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활동을 한 지 20년을 맞은 지난 2008년에 신해철을 만났을 때 요즘의 평론가들을 향해 질러달라고 했더니 그의 발언은 가히 ‘독설가’답게 거침이 없었다. “요새는 평론하는 사람들이 없잖아? 평단은 전멸했지. 이건 뭐 평론도 아니고. ‘이런 글을 뭐하러 쓸까?’ 이런 생각이 들어서 신경 꺼버렸어요. 어째 요즘 평론가라고 명함을 들이미는 애들이, 예전에 PC통신 시절에 거기에 글 쓰는 애들보다 못 쓰는 거야.”
듣는 입장에서는 민망했고 뼈아팠다. 그 무렵 시사프로 <100분 토론>에 출연했을 때도 그랬다. 그날은 국내 음악의 실태와 음악산업의 현황이 주제였다. 잠깐의 휴식시간에 신해철은 내 자리에 오더니 대뜸 “형! 오늘 왜 이렇게 얘기를 안 하는 거야? 나만 떠들고 있잖아!”하는 것이었다. “나 오늘 얘기 많이 하는 건데…”라는 답에 그는 “그런 거 말고 진짜 얘기를 털라고요!”라고 일갈했다.
생전에 그는 자신의 생각과 진심을 솔직하고 용기 있게 개진한 인물이었다. 어조를 높일 때는 특유의 화려한 수사학도 동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직언하든 우회적으로 돌려 말하든 그가 상대에게 날리는 펀치력은 언제나 메가톤급이었다. 진실에 대한 기준과 척도는 제각각일지 몰라도 그의 발언을 ‘바른말’로, 그를 ‘야외 정론의 메신저’로 여긴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신해철의 죽음을 한 음악가의 사망을 넘는 ‘우리 시대 진실한 메시지의 상실’이라고 그 의미를 확장하고자 한다.
200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신해철은 확실히 음악가의 이미지보다는 아호로 통하는 ‘마왕’을 비롯해 ‘독설가’ 혹은 ‘소셜테이너의 기수’ 등 음악 외적인 스탠스로 더 유명해졌다. 노래하는 사람이라고 이런 사회적 위상을 갖지 말라는 법은 없다. 꺼지지 않는 신해철의 추모 열기에도 얼핏 이런 스탠스가 음악보다도 우위에 있는 듯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먼저 그는 뮤지션이다. 이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그는 음악가로서 자신의 사고와 성찰을 ‘리얼한 실제담’을 통해 전하려고 몸부림을 쳤다. 제3자의 얘기를 끌어오거나 상상의 영역에서 꾸며내는 가사가 거의 없었다. 오로지 자신과 자신 주변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러니까 2부작으로 만든 ‘아버지와 나’, ‘증조할머니의 무덤가에서’, ‘날아라 병아리’, ‘난 쓰레기야’와 같은 노래가 가능했다.
고 신해철의 유골함, 마왕의 마지막 모습. (출처 : 경향DB)
사실 예술가의 기본 터전은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하면서 타자의 공감을 부르는 데 있다. 2007년에 신해철은 약간은 터무니없게도 <더 송즈 포 더 원>이란 제목의 재즈 앨범을 냈다. 평단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늘 록을 하던 그가 재즈 영역을 건드린 이유는 딱 하나, “완전히 손을 안댔다 싶어 불모지로 남은 곳은 재즈밖에 없더라”는 이유였다. 앨범을 설명하면서 “개인용 노래방을 만들어 놓고 혼자 즐긴 거죠 뭐”라며 껄껄 웃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의 음악 방침은 바로 이것, 자신에 의한 자신을 위한 자신의 음악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마왕이었음에도 그는 남을 가르치려 들지 않았고, 교주 같았지만 교시를 내리지 않았다. 독설도 어쩌면 자신을 향한 직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만든 다소 비상업적인 성격의 음악마저 상업적 성공을 거둔 것은 아마도 자기 고백이라는 리얼 스토리가 주는 대중적 감화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1980년대 말 성공적인 솔로 활동을 통해 아이돌을 방불케 하는 스타덤을 확보했지만 끝내는 록의 본색을 드러내면서 밴드 넥스트를 결성했다. 변방에 머물러있던 록과 밴드의 음악을 주류로 끌어올린 업적도 기억되고 기록돼야 한다. 그의 죽음을 계기로 아티스트 본연에 충실했던 그의 빼어난 음악이 인구에 회자됐으면 한다. 이것이 그에 대한 미안함을 더는 우리의 최선일 것이다.
임진모 |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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