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이 만난 사람> 컴백 성공한 '카리스마 가수'서태지 |
[경향신문]|2000-10-02|15면 |45판 |기획,연재 |5480자 가수 서태지. 사진은 2008년 게릴라 콘서트 당시. /경향신문 DB |
빨간 머리와 흰 얼굴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앳된 소년의 티는 벗었지만 그래도 스물아홉살 청년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아직도 천진난만함을 간직하고 있는 소년같은 청년. 얌전한 걸음으로 조용히 다가와 인사를 건네고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무엇이든 머뭇거리지 않고 솔직하게 털어놓는다.카리스마, 정열, 열광, 끼. 그에게서 그 이름을 떼어놓으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 그러나 그는 지난 8년동안 그런 폭풍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5년여간 중심부에서 비켜나 있었어도 태풍의 눈이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서태지. 하고 많은 가수 중 한명일 뿐이지만 그 이름은 그리 간단치 않다. 시작은 어줍잖았지만 끝은 알 수 없는 회오리바람. 신드롬으로 불리기도 하고 문화의 한 현상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떠나든 돌아오든 모두 개인의 사정. 하등 문제될 것이 없지만 나이든 어른들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시끌벅적했다. 서태지라는 이름이 지닌 카리스마 때문이고 서태지로 인해 생길 것 같은 새로운 질서 때문이려니. '그럴 수밖에 없어'. 아끼고 사랑하는 것에서 떠났지만 당연한 그리움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서태지씨는 그래서인지 무척 편안한 모습이었다. 아주 떠난다고 해놓고 왜 다시 돌아왔느냐는 힐난이 있었지만 그는 모든 게 '나의 길'이었다며 담담했다. "떠나야만 했죠. 몸도 마음도 완전히 탈진한 상태였습니다. 텅빈 머릿속, 아무것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기나 돈벌이에 연연해 처량하게 자리만 지키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안간힘을 쓰며 버틸수록 더 많은 것을 잃게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 사례들도 많이 봤고요. 그래서 떠났죠. 다시 돌아올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아주 안한 것은 아니지만 그땐 정말 끝이었습니다." -그쪽 분야에 특별히 관심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1996년도에 은퇴한다고 했을 때 나이로 보나 재능으로 보나 틀림없이 돌아올 것이라고 여겼다. 은퇴라는 말 대신 휴식이나 '당분간 활동중지' 등의 표현을 썼더라면 좋았을텐데…. "물론 그 생각도 했죠. 하지만 정말 힘들었고 다시 못할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은퇴한다고 했는데도 집요하게 파고들며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는데 좀 쉬겠다고 했다면 마음 편히 쉴 수 있었겠습니까. 자유로웠기 때문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렇게 은퇴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4년7개월여 동안 많이 생각했고 그동안 나이도 먹었으니까요. 이제 격정에 마구 휘말리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또 모르죠" 자유인. 길이 없어도 길을 가는 것 같은 자유로운 느낌. 가식없이 하는 이야기도 그렇고, 사회적 속박을 힘들이지 않고 뿌리치는 자세도 그렇다. 젊은 탓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타고난 체질이지 싶다. 하긴 새장에 갇힌 새는 한곡조밖에 모르고 박제된 천재는 영감이 없는 법. 굴레를 천성적으로 싫어하는 자유인이 아니라면 이 사회의 틀을 깨는 실험도 할 수 없었을 터. -무척 편안해 보이는데…. "예. 공연도 성공적으로 끝냈고 신나게 활동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거든요" -컴백공연에 대해선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다. 