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지망생 N양과 전직 매니저가 말하는 아이돌 연습생들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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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지망생 N양과 전직 매니저가 말하는 아이돌 연습생들의 현실

아이돌은 겉보기만으로는 굉장히 화려하다. 그들의 삶을 동경하고 닮아가길 원하는 청소년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 기획사를 기웃거리고 있다. 하지만 마음만큼 쉽지만은 않다. 검은 유혹의 손길을 내미는 곳들과 잘못 엮이는 경우도 많다. 아이돌 가수가 되길 바라는 10대의 간절한 꿈을 담보로 일어나는 어두운 이면을 들여다봤다.



실력과 외모, 소속사까지 삼박자 맞아야

현재 중소 매니지먼트사에서 아이돌 가수의 꿈을 키우고 있는 N양(18)을 만났다. 연습생 3년 차인 고등학생 N양은 여고생 특유의 생기발랄함보다는 조금은 지치고 힘들어 보였다. 그녀는 신분 비공개를 요청하며 연습생 생활에 대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처음 오디션에 합격했을 때는 정말이지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뻤어요. 이제 금방 아이돌로 데뷔하고 스타가 될 것 같았죠. 열심히 트레이닝 받다보면 곧 데뷔할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지냈는데 1, 2년 지나면서 점점 지쳐가더라고요. 지금은 ‘진짜로 데뷔는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연습생 생활에 지쳐 있는 N양은 고단한 일상에 생기를 잃어버린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연습실로 와서 밤 11시가 넘도록 춤과 노래 연습을 한다고 했다. 지하 연습실에서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연습에 매진한다. 그러다 보면 배도 자주 고프지만 참는 게 익숙하다. 먹을 것을 마음껏 먹은 게 언제인지조차 까마득할 정도란다. 한창 성장할 청소년기이지만 몸매 관리를 위해 원하는 음식을 제대로 먹어본 적이 별로 없다. 다이어트 때문이었다. 과격한 댄스에 에너지를 쏟지만 오히려 일반인보다 더 적게 먹는다. 그렇다 보니 스트레스는 나날이 쌓여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증이 생겼어요. 연습생들끼리도 누가 더 예쁘고, 몸매가 좋은지 다 소문이 나기 때문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어요. 그러다가 실제로 건강이 나빠진 친구들도 여럿 봤고요.”


아이돌의 외모에 집착하는 팬과 미디어처럼 연습생들도 외모에 대한 관심은 상상 이상이었다. 실제로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성형수술을 하는 친구들이 꽤 많았다. 물론 그 비용은 고스란히 연습생 개인의 몫이었다. 당장 데뷔 계획이 없는 일반 연습생에게 성형수술 비용을 지원하는 기획사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열심히 연습해서 실력을 쌓고 거기에 성형까지 해서 예뻐지면 아무래도 데뷔 가능성도 더 높아지고 데뷔까지 걸리는 시간도 훨씬 단축되거든요. 그렇다 보니 집안에 돈이 좀 있는 애들은 상황이 더 나아요. 실제로 실력은 별로인데 부모님이 앨범 제작비를 투자해줘서 데뷔하는 애들도 있어요.”


학교에서처럼 연습생들 사이에서도 부모님의 치맛바람이 그대로 이어진다. 실력이라는 공정한 경쟁보다는 돈이라는 현실이 연습생의 꿈을 좌지우지하고 있었다. 실제로 가수로 데뷔해 활동하고 있는 몇몇의 경우에는 부모가 앨범 제작비를 투자해 데뷔하게 됐다는 소문이 심심치 않게 들리고는 한다. 결국 가정 형편이 안 좋은 연습생은 오로지 실력밖에 믿을 것이 없는 셈이다. 그런데 실력이 있다고 꼭 데뷔한다는 보장도 없다. 바로 기획사 문제 때문이다.


모든 기획사에서 아이돌 그룹을 매해 제작하는 것은 아니다. 기획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2, 3년에 한 그룹씩 데뷔를 시키거나 더 오래 걸리기도 한다. 아이돌 그룹 한 팀이 탄생하기까지 들어가는 돈은 최소 수 억원인데, 기본적인 제작비가 마련돼야 아이돌 그룹을 오랜 시간 준비하며 관리해나갈 수 있고, 그렇게 꾸준히 투자가 유지돼야만 데뷔 후의 성과를 어느 정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계획대로 순탄하게 이뤄지지만은 않는다.


만약 재정적으로 취약한 기획사가 문을 닫을 경우 소속돼 있던 연습생은 그동안 쏟아 부은 시간과 노력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된다. 실제로 중소 기획사에서 데뷔를 기다리던 연습생 중 이런 식으로 낭패를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중소 기획사에 있다가 회사가 없어져서 갑자기 길을 잃은 연습생들도 많이 봤어요. 이런 이유로 데뷔하려면 돈이 있어야 된다고 많이들 얘기하는 거예요. 또 중소 기획사들 중에는 투자금을 모으기 위해 여자 연습생들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어요. 매니저가 밤에 술자리에 불러서 투자자라며 잘 모시라고 하고, 제대로 데뷔하려면 최대한 잘 보여야 한다면서 같이 잠자리까지도 하라는 식으로 부추기는 일도 있어요.”



