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100대 명반> 30.서태지와 아이들 '서태지와 아이들 Ⅱ' | |||
[경향신문]|2007-12-06|SH면 |45판 |특집 |기획,연재 |1977자 | |||
우리가 서태지를 설명하기 위해 언어의 그물망을 탁 던지면,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재빨리 피해버린다. 다시 한 번 던지면서 그가 걸려들기를 희망해보지만 어느새 그는 저 너머로 건너가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시종일관 무차별 변신으로 일관해온 대중음악의 순례자. 이것이 우리가 서태지에 대해 갖고 있는 첫 번째 이미지일 것이다. 따라서 서태지의 앨범들 중 어떤 것이 최고인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서태지 신화의 개막을 선포한 데뷔작을 꼽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편에서는 국악과의 접목이라는 이유를 들어 2집을 거론한다. 이와 동시에 대각선 한편에서는 사회비판적 시선이 녹아든 3집을 명예의 전당에 봉헌하고, 그 맞은편에서는 가출 청소년들을 집으로 돌려보낸 4집을 얘기한다. 이것 참 난감한 일이다. 그러나 굳이 하나의 작품만으로 서태지의 모든 현상을 집적해 설명해야 한다면 본 2집이 가장 제격일 것이다. 이 앨범은 '서태지 신드롬'을 이 땅에 공포한 선언문이었다. 사람들은 이 충격의 음반을 접하고 1년 전의 '난 알아요'라는 외침이 단발성 블록버스터가 아니었음을 직감했다. 이처럼 6개월 이상의 공백을 우려했던 사람들에게 또 한 번의 멋진 임팩트를 선사한 서태지는 자신의 가치를 재입증하며 가요계의 맹주로 우뚝 섰다. 서태지 신화의 진정한 출발을 고하는 방아쇠가 비로소 당겨진 것이었다. 1집을 통해 가요계의 물줄기를 댄스로 돌려놓았던 그가 앨범에서 꺼내든 카드는 '록'이었다. 그의 음악적 시원(始原)이 메탈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다지 놀라울 건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가 TV 출연에서 첫 상연한 '하여가'는 예전에는 상상조차 못했던 획기적인 곡이었다. 격렬한 일렉트릭 기타 솔로가 1분이나 곡 중간에 첨가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이전 가요에서는 결코 용납될 수 없었던 패턴이었다. 이 지점에서 그의 아티스트적 고집이 빛을 발했다. 곡에서 더욱 놀라웠던 것은 국악기인 태평소를 삽입해 우리만의 흥취를 살린 것이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국악기의 사용은 메탈 기타의 상승 기운을 고스란히 이어받으면서 충일한 분위기를 죽이지 않았다. 자연스레 당시 말 만들어내기 좋아했던 사람들은 '동과 서의 완벽한 퓨전' 등의 미사여구를 동원해 곡을 찬양했다. '하여가'의 비중이 크긴 했지만 곡들의 탁월성은 다른 곳들에서도 두드러졌다. 언제나 라이브 무대 마지막을 달궜던 '우리들만의 추억', 이후의 테크노 열풍을 예견한 '수시아', 발라드 수작 '너에게', 음산한 기운을 방사한 앨범의 비기(秘技) '죽음의 늪' 등이 그 면면들이었다. 서태지는 이후 얼터너티브 록, 힙합, 하드코어 등으로 마차를 갈아타며 대중들의 예상을 빈번히 뛰어넘었다. 이처럼 그는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공간에서 민첩하게 자신의 위치를 바꾸어가며 지금도 어디론가 향해 나아가고 있다. 적어도 주류 음악 필드 내에서는 그렇다. 앨범은 그처럼 일견 모순되어 보이는 그의 경력의 단락들이 모순되지 않는 새로운 의미의 흐름 위에 질서 잡혀질 것임을 처음으로 증명한 쾌작이었다.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가요 시장은 이만한 파급력을 지니는 작품을 주조하지 못하고 있다. 배순탁|웹진 IZM 필자 ●서태지와 아이들 프로필 .결성 : 1991년 .구성원 : 서태지(보컬, 랩) 양현석(보컬, 랩) 이주노(보컬, 랩) .주요활동 -1992년 1집 '서태지와 아이들: 난 알아요/환상 속의 그대' LIVE & TECHNO REMIX 라이브 음반 '서태지와 아이들 콘서트' -1993년 2집 'Seotaiji and Boys Ⅱ: 하여가/우리들만의 추억' 라이브 음반 '93 마지막 축제' -1994년 3집 'SEOTAIJI AND BOYS Ⅲ: 발해를 꿈꾸며/교실이데아' -1995년 싱글 '서태지와 아이들: 필승/GOODBYE' 라이브 음반 '95 다른 하늘이 열리고' 4집 'Seotaiji and Boys Ⅳ: 슬픈 아픔/필승/Come Back Home' -1996년 베스트 음반 'Goodbye Best Album' 공식 해체 싱글 '시대유감' |