녹음반주나 립싱크가 실망스러웠다는 지적도 있었고 지나치게 상업적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어떤 평론가는 '서태지는 대중과의 치밀한 숨바꼭질로 저항마저 상품화했다'고 비난했다. "하드코어는 쉬운 음악이 아닙니다. 국내 팬들에겐 생소하기도 하고요. 음악적 특성상 그것을 그대로 라이브로 했다면 이해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녹음을 할 때도 한부분씩 따로 해서 담았거든요. 아마 직접 했다면 엉망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한단계 한단계 발전시켜 나갈 겁니다. 이제 팬들도 조금 익숙해졌을 것이기에 방송이나 콘서트에선 라이브로 할 계획입니다. 지금 맹훈련중입니다. 일부에서 상업적이라고 하는데 상업적이진 않습니다. 물론 상업성은 염두에 두고 있죠. 제가 상업적이었다면 뭐하러 하드코어를 들고 돌아왔겠습니까. 쉽게 흥얼거릴 수 있는 귀에 익은 가락을 적당히 만들면 되는데요. 상업적이었다면 한창 잘 나가고 있을 때 물러나지도 않았죠. 상업성을 만족시키는 대중성, 인기도 무시할 수 없지만 전 실험성, 도전성을 더 사랑합니다" -신비주의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그런가. "신비주의는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평론가나 언론에서 만든 거죠. 난 가만히 있는데 하지 않은 행동, 없는 말을 만들어 이상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미국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누구를 특별히 만난 적도 없고 확인해준 적도 없는데 별 이야기를 다 보도하더라구요. 화가 나서 어떻게 대처해볼까도 생각했지만 나서는 것도 싫고 으레 그러려니 하고 넘겼습니다. 하지만 적당한 신비주의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컴백 주제가 대중화가 쉽지 않은 핌프록이나 하드코어인가. "제 음악의 모토가 실험정신이지만 대중성이 전혀 없는 음악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앞선 음악을 한국에 알려 음악적인 미래를 앞당기고도 싶었고 제 마음에 와닿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10대 초반은 몰라도 15세 정도면 곧 이해할 겁니다" 뭐가 뭔지 모를 소리, 귀청을 어지럽게 때리는 고음. 40대 이상의 중년층들은 대중화가 어렵다고 판단하겠지만 서태지씨의 말대로 '울트라맨이야'는 아이들 세계에 급속도로 퍼졌다. 유행이니까, 아니면 신드롬이니까 그렇지 싶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닌 모양이다. 컴백공연 후 남자 중.고교의 점심시간은 서태지음악과 함께 지나간다. 아직 다는 몰라도 스피커를 통해 '울트라맨이야'가 울려퍼지면 후렴을 다같이 따라부르며 뜻을 분석하기도 한단다. '기억나니'를 'ㄱ나니'로 한 것은 정말 기발하고 탱크는 TV, 오렌지는 부유층을 풍자한 것이라는 등. -이번 앨범은 '하여가'에서 보여준 팝음악의 한국식 재해석 시도가 적었다는 분석인데 포기한 것인지. "'하여가'에서 태평소를 동원한 것은 굳이 한국적이고자 한 것은 아닙니다. 그 음악이나 내용에 가장 잘 맞는 소리기에 채택한 것입니다. 한국적인 것, 세계적인 것을 많이 생각하지만 억지로 의도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내 속에 있는 나를 들여다보면 자연히 그 길로 가게 될 것 같습니다" -탱크가 방송금지곡이 되었는데…. "'엿같아'라는 표현 때문인데 내용상 자연스러운 것이어서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 부분을 악기소리 등으로 지울 겁니다. 저도 개인적으론 욕을 싫어합니다. 욕이 저항정신을 담아내는 것은 아니니까요" -'안티 서태지연대'가 출범했다는데…. "신경쓸 일도 아니고 나쁜 일도 아니죠. 저 역시 '안티 기성음악'이었으니까요. 한 사람을 반대하는 것과 장르를 반대하는 것의 차이는 있지만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그들이 저를 타고넘어 훌륭한 오버가 되면 그 또한 좋은 일 아닙니까. 저 자신 그런 받침이 되고 싶기도 하죠. 그러나 안티 서태지가 모두 언더는 아닙니다. 언더는 제 음악의 고향입니다. 대부분의 언더들이 저와 흐름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콘서트때 언더들을 초청, 함께 공연하며 그들을 대중에게 알릴 계획입니다" -또 은퇴할 건가. "내 음악이 한계에 이르면 미련없이 그만둘 겁니다. 인기나 돈에 연연하지는 않겠다고 늘 다짐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방송활동과 전국투어 콘서트를 한 후 12월께 일단 활동을 접을 계획입니다" 긴 방황 끝의 짧은 활동. 