연습생 체험을 한 스포츠경향 유혜림 인턴기자 그룹 타이니지 멤버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돈이냐 성(性)이냐, 데뷔를 담보로 한 검은 거래


연예계에 연습생을 상대로 한 성상납은 여전히 존재했다. 그리고 이런 얘기가 만연하다 보니 일부 연습생들은 마치 가수 데뷔와 성상납이 당연한 거래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있다고 한다. 부적절한 과정을 한 번쯤은 거치는 게 가수로 데뷔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하는 여자 연습생들이 있다는 것.


N양의 얘기를 듣다 보니 지난해 ‘연예계판 도가니 사건’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오픈월드엔터테인먼트 장 모 대표의 연습생 성폭행 사건이 떠올랐다. 오픈월드는 중견 기획사로 꽤 유명한 곳이었음에도 연습생의 신분을 악용한 대표적인 연예계 성폭행 사건이었다. 실제 내부 상황은 어땠는지 알기 위해 과거 이 회사 소속으로 일했던 전 매니저 김태준씨(가명·28)를 만나 당시 이야기를 들어봤다.


“아무래도 연습생이면 기획사 대표가 부르는 대로 나갈 수밖에 없어요. 잘 보여야 데뷔할 수 있는 기회를 잡으니까요. 장 대표는 그런 걸 철저히 이용한 셈이죠. 연습생을 그냥 성노리개로 생각하고 자기 마음대로 한 거죠. 습생은 넘쳐나거든요. 그러니까 대표가 그런 짓을 저질러도 데뷔하기 위해 가만히 있는 거예요. 그러다가 1, 2년 지나고 연습생은 데뷔 못하고 그만두면 그냥 묻히는 거죠.”


이런 문제는 비단 여자 연습생에게만 일어나는 게 아니었다. 남자 연습생을 성상납에 이용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남자 연습생들에게는 일본에서 온 여자 팬이라고 하면서 호텔로 보내 성상납을 시킨 경우도 있었어요. 정확하지는 않은데 그 여자들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어요. 제 기억만으로도 그랬던 적이 여러 번이에요.”


‘오픈월드 사건’은 연예계에서 일반적이기보다는 장 대표의 특별한 사건으로 회자된다. 그럼에도 몇 년 동안 연습생을 상대로 성폭행이 이어졌고, 그런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는 사실은 연습생을 둘러싼 성상납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영원히 약자일 수밖에 없는 연습생은 이처럼 이용당하기 쉽다. 그리고 이런 연습생 신분을 악용해 개인의 성적 욕구를 채우거나 돈벌이로 이용하는 기획사들이 여전히 독버섯처럼 존재한다.


영화 <노리개>


현재 한 중소 기획사에서 아이돌 그룹을 관리하고 있는 매니저 최석훈씨(가명·34)는 화려함만 보고 아이돌 가수를 꿈꾸는 청소년들이 무척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한다.


“‘오픈월드 사건’은 워낙 파렴치하고 비정상적인 일이어서 큰 이슈가 됐죠. 물론 그건 아주 희박할 정도로 추한 단면일 뿐이에요. 누가 봐도 체계적이고 건강한 시스템으로 아이돌 육성을 잘하는 기획사들도 많거든요. 그래도 그 사건을 계기로 연예계에서 자정의 목소리가 커지기도 했어요. 연습생을 보다 정상적이고 건전한 방법으로 잘 키워야 한다고 강조하고, 다들 좀 더 투명하고 좋은 방향으로 데뷔에 성공시키려고 노력하는 분위기고요. 물론 여전히 비합리적인 부분들이 일부 존재해요. 왜냐면 아이돌 그룹을 데뷔시키는 건 엄청난 투자이거든요. 당연히 데뷔시키는 아이돌을 고르고 또 고를 수밖에 없죠. 몇 년씩 연습하며 실력을 키워온 연습생 중 10% 정도만 데뷔를 하는데, 그중 성공하는 아이돌은 3%도 안 된다고 봐요. 결국 청소년기를 연습생 생활도 모두 보내고, 아무것도 못하는 학생들이 생길 수밖에 없고요. 그렇다고 기획사가 끝까지 책임져주지는 않거든요.”


결국 어렵게 연습생이 돼도 연습생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란 얘기다. 또 연습생이 되더라도 성상납이나 돈 문제로 상처받고 부당한 일을 겪을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고 한다.


“요즘 아이돌 인기가 주춤하고 있는 추세라 앞으로가 더 걱정이에요. 이미 데뷔한 아이돌끼리도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데, 앞으로 데뷔할 아이돌이 과거처럼 성공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어요. 끊임없이 아이돌 그룹들이 쏟아져 나오고는 있지만 대중문화라는 게 아무래도 유행을 탈 수밖에 없으니까 이런 분위기가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알 수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