 미술계 사람들이 순수한 예술혼만으로 작업을 하고 전시를 하지는 않겠지만, 또 당연히 돈을 받고 작품을 사고팔겠지만 왠지 내가 질문을 하는 순간 속물성을 드러내는 것 같다. 또 나 혼자만 작품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다고 공개적으로 실토하는 것 같기도 하다.


가장 궁금한 이야기이긴 하다. 특히 그 가치는 물론이고 의미조차 짐작하기 어려운 현대미술작품은 왜 그런 가격을 받는지 알고 싶다. 물론 ‘그 작품을 원하는 사람이 많으면 가격이 올라간다’는 시장의 원리가 있지만, 모든 작품이 항상 시장에서 정확한 가격을 평가받는 것은 아니다.


이런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풀어주는 자리가 있었다. 국내 미술품의 유통 가격을 연구하는 사단법인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는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간담회를 열어 자체적인 미술품 가격 결정 모형을 처음 공개했다.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의 소장작품 가격을 재평가하기 위한 용역을 받아 연구를 진행했다. 


협회의 가격 결정 모형은 다음과 같다. 먼저 학업·전시 활동·인지도 항목을 각 1∼3점으로 매긴 뒤 작업 경력을 반영해 해당 작가의 통상 가격을 산출한다. 학업 특성에서는 출신 학교는 구분하지 않되 학부 비전공 1점, 대학 졸업 2점, 대학·대학원 졸업 3점으로 차등을 뒀으며, 전시 활동은 대관전 1점, 기획전 2점, 초대전 3점으로 나눴다. 인지도 면에서는 수장 이력·소장 내역·보도 내용을 평가해 최대 3점까지 주기로 했다. 이를 바탕으로 특정 작품의 보존 상태·크기별 가격·작품성·시장성을 따져 최종 가격을 책정한다.


기준이 되는 작품 크기는 10호다. 각각 마이너스 4점부터 플러스 4점까지인 작품성 및 시장성은 협회 소속 감정위원과 전문위원이 작업 재료, 작품 주제, 제작 시기, 경매 성적 등을 반영해 평가한다.


시장에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는 작가의 작품에 가격을 매기기 위한 기준일 뿐이라고 한다. 기존에는 관행적으로 동년배에 유사한 학력을 지닌 작가들의 작품가격을 참고해 평가했다고 하니 이런 기준이 없는 것보다는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 이상하다. 무엇보다 작가의 학력과 전공을 가격산정에 반영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 시대착오적이란 생각마저 든다.


‘거리의 화가’ 장 미셸 바스키아처럼 미술을 전공하지 않고도 대가의 반열에 오른 작가들이 떠오른다. 또 건축으로 일가를 이뤘으면서도 200여점의 회화를 남긴 이타미 준도 있다. 이런 작가들의 그림을 ‘비전공자의 작품’이라고 깎아내릴 수 있을까.


여전히 나를 비롯한 많은 대중은 미술품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러나 작가의 학력이 작품의 가치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미술품 시장에 관심을 가지고, 그 가격 결정에 참여하도록 만드는 것일 터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력 같은 구시대의 기준 말고 더 설득력 있는 설명을 내놓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홍진수 문화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