그는 또 미국에 간다고 했다. 그러나 미국이라는 나라가 좋아서는 아니다. 그에게 있어 미국은 편안한 활동공간일 뿐이다. 마음내키면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훌쩍 여행을 떠나 그랜드캐니언 같은 대자연 속에 파묻힐 수도 있고 저녁 무렵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뒷짐지고 산보도 나설 수 있어서이다. 수많은 시선 때문에 거리에 나설 수 없는 국내의 상황 탓. 실제로 그와 만난 지난 26일 합정동 양군기획 사무실 앞엔 어떻게 알았는지 늦은 저녁임에도 수십명의 여성 팬들이 대책없이 건물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미국이 아니더라도 시선이 없는 곳이면 어디든 괜찮다는데 데뷔 전 음악에 파묻혀 있을 때 1년여간 자기 집 대문 밖을 벗어나지 않은 적도 있다니 어찌보면 단순한 공간이동일 수도 있다. 국내에서 돈벌고 밖에 나가 돈쓰는 행태로만 볼 수는 없겠다. 때가 되면, 그 때가 언제인지 그 자신도 잘 모르지만 우리음악의 세계화를 마지막 목표로 삼고 있다는 서태지.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겠지만 그는 반드시 그런 날이 오리라고 믿으며 작은 주춧돌이라도 놓겠다고 했다. 눈빛을 번쩍이며. *서태지가 꺼리는 것들 - '스타크래프트가 겁나...' 방안 생활이 익숙한 서태지. 인터넷 체질이다. 그러나 신세대의 인기 게임인 스타크래프트는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 '무서워서'였다. 공포영화 같은 무섬증은 물론 아니다. 너무 재미있어 빠져들까봐 무섭다는 것이었다. 양현석씨 등 주위 사람들도 말렸지만 어느 한가지에 정신이 팔리면 다른 일을 못한다는 걸 알기에 아직 근처에도 가보지 않았다. 음악에 몰두할 시간도 없는데. 하지만 그는 기회가 닿으면 한번 해볼 생각이다. 지나친 집착은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더러는 전혀 상관없는 것에서 중요한 모티브를 발견할 수 있음을 미국생활 중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음악을 70%는 일관된 작업 속에서, 30%는 갑작스러운 영감을 통해 만들었는데 30%가 70%를 오히려 능가하기도 했다며 자연스럽게 찾아드는 기회를 억지로 밀어내지 않겠다고 말했다. 또 하나 무서운 것은 극성 팬. 그들로 인해 그도 있는 것이지만 자신들의 모든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무섭다기보다는 걱정스러움인데 '서태지 때문에' 팬 한명이라도 잘못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것이 바람. 언론과 일부팬들 탓에 그의 행동반경도 극히 좁다. 사무실, 공연장을 오가는 것이 고작이어서 그 흔한 휴대폰도 없으며 주머니도 늘 비어 있다. 항상 감시받는 듯한 삶. 하지만 불쌍할 정도는 아니란다. 음악을 할 수 있고 오랜 세월 떨어져 있어도 잊지 않는 팬들이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서태지음악의 명암 - 핌프록 대중화 길터 ▲명(明)=서태지는 새 앨범에서 핌프록을 내세웠다. 힙합과 하드코어 펑키나 슬래시 등 록의 온갖 장르를 혼합한 자극성이 강한 노래. 1990년대 랩과 힙합, 얼터너티브록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먼저 소개했던 그가 또다시 새로운 음악장르의 대중화를 위해 깃발을 내건 셈이다. 덕분에 철저하게 언더의 음악이었던 핌프록이 컴백쇼와 언론의 화려한 조명을 받으면서 대중화의 길을 열게 됐다. ▲암(暗)=그가 컴백과 동시에 껴안고 싶어하던 언더음악계의 '안티 서태지' 기운은 앞으로도 그에게 부담이 될 것이다. 그의 노래 '탱크'에서 드러나듯 TV 등 거대매체에 대해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면도 이를 적극 활용하는 아이러니도 앞으로의 숙제다. 또 과거 '시대유감' '하여가' '교실 이데아' 등에서 보여줬던 뚜렷한 주제의식과 재기발랄한 문법이 그의 솔로앨범에 와서 반감된 것 역시 우려할 만한 부분이다. 현재까지 앨범 판매량은 80만장을 약간 웃돈다. 최근 들어 하루 1,000장 정도 나간다. TV와 각종 언론의 지원사격을 감안한다면 실망스런 숫자가 아닐 수 없다. 늘 주류의 핵에 있던 그가 소수 마니아의 음악으로 줄기차게 효과적인 포교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제까지 그러했듯이 그가 홀로 고민하고 풀어가야 할 숙제인 셈이다. 오광수 기자 oks@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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