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안희정 충남지사
본문 바로가기

=====지난 칼럼보기=====/김제동의 똑똑똑

(15) 안희정 충남지사

‘좌희정, 우광재.’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집권 당시 대중들은 두 사람을 그렇게 불렀다. 하여 이들은 노 전 대통령과 더불어 부침을 겪다가 나란히 충남과 강원의 수장에 당선됐다.
안희정과 이광재, 언론에서는 ‘노(盧)의 남자들 부활’이라고 칭했다. ‘부활’한 안희정 충남도지사와의 만남에 앞서 노 전 대통령을 보내드리던 그날이 떠올랐다.
서울시청앞 노란 물결 속에서 울면서 노제를 진행했던 짧고도 길었던 순간, 나는 그곳에서 ‘역사의 한 장면’을 직접 체험했다. 노 전 대통령의 한 측근은 “좌희정은 조직에 강하고, 우광재는 기획에 능했다”고 평했다. 나에게 안희정 지사는 투사적인 강인함과 단단함, 날카로움으로 각인돼 있다. ‘야생마’가 이른바 ‘꼰대’가 됐다니 쉽게 상상이 안갔다.


안희정 충남도지사와 방송인 김제동. (김영민 기자)




김-어떻게 지내세요?
안-초짜 도지사가 돼 놔서 정신없어요. 신접생활하느라. 공부하느라 바빠요.
김-무슨 공부요?
안-현안 파악하는 것 자체가 공부죠 뭐. 경험자체가 공부니까 경험을 잘 하려구요. 책으로 보는 공부도 있지만 시간을 보내고 경험하면서 체득하는 공부도 있어요.

김-눈빛이 달라진 것 같아요. 좀 부드러워졌다고 해야 하나. 들판을 헤맬 때는 좀 사나웠던 것도 같아요.
안-선거하는데 어떤 분이 그러더라구요. 잘 웃는게 좋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옳은 소리만 골라서 하는데 좀 따뜻하게, 웃으면서 하라고. 어떨 땐 무서울 때도 있다면서. 그래서 어떻게든 웃으라고 하더라구요.
김-날카로운 게 매력이시기도 한데.
안-그래요? 다시 돌아가야 하나.

김-뭐가 제일 달라지셨어요?

안-바빠진거죠. 뭣 보다 하루에도 몇 번씩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는데 하루에 6번 할 때도 있어요. 오늘도 5번 했는데. 그게 가장 많이 바뀐 생활 중 하나예요. 국기를 보면서 나라를 사랑하겠다고 맹세하는 데 일종의 자기 최면 효과도 있어요.

김-학교 다닐 때는 투사의 삶을 살았잖아요. 그게 국가를 향해서라기보다 체제를 향한 투쟁이었는데 어떠신가요. 지금은 제도권으로 오셨고 투쟁하던 대상인 곳으로 들어오신 건데 소회가 궁금해요.
안-우리가 했던 것은 반독재, 반국가 투쟁이 아니었어요. 특권과 반칙에 대한 투쟁이었지요. 헌법을 무시하고 총칼로 권력을 잡으면서 마음대로 했던 것. 그게 특권이죠. 그 특권에 반대한 겁니다. 그런 면에서 지난 참여정부는 준법을 했어요. 법치주의 원칙에 따라 법의 원칙을 지켰을 뿐인데 사람들이 우리보고 아마추어래요.
김-어쨌든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자리에 가신 건데요. 지금까지 정치권을 바라보면 드는 생각이 왜 저기, 저 자리가면 변할까 하는 생각이에요. 그런 생각한 적 있으시죠? 어떻게 하면 특권의 유혹에서 자유로우면서 주어진 권리를 잘 사용할 것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실 텐데요.
안-지난 정부 10년을 거치면서 그런 요소는 거의 없어졌어요. 제가 어렸을 때만해도 국회의원은 엄청난 특수권력을 가진 사람이었죠. 그런데 이젠 청와대 백을 써도 안통하는 건 안 되잖아요. 그만큼 우리 사회가 특수한 권력과 지위를 허물어버렸어요. 제가 충남도내 16개 시군을 다니면서 도민들에게 이야기해요. 제가 안 되던 일을 특권과 힘을 동원해 해드릴 수는 없어요. 그렇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하셔야 합니다라고 하죠. 특권을 없애는 민주화의 싸움은 거의 끝났다고 봐요. 1단계의 민주화 투쟁 말이죠. 이젠 2단계 민주화 운동이 필요해요. 그건 도민들이, 국민들이 무언가를 직접 결정하는 그런 단계가 완성되어야 한다는 거죠. for the people 이 아니라 by the people. 즉 권력을 쥔 사람이 국민을 위해 뭘 베풀까가 아니라 국민에 의해서 결정이 이뤄지도록 돕는것, 사회자의 역할을 해야한다는 겁니다. 전 도정의 현안도 그 원칙을 갖고 결정해나갈 생각입니다.