<대중음악 100대 명반> 57.서태지와 아이들'서태지와 아이들 Ⅲ' |
[경향신문]|2008-03-21|27면 |45판 |문화 |기획,연재 |1507자 |
우리나라의 열악한 대중음악 환경에서 서태지라는 이름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전무후무한 이미지와 음악과 인기를 만들고 누려온 '전설'과도 같은 존재. 그의 존재가 특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어느날 갑자기 한국의 모든 방송 매체를 점령하다시피 한 '대중문화의 아이콘'이자, 더 나아가 정치권에서까지 관심을 가지는 '사회 현상'이 되어버렸던 거의 유일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가 '스타'의 자리에 오른 이후에 '비주류' 음악을 행함으로써 사회와 대중들에게 숱한 담론의 요인을 제공했다는 점이다. 서태지가 시나위의 베이시스트였고, 이미 데뷔 앨범에서 AC/DC의 곡을 리메이크 했으며, 두 번째 앨범의 타이틀곡에서 랩과 국악의 멋진 크로스오버를 통해 학생들에게 태평소 소리를 알려줬다는 전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과격한 노랫말을 담은 본격적인 '록' 앨범을 들고 나온 것은 충분히 센세이셔널한 일이었다. 우리나라의 대중들에게 '서태지와 아이들'은 '대중가수'였기 때문에, 그들이 자신들의 의식과 민감한 사회적 이슈를 록이라는 탐탁지 않은 틀에 담아 표출한다는 것 자체가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한 일이었던 것이다. 거대한 인기와 대중을 이끄는 힘을 가지게 된 이후, 말 그대로 슈퍼스타의 자리에 오른 서태지는 그저 이전처럼 10대 소녀들을 애태우는 예쁜 미소와 현란한 춤을 보여줬으면 되는 거였다. 가끔씩 건전하고 진보적인 의식도 연예인이라는 걸 어필할 수 있을 정도의 언급만 해주면서 말이다. 하지만 서태지는 다른 길을 간다. 이후 숱하게 생겨나는 논란들, 그리고 이슈 메이커로서의 본격적인 시발점을 이룬 작품이 바로 이 세 번째 앨범이다. 헤비메탈과 전에 없이 강렬한 랩, 가볍지 않은 가사와 탁월한 편곡 등 이 앨범은 서태지가 단순히 아이돌이 아닌 자의식 강한 아티스트라는 사실을 명확히 드러내준 작품이었다. 시작부터 듣는 이들을 당혹스럽게 했던 거칠고 육중한 디스토션 기타 연주는 기존의 'Yo! Taiji'와는 성격 자체를 달리 하는 것이었다. 제목부터가 심상찮은 '발해를 꿈꾸며'를 가득 채우는 '통일의 염원'이라는 가볍지 않은 주제와 강렬한 일렉트릭 기타 리프, 록 비트는 확실히 이전 음악과 차별을 이뤘다. '교실 이데아'는 앨범의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하이라이트이자 커다란 사회적 논란을 불러왔던 곡이다. 암담한 교육 현실에 대한 거침없는 독설과 직설적인 비판은 거친 기타 연주와 스래시 메탈 밴드 크래쉬(Crash)의 보컬리스트 안흥찬의 '그라울링'(소위 '피가 모자라' 부분. 일반인들에게 '백워드 마스킹'이라는 용어를 친절하게도 알려줬던)을 통해 더할 수 없는 호소력을 전해준다. 그 외에 또 하나의 멋진 록 트랙 '지킬박사와 하이드'와 얼터너티브 록 스타일의 뛰어난 편곡과 서태지의 열창이 돋보이는 '널 지우려 해' 등도 많은 사랑을 얻었다. 특히 슬프고 아름다운 가사와 관현악 편곡으로 전개되는, 죽은 이의 독백을 담은 발라드 '영원(永遠)'은 이 앨범에 미학적 가치를 부여하게 해주는 명곡이라 할 수 있다. 김경진 | 서울음반 A&R 팀장 |
<대중음악 100대 명반> 36. 서태지와 아이들 '서태지와 아이들Ⅳ' |
[경향신문]|2007-12-27|SD면 |45판 |특집 |기획,연재 |2008자 |
