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형 이상문학상 수상작가. 최근 ‘절필’을 선언한 윤이형 작가.
1년 전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매년 기자들을 불러모아놓고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을 ‘깜짝’ 발표하는 그곳에 소설가 윤이형이 있었다. 반가웠다. 2016년 ‘#문단_내_성폭력’ 고발 운동 당시, 윤이형은 문단의 남성중심성과 폭력성, 그 안에서 ‘여성 작가’로서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 작가였다. 그는 성폭력을 가능하게 한 문단의 구조와 가해자들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에게 책임을 묻고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문학계 성폭력의 방관자로서 폭력의 확대 재생산에 책임이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이런 일들을 자각한 여성 창작자로서 앞으로 어떤 서사를 쓸 것인가”라고 물었다.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 ‘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는 그가 내놓은 문학적 답변이었다. 함께 살던 고양이의 죽음과 함께 결혼 제도의 폐해를 그리면서도, 문제를 적당히 봉합하거나 성급하게 파국을 그리지 않았다. 끈질기게 해답을 찾고 대안을 모색했다. 가부장적 가족제도와 사회 속에서 필연적인 갈등에 부대끼는 기혼 유자녀 여성으로서 감동과 위안을 받았다. 그런 작품이 ‘이상문학상 대상’으로 호명됐기에 적잖게 기뻤다. ‘페미니즘에 입문한 작가’의 변화와 시도에 제도권 문학이 인정해준 것이므로. 그런데 그 인정과 호명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1년 뒤 윤이형이 ‘절필’을 선언했다.
‘이상문학상 사태’는 소설가 김금희가 이상문학상 우수상 조건으로 ‘저작권 3년 양도’ 조항이 부당하다고 문제제기하며 시작됐다. 이어 윤이형이 ‘절필’을 선언했다. 오십명이 넘는 ‘#문학사상사_업무_거부’를 선언하며 보이콧에 나섰고, 그제서야 문학사상사는 저작권 양도 조항을 삭제하고, 이상문학상 수상작 발표를 취소했다. 겉보기엔 작가들의 단체행동이 거둔 ‘승리의 서사’로 읽힌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그러기에 우리는 너무나 소중한 작가 한 명을 잃었다. ‘윤이형’은 소설 대신 SNS를 통해 문단·출판계의 불공정한 구조를 비판하는 ‘고발자’가 됐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자신과 세계와의 싸움을 기록하면서도 희망과 연대를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 글을 써오던 작가가 그 꿈을 접고 분노와 절망 속에 고발의 글을 쏟아내는 모습을 볼 때, 우리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할까.
“문학계에 지뢰처럼 깔려 있는 수많은 문제와 부패와 부조리들을 한 명의 작가가 제대로 다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윤이형이 말했다. 지금까지 ‘지뢰’들은 표절 논란, 성폭력 사건, 저작권 침해 등으로 다양하게 터져나왔다. 윤이형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봐야 한다. ‘지뢰밭’을 뚫고 나온 예외적 작가만이 생존하는 시스템이라면, 지뢰를 통과하기에 더 유리한 조건을 갖춘 작가, 운이 좋은 작가만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지뢰’ 없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을 때 당연히도 그 결과물이 더 풍요롭지 않을까. 이상문학상 수상 조건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문단·출판계의 문화와 구조, 법과 제도에 관한 문제다. 예술인을 법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예술인 권리보장법’은 국회에서 폐기될 위기에 처했다. 이에 대한 답을 모두가 모색해야 한다. 그때 잃어버린 작가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영경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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