(김영민기자)




김-모르겠습니다만 그런 입장 표명이 최근 4대강에 대한 입장이 바뀌었나 하는 의문을 들게 만들기도 한 것 같습니다. 입장이 어떠신거죠?
안-전 기본적으로 그 사업을 왜 하는지 모르겠고 그렇게 막대한 예산을 그렇게 사용하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금강 주변지역에 사는 분들이 찬성하는 내용의 서명을 가지고 오는데 그분들이 왜 찬성하는 것인지는 여쭤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4대강사업은 정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수질개선이나 홍수예방과는 상관없어요. 그럴려면 오염원을 정비하고 지천을 정비하는 데 예산이 집중 돼야 하는데 제가 아무리 현장을 다녀봐도 그런 사업은 이뤄지지 않고 그에 대한 예산도 없어요. 실질적인 컨셉은 토목전략에 기반한 지역개발 사업이에요.

강의 폭을 넓히고 친수공간을 만들어 그 주변지역을 개발하고, 퍼낸 흙을 가지고 저지대 땅을 높여 땅의 가치를 높여주자는 것. 즉 친수공간 개발을 통한 부동산 개발전략, 부자 만들어주는 전략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정부는 엉뚱하게 홍수예방이니 수질개선이니 하면서 말을 빙빙돌려 갖다 붙일 게 아니라 솔직히 친수공간 개발을 통한 부동산·경기활성화 전략이라고 솔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이에 대한 찬반토론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지금 굉장히 비효율적인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는거죠.
저는 이 부분을 분명히 하고 도민들이 그 핵심 부분에 대한 토론을 해 입장을 내보자고 특위를 구성해 놓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내 입장이 뭐라고 크게 떠들면 안될 것 같아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는 건데 어쨌든 갈등의 주제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이제 적대적 모순에 기반해서 웬수가 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다름과 다양성으로 싸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묵묵히 자기 일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같아요. 그런데 위에 계신 분들이 문제를 만들어 왔던 거잖아요. 그리고 안지사께서도 그동안 말해오던 그 윗분이 되신 건데요.
안-전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대통령 만들었어도 감옥에 가 있던 사람이 뭘 그런 생각을 했겠어요.
제가 감옥에서 나오니까 저한테 다들 몰려오더라고요. 이런 저런 청탁을 가지고. 그래서 그랬죠. 내가 감옥간 것도 못 막고 앞가림도 못했던 사람이 뭘 할 수 있겠냐고. 이젠 옛날과 같은 그런 특권은 없어졌다고 봐요.


김-그래도 요즘 다시 많이 나오고 있는데요.

안-그건 오랜만에 권력을 잡은 예전 분들이 세상이 변한 것을 모르고 옛날 방식으로 다시 해보려고 하니까 나오는 현상들이라고 봐요. 전 독재자도 국민이 동의해주니까 독재를 유지하는거라고 생각해요.
우리 옛날부터 들어왔던 말중에 이런 게 있죠. 팔이 안으로 굽는다, 억울하면 출세해라,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이 세가지 말이 지난 우리 역사를 지배해왔던 이데올로기에요. 이같은 대중들의 믿음과 역사의식이 독재를 성립시키고 말도 안되는 사태들을 만들어냈던 거죠. 이제 이런 믿음과 상식을 없애야 합니다.
도민들께도 그런 말씀 많이 드려요. "억울하면 출세하라고요? 출세해서 뭐하게요. 내가 받은 만큼 사람 괴롭히게요? 그런 악순환은 이제 끊어버려야 한다고. 전 법앞에 누구나 동등하게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만드는데 지난 시절을 보내왔고 앞으로 도지사도 그런 원칙을 갖고 할랍니다"라고 말이죠.

