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블라블라' 카테고리의 글 목록 (42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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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블라블라

미국의 새로운 움직임 - 서프 사운드, 포크 프로테스트 포크는 당시의 미국이 주목한 대중 음악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했다. 사진은 미국의 포크 싱어 줄리 펠릭스(Julie Felix) 당시의 영국의 로큰롤 밴드들 사이에서 가장 뚜렷한 족적을 남긴 미국 밴드라면 비치 보이스(Beach Boys)를 들 수 있을 것이다. Beach Boys - Surfing U.S.A. 흔히 ‘브리티쉬 인베이전에 대한 미국의 대응’ 식으로 얘기되지만, 사실 비치 보이스의 결성은 1961년이었다. 윌슨 가의 형제들인 브라이언, 칼, 데니스와 그들의 사촌이었던 마이클 러브(Michael Love), 마이크의 친구였던 앨런 자딘(Alan Jardine)이 결성했던 이 밴드는 이른바 ‘서프 뮤직’ 을 통해서 미국의 스타로 떠오른다. 재미있게도 이들 중 실제로 서핑을 할 수 있.. 더보기
영국산 블루스의 등장, 브리티쉬 인베이전(3) 미국에 상륙한 비틀즈. 많은 영국의 밴드들이 미국으로 진출, 무혈입성하게 된다 이런 수많은 영국 밴드들이 곧 미국으로, 최소의 시간에 최대의 달러를 벌어들이기 위해 날아간다. 브리티쉬 인베이전은 1964년 비틀즈의 성공으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I Want to Hold Your Hand’ 가 미국에서 1위에 오른 뒤 2월 7일,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에 내린 비틀즈는 엄청난 환영 인파에 마주하게 된다. 브리티쉬 인베이전의 시작임과 동시에 이는 세계가 하나의 문화권에 놓여 있음을 보여 주는 가장 명확한 증거이기도 했고, 로큰롤의 몰락 이후 보수적인 분위기가 지배했고, 특히 케네디의 암살 이후 침울해 있었던 미국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비틀즈는 곧 미국을 정복했다. 어느 정.. 더보기
영국산 블루스의 등장, 브리티쉬 인베이전(2) 1969년의 롤링 스톤즈. 비틀즈에 이은 로큰롤 스타들이 미국 침공을 준비하고 있었다 비틀즈 만큼이나 록 음악을 얘기할 때 큰 무게감을 가지고 있는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도 처음에는 블루스 밴드로 시작하였다. Rolling Stones - (I Can't Get No)Satisfaction 알렉시스 코너의 블루스 인코퍼레이티드 출신의 믹 재거와 브라이언 존스, 키스 리처드가 크게 팀의 중심이었던 롤링 스톤즈는 사실 오늘날 ‘비틀즈와는 달리’ 좀 더 거친 로큰롤을 연주한 밴드로 알려져 있지만, 기실, 롤링 스톤즈는 처음에는 로큰롤의 영향력만큼이나 블루스의 모습을 강하게 보여 주던 밴드였다. 데뷔작인 “The Rolling Stones” 에서는 윌리 딕슨(Willie Dixon)의 ‘I J.. 더보기
시월의 국민가수 [정동 에세이]“시월엔 나도 국민가수랍니다” 이용 | 가수 모름지기 ‘국민가수’라고 하면 코흘리개 아이들부터 노년층까지 그의 이름을 알고, 그의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떳떳하게 “나는 국민가수다”라고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국민가수라고 주장하면 아마 이 글의 말미쯤에 살벌한 댓글들이 올라올 게 뻔하다. 네가 국민가수면 나는 국민 남동생이다, 네가 국민가수면 조용필은 뭐냐 등등. 뭇매를 맞고 피흘리면서 “국민여러분 죄송합니다. 제가 주제넘은 발언을 한 것 같습니다”라고 사과해야 할 것이다. 하긴 영국인들이 사랑하는 비틀스나 스웨덴인들이 사랑하는 아바, 미국인들이 사랑하는 마이클 잭슨쯤은 돼야 국민가수가 아닐까.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많은 분이 알고 있다시피 시월이 되면 가수.. 더보기
