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즉문즉설로 깨달음 주는 법륜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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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보기=====/김제동의 똑똑똑

(31) 즉문즉설로 깨달음 주는 법륜 스님


 
ㆍ“진정 복지사회 위한다면 투표를 잘해야 합니다”


“제동씨를 보면 아직 덜 여물었지만 선적인 예지력이 있어요. 공부는 안 했는데도 ‘번뜩번뜩’하는 것 말이에요. 지금도 늦지 않았는데 스님이 되는 게 어때요? 고기 안 먹고, 산 좋아하고, 혼자 사니까. 내가 보기엔 공부를 조금만 하면 아주 유명한 스님은 못 되더라도 땡중보다는 나을 것 같은데….”


몇 달 전 법륜 스님(58)이 진지하면서도 온화한 표정으로 내게 하신 말씀이다. 처음에 농담 삼아 들으며 웃고 넘겼는데, 삶이 파도처럼 요동칠 때마다 이 말씀이 자꾸 마음속으로 차고 들어온다. 스님과 인연을 맺은 지 고작 1년 남짓, 스님은 내 삶의 한가운데 굳건히 자리잡으셨다.


묻고 바로 답한다는 ‘즉문즉설’. 산처럼 큰 문제라도 스님 앞에선 모래알처럼 흩어진다. 인간의 욕심과 집착이 번뇌와 고통을 불러오고, 세상만사가 괴롭고 복잡한 건 우리네 마음속이 복잡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스님은 북녘동포들이 겪고 있는 식량난 해결을 위해 밤잠을 설치시고, 세상의 그늘에서 굶고 있는 이웃을 위해 눈물을 흘리신다. 그래서 스님의 법당은 산 속이 아닌 우리네 삶 한가운데 있다. 


 



 


법륜 스님 “아이가 뭔가를 잘못했을 때 야단칠 게 아니라, 네가 몰라서 이런 결과가 생긴 것이다. 그러니 그 이치를 알아야 한다고 가르쳐야죠. 모든 이치를 다 직접 경험할 수 없으니까 공부를 통해 남이 경험한 것을 알아가는 거예요. 그래서 공부가 자기 삶과 직결되도록 해야 합니다.” 김제동 “그런데 지금 많은 부모들은 그 이치보다는 점수만 잘 나오는 공부에 목숨을 걸고, 요행을 바라는 거네요.” | 김기남 기자




- 얼마 전 미국에 다녀오셨다면서요. 무슨 일로 가신 거예요? 


“북한의 식량난을 알리기 위해서요. 북한 식량난의 위기상황이 어느 정도인지, 왜 이 상황이 생겼는지, 인도적 지원은 왜 필요한지 이런 문제에 대해 미 국무성과 의회 관계자들을 만나 대화했어요.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려면 가장 필요한 때인 지금 결단을 빨리 내려야 한다고 설득했어요.”


- 교민들과 ‘즉문즉설’도 하셨을 텐데 교포들 분위기는 어떤가요?


“해외에 계신 분들이 심리적 불안 정도가 좀 더 큰 것 같아요. 아무래도 이민간 분들은 언어도 잘 안 되고 문화가 다르다 보니. 그런 면에서 정신적 스트레스가 많은 것 같아요.”


- 무슨 말씀 하셨어요? 


“다른 건 몰라도 미국에 살면서 경제적 문제로 힘들다고 하는 것은 65억 인구에 대해 죄짓는 거다. 전 세계 사람들이 미국에 가면 해결되리라고 생각하는데 정작 미국 사는 사람이 못살겠다면 다른 나라 사람은 무슨 희망을 갖고 사느냐. 그러니 적어도 미국에 사는 사람은 그런 말 하면 안된다고 얘기했어요.”


- 스님, 인도적 대북 지원에 대해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은 게 현실인데요.