그럼 지난 시절을 지배해 왔던 믿음과 상식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어떤 분이 관급공사에 입찰했는데 떨어졌다고 쳐봐요. 분명 그분은 내가 빽을 덜 써서 그래, 더 쎈 빽을 찾았어야 하는데 하는 이런 생각과 믿음을 안 갖게 하려고 한다는 거죠.
그럴려면 결국 모든 과정을 다 공개하고 그 결정과정에 여러분들이 직접 참여하도록 하는 겁니다.

지난 정권 10년을 지내면서 보여줬어요. 대통령 백으로도 안되는게 많다는 것을. 그걸 보여주니까 낡은 정치문화에 있던 사람이 너희들 아마추어네 하면서 업수히 보고 만만히 여겨요. 그리고 이들이 떠난 뒤에 이제 옛날 방식으로 집권하고 있어요.
그런데 국민들이 알잖아요. 어떤 대통령이 좋았는지 안 것이고 법과 규칙은 우리 스스로가 결국 정하는 것이라는 것을 안거죠. 그게 촛불집회였어요. 600년전 경국대전 서문에도 나와있지만 절대 국민을 이기는 권력은 없습니다. 통치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으로 어떤 결과를 이끌어 내는 것이 올바른 정치입니다.

(김영민기자)


김-도지사 출마 계기가 특별할 수 밖에 없죠?

안-2000년 노무현대통령이 부산 북강서을에 출마했을 때에요.
그때 당시 선거운동으로 사랑방 좌담회라는 걸 했는데 보좌관들이 조를 짜서 각 동마다 가서 아파트 부녀회를 상대로 일종의 선거운동을 하는 거였죠. 그런데 어느날 노무현후보가 그래요. ‘네가 들어가는 사랑방 좌담회가 제일 재미 없다고 소문났더라. 들리는 얘기로는 아줌마들이 너만 들어가면 다 존다는데?’ 그래서 ‘아니에요. 제가 얼마나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요.’ 말은 그렇게 했는데 자존심이 확 상하더라구요.
그러면서 속으로는 내가 대중정치인 자질은 없나 보다 생각했어요. 그리고 2008년 전당대회에 최고위원으로 당선된 뒤에 봉하마을에 인사를 드리러 갔어요. 그때 저랑 산책하시면서 이야기하시는데 저에게 ‘난 자네가 정치 못 할 줄 알았어’라고 하시는 거예요. 대중정치인으로서의 자질이 발전했다는 이야기였죠. 그 때 굉장히 마음이 뿌듯했어요. 

김-지난 해 많은 것을 느끼는 시간이셨을텐데요.
안-전 충청도 사람이라 그런지 자기감정을 읽는 데 익숙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많이 느껴요. 내가 정말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했구나. 그 때는 내 감정상태를 몰랐는데 갈수록 '맞아, 참 좋아했어'라고 느껴요. 대중정치인이 되겠다고 나서면서 그게 훈련되더라고요. 그리고 제 감정을 잘 파악해야 한다는 걸 알았어요.
그걸 느낀 게 지난 해 봉하마을에서였어요. 상주역할 했는데. 어느날 부여에서 버스 3대가 왔어요. 충청도 온분들이 안희정 보고 싶다고 나오라 그래서 동네사람이래서 얼른 나갔지요. 왜 충청도 사람인지 알겠더라구요. 전국각지 사람들 모인 자리였는데 딱 표시나요. 자기감정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익숙하지 않아요. 충청도 사람들이. 그래서 자기를 정의할 수 없어. 그래서 무엇을 추진하기 어렵죠.
자기를 표현해 보는 경험이 없기 때문인데 그걸 오래 쌓아오다 보니 자기것을 못 드러내죠. 그래서 내 것을 드러내보고 들여다보자고 느꼈죠. 그랬더니 굉장히 편해지던데.


김-질문과는 직접 적인 상관 없는 답으로 자꾸 돌리시는데 피하시는 듯해요. 감정이 울컥해지시거나, 답변이 힘들어보이신다는 생각도 들어요.

안-아니에요. 말할 수 있어요. 내가 진정으로 애정을 갖고 좋아했던 분이에요. 제가 어떤 놈이었냐면 고 1때 혁명하겠다고 자퇴하고 나가 살았는데 그런 놈을 노대통령이 건져준 거예요. 90년대 초반은 정말 고통스러운 시기였어요. 그때까지 나를 움직이는 동력이었던 혁명의 시대가 끝나면서죠.
16살에 시작한, 내가 옳았다고 믿었던 혁명의 역사가 다 쇠락하고 아무것도 아닌 현실로 돌아가 버린 상태에서 고통스러워 하던 나에게 삶의 의미를 준 분이 노대통령이었죠.

