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판 그만 주무르세요” 영화인들, 대기업에 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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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판 그만 주무르세요” 영화인들, 대기업에 일침

백승찬 기자
 
26일 열린 영화진흥위원회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업무보고 자리는 대기업 투자·배급사에 대한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 이날 영진위는 “메이저 3사(CJ, 롯데, 쇼박스)의 시장 지배력 강화로 시장 불균형이 초래됐다”고 밝혔다.

실제 영진위 자료를 보면 배급 부문에선 CJ, 롯데, 쇼박스의 한국영화 시장 점유율이 72.5%, 극장 부문에서는 CGV-프리머스, 롯데, 씨너스-메가박스의 시장점유율이 82.7%에 달한다. 이 같은 수치는 영화계 산업 주체 간의 불공정 계약으로 이어졌다.
대기업 투자사가 실제 제작에 참여하지도 않으면서 제작사에 공동 제작 형식을 강요해 이익을 더 많이 가져간다든지, 상영 초기 관객이 많지 않은 한국영화를 무단으로 조기종영하는 사례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기업들이 영화제작자들을 마치 하청업자 대하듯 다루고 있다”(조철현 타이거픽쳐스 대표), “대기업이 다양성 영화까지 투자·제작·배급을 한꺼번에 한다는 것은 지양했으면 좋겠다”(고영재 인디플러그 대표)는 영화인들의 쓴소리가 이어졌다.
이에 대해 영진위는 “중소기업과 대기업 상생으로 독점적 산업구조를 탈피하겠다”며 정부와 영화산업 관계자들이 모인 ‘한국영화산업동반성장협의회’(가칭)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영화인들의 대기업 견제 움직임은 올 초에도 있었다. 2월에는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소속 23개 제작사들이 CJ CGV, 롯데쇼핑 주식회사 등 주요 4개 멀티플렉스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 멀티플렉스가 제작자 및 투자자들과의 상의 없이 무료 초대권을 발급해 손해를 입혔다는 내용이었다.

삼성동 멀티플렉스 상영관 매표소에 줄서 있는 영화를 관람하려는 시민들 (경향신문DB)


1990년대 한국영화의 중심에 프로듀서를 중심으로 한 제작사가 있었다면, 2000년대에는 대기업 투자·배급사가 있다.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공간인 극장,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돈줄을 쥔 대기업들은 한국영화산업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편해 나갔다. 주먹구구식의 제작 과정이 투명화·합리화되고, 위험성이 큰 대작들을 안정적으로 만들 환경이 조성됐다는 점은 대기업의 영화계 참여가 가져온 장점으로 꼽힌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정작 한국영화의 창의성을 담보해온 제작자들이 소외되는 경우가 있었으며, 그 목소리들이 이제 분출되고 있다. 영화 <스파이더맨>의 주인공 피터 파커는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말을 듣고 대오각성한다. 대기업들이 되새겨볼 만한 대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