“사람들이 북한정부에 대해 반대할 수 있고, 나쁘게 생각할 수 있지요. 그렇다 하더라도 북한 주민은 북한 정부로부터 소외받는 피해자입니다. 그러니 도와야지요. 물론 인도적으로 지원하면 제대로 분배가 이뤄지느냐는 문제가 제기되는데 여기엔 토론이 필요합니다. 취약한 쪽에 제대로 가도록 지원하는 방법은 계속 연구해야지요. 그런데 미우니까 주지 말자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그게 문제죠. 분배에 일부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굶주림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도와야지요.”


- 분배에 대해 연구해야 하는데 아예 안 준다면 논의 자체가 안되는 거네요. 어쨌든 굶어죽는 사람이 생겨서는 안되는 것 아닙니까. 


“이번에 일본에서 지진이 일어났을 때 일본은 우리보다 더 잘 살고, 과거사 문제에 대한 진솔한 사과가 이루어지지 않아 반일감정이 해결되지 않고 있는데도 인도적 지원을 했잖아요. 우리가 일본을 도와주면서 과거사에 대한 사과를 조건으로 내세운 건 아니잖아요. 피해주민들이 겪는 고통에 연민과 아픔을 느끼고 도운 거잖아요. 그런데 일본에는 인도주의적 지원을 하면서 왜 북한에는 하지 않느냐는 거죠. 게다가 정부가 안주는 것은 그렇다 쳐도, 민간이나 외국에서 지원하는 것까지 반대하는 것은 좀 지나치지 않나 싶어요. 결국 우리나라가 반인도적 국가의 이미지를 갖게 되는 거지요.”


- 우리나라의 국격을 위해서도 안 좋은 거네요. 


“그뿐만 아니라 북한 주민들의 민심을 얻기 위해서도 식량지원이 필요해요. 북한주민들의 민심을 얻어야 통일을 이루지요. 또 국제사회의 이미지도 중요합니다. 북한이 어려울 때 한국이 지원해서 그 위기를 극복한다면 국제사회의 통일 외교에도 도움이 돼요. 만일 중국이 지원해서 위기를 극복한다면 앞으로도 북한은 중국이 관리하는 것이 낫다는 이미지를 줄 수 있잖아요.”


- 그럼 어떻게 분배가 잘 되도록 해야 할까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분배과정에서는 항상 많은 문제가 일어나요. 100% 막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지만 유실을 최대로 줄이는 방안을 강구해야죠. 예를 들어 식량을 북한의 여러 항구로 분산해 보내는 것도 한 방법이지요. 또 항구에서 넘겨주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지역 단위에서 확인작업을 할 수 있도록 협의하는 등, 분배의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지요.”


스님은 잘나가는 ‘연예인 스케줄’보다 더 바쁘시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정이 이어지고 서울과 지방, 외국까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신다. 얼마 전엔 단식수행 중이시던 스님 곁에 며칠을 머무른 적이 있었다. 나에게 ‘좀 걷자’고 하셔서 따라나섰더니, 그 길로 24㎞를 쉬지 않고 가셨다. 죽을힘을 다해 따라가면서 일종의 배신감을 느꼈다. 


▲ “부모가 다 해줘 놓고 아이에게 되레 야단… 이치를 설명해야죠”

▲ “부모가 어쩌지 못한 문제를 학교 교육에서 해결하기 어렵군요. 고치려 해도 고쳐지지 않잖아요.” - 김제동


- 저더러 그 다음날엔 경주 남산도 가자고 하셨잖아요. 전 정말 단식하는 분 맞나 싶었어요. 그런데 즉문즉설 하시다보면 어떤가요? 요즘 세상에 자녀교육 때문에 고민하는 분이 많을 듯한데요.


“아이들 자체는 문제가 없어요. 문제는 부모지요. 모든 것을 부모가 다 해줘요. 그렇게 키웠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거죠. 아이가 공부를 못한다고 해도 야단치면 안돼요. 대화해야죠. 지금 공부를 하기 싫으면 안해도 되는데 결국은 대학은 갈 수 없다. 그러니 대학을 가려면 하기 싫어도 공부해야 하고, 공부하기 싫다면 대학 가는 것을 포기해라. 아무리 아이라도 본인이 선택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게 해줘야 해요. 이치를 설명해 주라는 겁니다. 뜨거운 구슬을 쥐기 위해 손을 데지 않고 잡을 방법은 없어요. 대부분의 고민이 구슬도 갖고, 손도 안 데이는 방법이 없겠느냐. 전부 그걸 물어봐요.”