여담인데 그땐 혁명적 이념을 갖고 결혼했던 많은 부부가 혁명의 시대가 끝나면서 많이 이혼했어요. 혁명의 시대에는 남편을 뒷바라지 했던건데 그 시대가 끝나니가 내 남편이 한심한 백수가 돼 있다는 그런 거죠.
김-자신의 이야기신가요? 사모님도 고생 많이 하셨을텐데
안-저는 다행히 교편생활을 하던 집사람이 14년 동안 열심히 저를 거둬주면서 도와줬어요.
김-말이 14년이지...
안-그래서 제가 집사람이 큰 소리치면 아직도 맞서질 못해요.
김-노대통령과 사모님이 함께 안지사님을 건져주신 거네요.
안-그런 셈이기도 하죠.
김-그럼 사모님앞에서 꼼짝 못하시겠네요.
안-네. 우리 집사람의 심리적 상태에 굉장히 영향을 많이 받지요.
김-우하하. 완전 빵 터졌는데요. 심리적 상태? 그거 쉽게 말하면 저 집사람 눈치 엄청 봐요 라던가 저 공처가예요 라고 한마디 하면 될 것을 심리적 상태에 영향받는다는 아주 드문 문어적 표현을 쓰시다니. 완전 웃겨요.
이게 진짜 재미있는 유머에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 거의 없어요.

안-웃으라고 한 말 아닌데. 저 이렇게 써요.
김-솔직히 말씀드리면 전 유머가 직업인 사람인데 안지사님이 의도한 유머는 하나도 안웃기고 의도하지 않은 유머가 무지 웃겨요.
안-전 집사람 뿐 아니라 타인의 심리적 상태도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해요.
감정적인 배려가 배인 편인데 충청도 역사의 특수성 때문이죠. 고구려 백제 신라 역사에 나타나죠. 전 황산벌이 고향인데 우리 역사에서 가장 많은 죽음이 있었던 곳이 그곳이에요. 그 들판에서 살았던 사람의 역사적, 심리적 상태는 자기를 커밍아웃 하는 것이 굉장히 위험하던 시대를 살았던 거에요. 하루는 백제 땅 하루는 고구려땅 또 그 다음은 신라땅 이런식이었죠. 그 역사의 누적이 심리사적 특성을 반영할지도 모르는 것 같아요.

 

(김영민기자)



김-저도 토크 콘서트에서 이야기한 적 있는데 그런 지역별 기질의 특성이 굉장히 다른 것이 재미있더라구요. 냅둬유 개나 주게 이런말이 전형적인 충청도 스타일을 반영한거죠.
안-맞아요. 그게 굉장히 유머러스하면서도 무서운 말이에요.
김-어쨌든 사모님 눈치 많이 보신다는 거네요.
안-음. 눈치가 아니라 집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우울한지, 슬픈지, 화가났는지, 즐거운지 그런 감정상태의 종류별로 대응을 해드리고 싶은거죠.
김-남편이 아니라 보좌관, 비서진의 멘트로 들립니다.
안-사실 저 아내가 버리면 갈 데가 없는 사람이에요. 14년간 거둬주고 버리지 않고, 며칠 외박하고 와도 끝내 문을 열어주면서 오랫동안 은혜를 베풀어 주셨죠. 하하
김-거기다 옥바라지도 여러차례 하셨고.
안-87년과 88년. 그리고 2004년에 옥바라지 했죠.
김-옥바라지가 아니라 군대 뒷바라지도 힘들어 고무신 거꾸로 신는 사람들도 많은 거 보면 정말 대단하세요.
아드님이 둘이죠. 꼰대라고 불리신다고.
안-고2, 중2. 새끼들이 내 말도 안듣고.... 나쁜놈들... 에이.

김-지금 보니 아이들의 심리상태에도 민감하셔야겠네요. 아이들에게는 어떤 아빠세요.

