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경 기자
지난 14일 소설가 김영하씨가 “블로그를 닫고 트위터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한 후 일주일이 흘렀다. 김씨는 인터넷을 통해 이뤄졌던 문학평론가 조영일씨와의 논쟁을 돌연 중단하며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의 죽음의 원인에 대해 “영양실조가 아니라 갑상선기능항진증”이라고 언급함으로써 화제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아쉽지만 지금은 그의 글 전문을 볼 수 없다. 곧 그는 블로그에 올린 자신의 글을 모두 삭제했다.
조영일씨는 김씨가 글을 올린 지 이틀이 지나 자신의 블로그에 “이번 논란이 ‘논쟁의 무용성’을 증명해주는 예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며 “논쟁과정에서 생기는 격한 감정의 충동도 논쟁의 본질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뒤끝이 없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렇게 마무리되지 못한 게 아쉬울 뿐”이라고 밝혔다.
소설가 김영하씨. (경향신문DB)
이번 논쟁은 지난 1월1일 김씨가 자신의 블로그에 ‘작가는 언제 작가가 될까’라는 글을 올리면서 시작됐다. 신춘문예 당선보다는 작가로서의 자의식이 중요하다는 지적을 담은 글에 대해 조영일씨가 ‘기득권’이란 반박 글을 올렸으며, 곧 예술과 사회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졌다.
뉴욕에 체류하는 인기 소설가와 문단 밖에서 활동하는 소장파 문학평론가가 트위터와 블로그를 통해 자유롭게 논쟁하는 모습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작품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작가와 상황 중심으로 사고하는 비평가가 대비돼 재미있다”거나 “주고받는 글이 있어서 논의가 좀 더 명확해지거나 넓어지는 것 같다”는 댓글도 달렸다. 소설가 김사과씨까지 뛰어들면서 이번 논쟁은 인터넷을 통한 소통과 논쟁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러나 결과적로는 인터넷을 통한 소통의 실패를 드러내는 대표적 사례가 되고 말았다. 논쟁 도중 최고은씨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고 이것이 논쟁에 끌어들여지면서 논의는 민감해졌다. 그 와중에 인터넷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몰아붙이기와 마녀사냥식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김씨로서는 자신이 직접 가르쳤던 제자의 죽음을 두고 이런 논쟁과 오해가 벌어지는 것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돌연한 논쟁 중단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인터넷을 통한 소통 가능성에 믿음을 갖고 적극적이었던 김씨였기에 더욱 그렇다. 이번 사태가 조씨의 말대로 ‘논쟁의 무용성’을 증명하는 예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두 사람의 논쟁을 통해 사유할 수 있었던 예술가의 자의식, 예술과 사회 관계에 대한 고민은 계속되길 바란다. 인터넷이 언제든 박차고 나갈 수 있는 편리한 ‘링’ 이상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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