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산 블루스의 등장, 브리티쉬 인베이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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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산 블루스의 등장, 브리티쉬 인베이전(2)


1969년의 롤링 스톤즈. 비틀즈에 이은 로큰롤 스타들이 미국 침공을 준비하고 있었다


비틀즈 만큼이나 록 음악을 얘기할 때 큰 무게감을 가지고 있는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도
처음에는 블루스 밴드로 시작하였다.


Rolling Stones - (I Can't Get No)Satisfaction

알렉시스 코너의 블루스 인코퍼레이티드 출신의 믹 재거와 브라이언 존스, 키스 리처드가 크게 팀의 중심이었던 롤링 스톤즈는 사실 오늘날 ‘비틀즈와는 달리’ 좀 더 거친 로큰롤을 연주한 밴드로 알려져 있지만, 기실, 롤링 스톤즈는 처음에는 로큰롤의 영향력만큼이나 블루스의 모습을 강하게 보여 주던 밴드였다. 데뷔작인 “The Rolling Stones” 에서는 윌리 딕슨(Willie Dixon)의 ‘I Just Want to Make Love to You’ 의 커버를 실었고, 앨범을 관통하는 척 베리에 대한 오마쥬는 리듬 앤 블루스 밴드로서의 롤링 스톤즈를 잘 보여 주는 것이었다. 롤링 스톤즈의 오늘날의 이미지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1965년의 “Out of Our Heads” 앨범부터일 것이다. 64년작이었던 “12×5” 는 이후의 밴드의 모습과 비교할 때 놀라울 정도로 온순했다.

(물론, 비틀즈가 ‘비틀커트’ 등의 이미지를 일부러 만들었던 것처럼, 롤링 스톤즈도 그러했다. 스톤즈의 첫 매니저였던 앤드류 루그 올드햄은 ‘선량한’ 이미지의 비틀즈와 스톤즈를 차별화시키기 위해 반항적인 이미지를 만들었다. 앤드류는 엡스타인 밑에서 비틀즈의 PR을 맡은 인물이기도 했으니, 시대를 잘 본 셈이었다) 스톤즈는 처음에는 미국에서 그리 큰 반응을 얻지는 못했지만, “(I Can't Get No)Satisfaction” 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스톤즈 처음으로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는 등) 비틀즈와 함께 브리티쉬 인베이전을 이끌게 된다.

이렇게 나타난 영국의 록은, 비단 ‘음악’ 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10대들이 자신들의 음악을 찾고, 그러면서 록 음악은 복합적인 문화적 맥락의 한 구성 요소로서 성장하게 되었다. 사실 이러한 면모는 오늘까지도 이어지는 것이다. 어떤 물건들 - 이를테면, 철제 악세사리나, 독특한 헤어스타일 등 - 의 착용을 통해 록에 명확한 정의적 의미를 부여하는 등의 활동이 나타났다. 사이먼 프리스는 그래서 록 음악의 청중들을 ‘마치 콘플레이크처럼 소비하는 수동적 대중이 아니라, 음악을 단결의 상징이며 행위의 영감으로 만드는 능동적 공동체’ 라고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록 음악은 이제는 사회적 배경과 ‘확실히’ 관련을 갖게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곧 음악 산업은 록 음악을 유행과 잡지, 미디어에 나타나는 이미지들, 스타의 아우라 등으로 이루어진 문화적 맥락들로 둘러싸기 시작했다. 록은 미니스커트, 비달 사순 미용실, 크레이프 구두 등 수 많은 상품들의 선전 수단이 되기도 하였다.

당시의 영국 청년문화가 일관된 것은 아니었다. 50년대에 기원을 둔, 순수 로큰롤 애호가들이 존재했다. 당시의 모습을 보며 로큰롤 창시자들의 메시지, 그 원초성이 약해지고 있다고 생각한 이 소위 ‘로커’ 들은 과장된 헤어스타일과 가죽옷, 육중한 모터사이클 등으로 자신들을 표현했다. 반면 유행을 따르는 부류였던 모드족(이 말이 어떻게 나타났는지는 불분명하지만, 통상 모던스moderns 또는 모더니스트modernist의 의미로 사용되었다)은 짧은 머리에 스쿠터를 통해 모던하고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앞에서, 비틀즈의 피트 베스트의 탈퇴를 얘기했는데, 피트가 ‘로커’ 로서 말쑥한 차림을 거부했다는 것도 그 원인의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당연히 모드족을 상징하는 음악들이 나타났다. 물론 앞에서 얘기한 밴드들도 이와 완전히 무관하지는 않지만, 모드족의 신념을 노래했던 밴드들이 있었다.

The Kinks - Waterloo Sunset. 영국의 Q매거진이 뽑은 영국의 최고 명곡 50선에서 2위를 차지한 바 있다.
(1위는 Beatles - A Day in the Life)(기사는 여기)

킹크스(The Kinks)는 사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밴드는 아닐 것이지만, 백인 블루스의 기념비적 작품이었던 ‘You Really Got Me’ - 참고로, 이 곡의 녹음 세션에 존 로드(Jon Lord)와 지미 페이지가 참여했다. 물론 딥 퍼플과 레드 제플린의 그 양반들이다 - 를 만들어낸 밴드였고, 무려 비틀즈, 롤링 스톤즈, 더 후와 함께 당대의 ‘빅 4’ 식으로 불렸던 밴드였다. 영국 ‘뮤직 홀’ 의 전통을 로큰롤과 결합한, 꽤나 영국적인 런던 토박이들의 밴드였던 킹크스는 덕분에 미국에서는 활동할 수 없었지만, 뒤에 브릿 팝/기타 팝 밴드들 및 헤비 메틀 밴드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The Who - My Generation. 1970년 The Isle of Wight 페스티벌에서.

모드족의 신념을 노래했던 가장 대표적인 밴드는 더 후(The Who)일 것이다. 원래 하이 넘버스라는 이름이었다가 이름을 바꿨던 이들은 파괴적인 무대 매너 - 공연 끝나고 장비들을 때려 부수는 - 로도 유명한 피트 타운센드(Pete Townshend)와 로저 달트리(Roger Daltrey), 존 엔트위슬(John Entwistle), 키스 문(Keith Moon)으로 결성되었고, 멤버의 변경이 있기는 했지만 현재까지도 활동하고 있다. 달트리 특유의 ‘말더듬이’ 후렴구로도 유명한 ‘My Generation’ 은 가장 대표적인 모드의 송가일 것이다.
(물론 사실, 이 곡이 세대 의식을 표현하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사실 그것은 록 음악에 참여하는 노동계급 십대들의 자기의식에 가까웠을 것이다. 이 곡 자체가 세대 의식의 표현이었는가? 그렇게 말하기는 어려울 거라 생각한다) 더 후는 즉, 당시 10대들에게 록 음악의 개념을 실현하는 화신이었던 셈이다. 재미있는 것은 리더였던 피트 타운센드는 롤링 스톤(Rolling Stone)지와의 인터뷰에서 모드족이 자신들을 리드한 것이었다고 말했다는 점이다. 청년 문화로서의 록 음악은 뮤지션들만이 아니라, 그 문화를 향유하던 청년들이 분명히 참여했던 것이다. 그리고, 통상 간과되는 부분이지만, 그에는 뮤직 비즈니스의 영향력도 분명히 존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