안-제가 좋은 아빠 역할을 못했죠. 지금 좋아지려고 노력하는데 어릴때부터 초등학교 다닐때까지 좋은 아빠가 못 돼준 것이 미안해요. 애들이 나 무시하는 것 같아.
가만히 보면 참 우리 때랑 많이 다른 것 같아요. 둘째가 드럼 배운다고 해서 소리를 조절할 수 있게 전자 드럼을 사줬어요. 그런데 일요일 날 오전 10시쯤에 연습하다가 위층 사는 분에게 혼났어요. 그분 가고 나서 다시 애들한테 일요일 오전 10시면 늦잠 자는 시간인데 그 정도도 고려못하냐고 했죠. 미루어 짐작하면서 연습해야지 했더니 그런거 다 고려하면 24시간 내내 못한다. 내가 내 스케줄대로 하다가 상대가 뭐라고 하면 그때 안하면 되지 않냐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이들은 자신의 욕구와 행복을 추구하다가 부딪히면 룰을 만들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나랑 살아가는 태도와 방식이 완전히 다르더라고. 내 식대로 살다가 상대가 불편하다고 하는 부분은 조절하면 된다는 생각. 인생 사는 스타일로는 이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김-그런 것 같아요. 저도 정신과적인 분석을 받아본 적이 있는데 타인의 감정을 읽는 능력이 초능력 수준이라 제 자신이 굉장히 피곤하답니다. 동감해요. 지사님 말에. 요즘은 좀 자유분방한 아이들이 부러울 때도 있어요.
안-맞아요. 그러니 우리들 세대...
김-우리라고 묶지 마세요. 저 지사님하고 10년차이 나거든요. 전 X세대예요.
안-아유, 잘났어. 우리 세대는 소위 말해 지식인이 된다는 것. 이 사회에서 촉망받는 사람, 모범생이 된다는 것은 내 것을 버리고 주변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거였어요. 그래서 모든 교육과 사회화 과정은 야생마를 거세시키는 거였는지도 몰라요. 물론 일정부분 거세시켜야 도로도 지켜지고 지붕도 지킬 수 있겠지만...
어쨌든 그런 개성을 거세시킴으로 질서를 얻고 사회를 유지한 마지막 끝자락의 세대가 우리 세대인 것 같아요. 빨리 거세될수록 싹수있다고 칭찬받고 사랑을 먹고 컸죠.

김-바꿔 말하면 빨리 어른이 원하는 아이가 돼줘야 했던 거네요.
안-그렇죠. 그런 사회화과정을 겪었던 세대가 우리인데 이제 내가 마흔 일곱돼서 부딪힙니다. 더이상 나를 쓰다듬어줄 어른이 없고 내가 어른이 됐는데 그 공백을 뭘로 메워야 하나... 40 넘어 많이 느꼈어요.
김-아이가 자신이 원하는 아이가 되는 것이 가장 좋은 거잖아요. 자신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아이들이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고 다른 사람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것이란 말이죠.
그런데 우리 세대는 먼저 관계를 타인이 규정한대로 짜맞춰 밀어놓고 이제 와서 나 자신을 채워넣으려고 하니 힘든거네요.

안-그래요. 그런데 자꾸 이야기하다보니 같은 세대 맞는 것 같구만.


(김영민기자)


 

김-지금은 어떠세요.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건가요.
안-겨울이죠. 가을과 겨울이 오면 모든 생명이 죽음과 시련기 같지만 겨울이야말로 생명이 싹트는 계절이죠.
어릴 때 어머니가 밀가루를 치대서 칼국수를 만드는 것을 봤는데 그만하고 끓이면 좋겠구만 자꾸 또 비벼 치대고 치대고 하는거에요. 내 생각엔 빨리 먹고 싶은데 어머니가 치댈수록 칼국수의 면발이 쫄깃해지는 거죠. 전 그 칼국수의 면발이 역사가 전진하는 방법 같아요. 지금은 구겨지고 치대지고 밟히는 어둠과 겨울 같은 의미지만 그것도 시대적인 전진이거든요.
태양만이 전진시키는 것은 아니에요. 어둠도 그 자체로 전진입니다. 어떤 것보다 노무현의 가치를 생각하게했던 것이 이명박정부잖아요. 불면의 밤을 줬던 아픔이 나를 가장 성숙시켜왔어요.

김-전 사모님이 더 대단하신거 같은데 어떻게 만나신 거예요.
안-대학 1학년 때 만났지요. 생각해 보면 집사람이 당시엔 저를 사회적 정의감에 불타는 존중할만한 동료, 동지로 생각하고 좋아했던 것 같아요. 그때도 전 돈이 없었기 때문에 주로 집사람이 밥을 사줬어요.
김-사귀자는 제안은 누가 하신건가요.
안-제가 편지를 썼죠. 동료로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방학이 됐는데 이 만남을 연장할까 말까에 대한 고민을 하다 편지를 썼어요. 바람직한 연애관에 대해 설명하면서 연애하기로 합의한 거죠.
김-하하. 그러니까 연애하기로 합의하셔서 가치 충돌을 이겨내시고... 그리고 지금까지 합의의 큰 틀을 유지하면서 살고 계신 거네요.
안-그런 셈이죠.