- 왜 그럴까요. 


“욕심 때문이지요. 공부는 안 하고 좋은 대학은 가고 싶고, 복은 안 짓고 복받고 싶고, 죄는 지어놓고 벌은 받기 싫고. 여기서 종교가 부정적 역할을 해요. 믿으면 두 가지가 다 된다고 말하거든요. 가을에 추수하고 싶으면 봄에 씨를 뿌려야 해요. 원래 종교의 역할이 그 이치를 가르쳐주고 깨우쳐줘야 하는데 지금 종교는 그렇지 못해요. 좋은 대학 가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하는데 엄마가 절에 가서 열심히 기도하면 된다고 가르쳐요. 공부도 안 하고 부처님께 기도해서 좋은 대학 간다면 부처님이 부정입학시켜주는 브로커인가요? 이런 부처님, 이런 하느님 믿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어쨌든 본인이 선택하고 결과를 받아들이는 용기, 책임을 갖도록 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에요.”


- 그런데 지금 현재 교육시스템에서는 힘든 거죠. 


“시스템도 문제지만 첫째는 부모가 문제라고 봐요. 어릴 때 삶의 방향이 바로잡혀야 학교 가서 교육이 가능한데 부모들로부터 인간 삶의 기본 훈련을 못받으면 학교에서도 바로잡기 힘들어요. 부모도 어찌 못하는 아이를 학교 선생님이 바로잡기 힘들죠. 선생님이 수행자도 아닌데. 모두들 하나 낳아서 키우기 때문에 모두 왕자이고 공주잖아요. 그런 아이를 야단친다거나 때린다면 선생님 자리가 위태로운 지경이 되지요.”


- 부모가 어쩌지 못한 문제를 현재 학교 교육에서 해결하기가 힘든 거네요. 그런데 고치려 해도 고쳐지지 않으니 힘들잖아요. 


“우린 자꾸 누군가를 고쳐서 행복해지려고 해요. 그런데 나도 내 마음대로 안되는데 어떻게 남을 고치겠어요. 그러니까 남을 억지로 고치려고 애쓰는 것보다는 고쳐지지 않은 상태에서도 내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해요. 고치지 말라가 아니라 스스로가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거죠. 우리가 고쳐야 할 세상의 부정과 불의 등 엄청난 것을 놔두고 아이 버릇 한두 가지 고치는 게 뭐 그리 대단한 과제인가요? 그것 때문에 세상이 안되는 건 아니잖아요.”


▲ “경쟁 뒤진 사람 배려, 그게 복지사회 목적… 북 동포도 돌봐줘야”

▲ “요즘 젊은이들의 괴롭다는 소리가 도처에서 나오는데 어떻게 해야 희망있는 삶을 살 수 있을지.” - 김제동


- 즉문즉설을 해보시면 또 어떤 질문들이 많나요? 


“그날 분위기나 모인 사람들의 성격에 따라 달라요. 평균적으로 보자면 나이드신 여성분들은 남편이나 자식에 대한 이야기가 많죠. 대체로 인간관계, 다음으로는 건강문제인 것 같아요. 경제적인 문제도 있고. 돈을 빌려가서 안 준다, 집을 팔려고 내놨는데 안 팔린다, 지나가던 사람이 나보고 단명한다고 하는데 사실이냐, 아이가 맺힌 게 많아 굿을 해줘야 한다는데 등등을 물어보는 경우도 있어요.”


- 그럼 뭐라고 대답하세요? 