서태지라는 뮤지션 절정의 감각은 그가 철저히 대중을 의식하고 있을 때에 비로소 완전하게 드러난다. 이는 상당수의 작가들이 '대중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때 비로소 필생의 역작을 잉태하는 것과는 정 반대인 것이다. 그러나 진정 뛰어난 '팝 아티스트'들은 언제든 대중을 의식한다. 그들의 입맛을 맞추는 법을 안다. 그들을 의식하되 그들에게 끌려가지 않는다. 철저히 계산하고 정제되어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가장 간결하고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 제시한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대중가수'인 것이다. 신세대 담론? 문화 대통령?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언제 서태지가 사회운동이라도 했다는 말인가? 정치에 몸을 담고 청년들을 선동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가 만들어 낸 것은 5분짜리 가요이고 60분짜리 음반에 불과하다. 그의 본질은 대중가수이고 철저히 계산하고 포장할 줄 아는 음악장사꾼인 것이다. 다만 서태지가 다른 수많은 아류의 장사치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상품의 '퀄러티'일 것이다. 절대적인 질의 차이이다. 그리고 품위와 태도의 차별성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태지의 최고작은 단연코 네 번째 앨범이 될 것이다. 세 장의 앨범을 통해 각기 다른 영역으로 조금씩 실험을 거듭했던 이 젊은 천재 뮤지션은 그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내어 용광로 속에 담가 쇳물을 부어 틀에 담아내었으니 그것이 바로 4집이다. 이것은 젊은이들만이 이해할 수 있다. 조금이라도 마음이 굳어버리고 성미가 고약해져버린 기성세대들에게는 소음이요 방탕일 뿐이다. 이번엔 얼터너티브와 힙합이다. 바로 이것은 1994년에 가장 진보적인 젊은 아티스트가 택할 수 있는 가장 젊고 호소력 있는 장르였다. 이 젊은 혈기, 그리고 샘솟는 아이디어, 폭발하는 광기, 그리고 정제된 프로페셔널리즘은 뮤지션 서태지 1인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탁월한 경지이다. 'Come Back Home'이나 '1996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의 편곡은 더할 나위 없이 탁월하고 세련미가 넘친다. 서태지는 그 어떤 경우에도 쓸데없이 긴 후렴이나 진부한 전개를 택하지 않았으며 리듬은 쫄깃쫄깃할 정도로 매끄럽다. 무척이나 닮았지만 상반된 매력을 가지고 있는 그의 단짝 김종서와 함께한 'Free Style'은 그의 유쾌한 감수성과 재치를 꿰어낸 기분 좋은 수작이다. 실연의 아픔이 슬프다 못해 처절해서 미칠 것만 같은 '필승'조차도 즐겁다. 그의 강점은 바로 이런 것이다. 심각하거나 귀를 피곤하게 하지 않음에도 결코 경박하지 않게 핵심을 꿰뚫는다는 것. '시대 유감'. 더 이상의 말이 필요한가. 가요사전심의제를 철폐시키고야만 힘이 넘치는 한 곡. 미친 듯이 들이대는 연주와 숨 돌릴 틈 없이 쏟아대는 랩과 보컬, 그리고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요상한 음원들을 덧입히고 색칠해 결합시킨 과감성, 이 세상이 모두 미쳐버릴 것만 같은 그 어느 밤 모두 같이 나가 굉음을 내고 소리쳐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 보고 싶은 욕망을 자극하는 아주 기분 좋고 신나는 분탕질. 누군들 그런 생각 한번쯤 품어보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것을 누가 이렇게 재미나게 말할 수 있는가. 이것이 서태지다. 6년 내내 대중들에게 소리쳤던 바로 그 핵심이다. 김영대|웹진 음악취향Y 필자 선정 기획|가슴네트워크 ●서태지와 아이들 프로필 .결성 : 1991년 .구성원 : 서태지(보컬, 랩) 양현석(보컬, 랩) 이주노(보컬, 랩) .주요 활동 -1992년 1집 '서태지와 아이들: 난 알아요/환상 속의 그대' LIVE & TECHNO REMIX 라이브 음반 '서태지와 아이들 콘서트' -1993년 2집 'Seotaiji and Boys Ⅱ: 하여가/우리들만의 추억' 라이브 음반 '93 마지막 축제' -1994년 3집 'SEOTAIJI AND BOYS Ⅲ: 발해를 꿈꾸며/교실이데아' -1995년 싱글 '서태지와 아이들: 필승/GOODBYE' 라이브 음반 '95 다른 하늘이 열리고' 4집 'Seotaiji and Boys Ⅳ: 슬픈 아픔/필승/Come Back Home' -1996년 베스트 음반 'Goodbye Best Album' 공식 해체 싱글 '시대 유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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