김-전 사모님이 굉장히 궁금해요. 한번 뵙고 싶네요.

안-전에 딴지일보 김어준씨랑 이야기한 적 있는데 그분도 같은 말씀을 하셨어요.
김-어준이 형도 나랑 똑같은 생각을 했구나. 그래서 내가 좌파소리를 듣는 거야. 에휴. 저보고 좌파래요.
안-좌파니, 우파니 하는 것은 사람의 기질과 성향을 말하는 거예요. 태음인 소음인 같은 거죠. 어느 시대나 있었던 기질과 성향같은 것?
어떤 사람이 그러더라고요. 뉴욕 맨하탄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 100%를 민주당 지지자인지 공화당 지지자인지 가려낼 수 있다고. 표정에서 나타난다는데.
김-얼굴로 보면 전 보수아닌가요?
안-아녜요. 얼굴 보면 자유분방할 것 같아요. 하하
김-제가 죽 보면서 세 가지 특징을 발견했어요. 고민되거나 뭔가 의중을 드러내고 싶지 않을 때는 고개를 숙이고, 확신을 가질 때는 상대를 치켜보는 듯 고개를 들고, 웃을때는 굉장히 아이 같이 웃으시는데요?
안-트위터에서 터보고 가끔 살인미소라고 이야기해 주세요.
김-에이 아녜요.
안-왜요? 동의안해요?
여튼 요즘 느낀 건데 사진을 보면 연예인과 일반인의 차이점, 박세리 선수가 처음 우승했을 때와 여러번 우승했을 때의 차이점이 명확해요. 웃음이 달라요. 카메라에 적응된 사람은 정말 많이 웃어요.
웃으려면 마음이 즐거워야 하는데 얼굴 근육을 자꾸 웃는 근육을 만들면서 마음 상태를 유지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감정심리학'이라는 책을 보면 웃는 표정을 짓고 근육을 그렇게 움직이면 그 마음으로 유도된다는 내용이에요.

김-오늘 너무 많은 가지를 내고 있어요. 이리저리 말만 나오면 어찌나 옆으로 잘 새는지. 대학 수업 여러 개 들은 기분이라니까요.
안-긍정의 메시지를 주는게 중요해요.

김-전 학창시절 별 생각없이 살았는데 어떻게 그렇게 일찍 조숙해질 수 있죠?
안-제가 어릴 때는 전형적인 모범생이었어요. 고1 때까지 10년 동안 줄곧 반장하고 범생이로 살면서 줄곧 칭찬받고 살았는데 고1 때 혁명하겠다며 나서서 학교에서 잘렸죠.
짚어보면 어릴 때 책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때 계몽사에서 나온 한국사이야기 12권을 읽으면서 너무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폭정에 시달리고 억압받던 사람이 나라 걱정하고 이야기하는데 정권을 잡으면 똑같이 변해버리더라구요. 그게 너무 이해가 안됐어요. 혼란스럽고.
이런 생각이 들면서 정의감이나 약자에 대한 강자의 의무니 이런생각을 많이 하는 계기가 됐어요.


김-정의가 뭔가요?

안-어떤 도민도 같은 질문을 하더군요. 정의는 강한 사람을 바르게 하고 약한사람에게 힘을 주기 위해 필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김-동의해요. 그리고 전 좀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힘이든 권력이든 뭐든 간에 가지고 있는 사람이 덜 가진 약한 사람에게 조금만이라도 죄책감을 가지는 것  그게 정의라는 생각이 들어요.

안-집권자가 선정을 베푼다든지 학정을 베푼다든지 권력을 잡고 뭔가 베푼다는 것은 결국 똑같은 거예요. 새 민주주의는 베푸는 문제가 아니라 공생과 평화와 조화죠. 통치자와 피통치자가 어떻게 소통하느냐가 전단계였다면 이젠 그 둘이 한몸이 돼 한 곳을 바라 보고 같이 가는겁니다. 그러지 못하면 어떤 통치자도 불행할 수 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