“결국은 어떻게 마음을 갖느냐는 문제죠. 다 자기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들이죠. 집을 급하게 팔고 싶은데 안 팔린다면 싸게 내놓으면 될 거고, 굿을 해야 좋다고 하는 말이 신경 쓰인다면 하면 되죠. 권한 사람이 좋다고 하니 자기 마음이 혹한 건데, 그 마음을 따르면 되지 뭐가 문제인가요.” 


- 뭐라도 스님 앞에 가져오기만 하면 고민이 별 게 아닌 게 돼요. 하하. 그런데 혹시 스님은 고민 없으신가요? 


“있죠. 굶어죽는 북한 동포들을 보면서 해결책을 찾고 있는데 잘 안되니까. 늘 앉으나 서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가장 큰 고민이죠. 제3세계의 굶어죽는 사람들도 도와서 살리자고 하는데, 바로 우리 동포이고 이웃인 북한 사람들이 굶어죽는 것을 그냥 방치할 수는 없잖아요. 그 해결방법을 찾는 것이 과제이죠. 나 역시 그 문제에 집착하다보면 마음이 조급해질 때가 있는데 그런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죠. 뭔가를 이루고 싶은데 잘 안될 때, 거기에 집착하다보면 원인을 남에게 전가하고 상대를 미워하게 될 수 있어요. 그럴수록 마음을 돌이켜 원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죠. 또 안타까운 것은 통일의 기회를 놓치고 있는 거예요. 앞으로 더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패권경쟁이 격렬해지고 고착화할 텐데 그 틈바구니에서 남과 북의 통합기회는 그다지 많지 않을 것 같아요. 통일의 기회를 지금 잡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움이 크지요.”


- 요즘 젊은이들, 괴롭다는 소리가 도처에서 나오잖아요. 그들에게 해주실 말씀은 없으신가요.


“우선 아침에 일어나서 눈 뜨자마자 ‘아, 내게 또 새로운 하루가 주어졌구나’ 하는 자각이 필요합니다. 내가 살아있는 것에 대한 감사지요. 두 번째로는 대한민국이 문제가 많은 나라지만, 그래도 세계를 다녀보면 대한민국이 살 만한 나라라는 점에 감사하면 좋겠어요. 이 두 가지가 개인적인 차원에서 노력해야 할 점이라면, 사회적인 측면에서 보면 지금 우리사회는 양극화 현상이 너무 심해요. 제도적으로 개선책을 내놓아야 해요. 또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경쟁도 공정해야 하지만, 경쟁에서 뒤처진 사람을 위한 배려도 있어야 됩니다. 즉 복지사회 건설이지요. 그러면 어떤 방법으로 이룰 것이냐? 투표죠. 이제 혁명은 선거를 통한 혁명밖에 없어요. 군인들이 총들고 나와서 개발을 밀어붙이고, 학생들이 피흘려 민주화를 이루었지만 지금은 투표를 잘 해야 해요. 지연, 학연이 아니라 정책을 보고 투표해야 하고, 정치인이 하는 말이 아니라 그가 살아온 삶을 보고 누구를 투표할지 고민이 있어야지요.”


- 결국 개인적 수행과 동시에 사회 전체가 할 수 있는 공동체 운동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거네요.


“이게 불교적으로 말하면 개인의 완성인 성불과 사회건설인 정토지요. 스스로는 언제나 진리를 깨우쳐 부처의 길로 가는 한편, 깨우치지 못한 사람을 배려하고 그들이 덜 고통받고 살 수 있도록 정토를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우선 나부터 잘하자는 것과 사회 전체가 개선되도록 하자는 이 두 가지가 병행되어야 합니다. 지금 보면 종교는 자기만 편하면 된다는 이기심으로 흘러 세상을 외면하고 있잖아요. 자기 인생을 행복하게 살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는 것과 동시에 사회 시스템을 올바르게 바꾸려는 노력도 함께 해줘야 한다는 거죠.”


기독교적 관점에서 말한다면 이는 범사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의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일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리라. 굳이 이 설명을 붙인 이유를 물으신다면? 팔순이 다 되신 어머니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