영국산 블루스의 등장, 브리티쉬 인베이전(1) 블루스 인코퍼레이티드. 영국의 젊은이들은 로큰롤과 함께 백인의 블루스를 개발했다(그런데 사진은 별로 젊어 보이지가...) 비틀즈가 영국산 로큰롤이었다면, 영국산 블루스를 연주하는 다른 이들이 존재했다. 여기서 잠깐, 비틀즈가 영국을 넘어 세계를 정복하는 모습을 살펴보기 전에, 영국의 다른 밴드들 - 특히 영국판 블루스의 모습들을 볼 필요가 있는데, 적어도, 비틀즈이건 이들이건 미국에서는 로큰롤의 황금기 이전에는 그런 폭발적인 음악을 들어보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동일할 것이기 때문이고, 그렇게 소위 브리티쉬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의 최전선에 있었던 밴드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굳이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이하의 뮤지션들의 본격적인 등장보다는, 단순 시대상으로는 비틀즈의 미국 진출이 먼저일.. 더보기
비틀즈의 영국산 로큰롤의 등장 캐번 클럽(Cavern Club). 비틀즈가 주로 공연하던 클럽이었던 곳으로 로큰롤의 '성지' 중 하나일 것이다 로니 도네건의 추종자였던 존 레넌(John Lennon)이 처음 밴드를 결성했던 것은 1957년이었다. 도네건이 스키플 사운드를 알린 이후(물론 스키플이 처음 나타났던 것은 미 대공황기라고 해야겠지만 - 즉, 영국에서의 스키플 열풍은 그러므로 ‘리바이벌’ 이라고 하는 게 정확하다) 영국에는 엄청난 수의 스키플 밴드가 존재했다. 56년과 57년 사이, 영국에는 거의 5천 개 가량의 스키플 밴드가 존재했다고 하니 매우 열광적이었던 셈이다. 하긴 스키플은 거의 ‘Do It Yourself(DIY)’ 의 전형에 가까웠다. 기타 코드 세 개 정도와 리듬 섹션만 어떻게 한다면(즉, 꼭 드럼을 칠 필요는 .. 더보기
월 오브 사운드, 비틀즈의 등장이 있기까지 뉴욕 브릴 빌딩. 60년대 중반까지의 틴 팬 앨리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많은 스타일이 나타난 이 시대에 좀 더 혁신적인 음악이 존재했다. 모타운, 스택스 등과 비교하여, 흑인 음악의 전통과는 좀 더 거리를 두고 있었으나(물론 무관한 것은 아니었다) 로큰롤의 전통을 버리지는 않고, 동시대 브릴 빌딩의 틴 팬 앨리 팝을 일신시켜 대중 음악에 활력을 불어넣었던 인물은 필 스펙터(Phil Spector)였다. 틴 팬 앨리(Tin Pan Alley)는 본래 뉴욕 맨하탄 28번가와 브로드웨이 일대를 가리키는 말로, 대중 음악계의 의미는 물론 백인 중산층의 음악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으며, 로큰롤의 등장 이후에는 전통적인 재즈 팝과 로큰롤이 접목된 형태를 취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즉, 유럽의 그것과는 다른 미국만의 .. 더보기
소울과 훵크의 발전 - Black Power 블랙 팬터스. 60년대 흑인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그것은 음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로큰롤은 몰락했지만, 그것이 흑인 음악의 몰락을 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 흑인 음악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엘비스는 로큰롤의 폭발을 이끌었지만, 전술했듯이 그것은 엘비스와 같은 ‘백인’ 이 흑인 음악을 연주했다는 점에서도 힘을 얻은 바 컸다. 즉, 로큰롤은 흑인 음악에서 시작했을지언정, 순수 흑인 음악은 아닌 셈이다. 물론, 1940년대 이후 흑인 음악의 ‘수퍼 장르’ 는 누가 뭐래도 리듬 앤 블루스일 것이다(또는 그로 ‘통칭된다’). 하지만 흑인 음악을 리듬 앤 블루스가 모두 아우르는 것은 분명 아니었다. 로큰롤의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새로운 스타일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블루스에서 시작했던 로큰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