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5월은 라일락 향기처럼 그윽하지 않았다. 늘 최루탄과 깃발, 분노가 넘쳐나는 5월이었다. 그래서인지 5월이 되면 달콤한 봄노래 대신 투쟁가들이 생각난다. 길을 걷다가 ‘꽃잎처럼 금남로에 흩어진 너의…’를 부르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흠칫 놀란다. 노동자의날로 5월이 시작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노동이 자랑스러운 나라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당연한 얘기에 울컥한다. 영국의 그룹 첨바왐바(Chumbawamba)의 ‘텁섬핑(Tubthumping)’도 이맘때면 생각나는 노래다.
‘나는 쓰러지더라도 곧 일어날 거야/ 너희는 결코 나를 굴복시킬 수 없어/ 쓰러지더라도 곧 일어날 거야/ 너희는 결코 날 굴복시킬 수 없어.’
신나는 펑크음악에 실린 그들의 목소리는 비장하다. 이 노래는 1997년 영국 노동당 정부와 맞선 부두 노동자들을 위해 만들었다. 토니 블레어 정권이 많은 부두 노동자들을 해고한 데 맞선 파업투쟁을 지지하고 나선 노래다.
1982년 결성된 첨바왐바는 해체되기까지 약 30년 동안 인간을 속박하는 모든 것들과 싸웠다. 이 노래를 발표한 뒤인 1998년 2월, 브리지 어워즈 시상식에 출연한 첨바왐바는 관람석에 앉아 있던 영국 노동당의 부수상 존 프레스콧에게 얼음물이 든 양동이를 부었다. 노동자 출신의 배신에 대한 응징이었다.
이들은 엄청난 자본 앞에서도 결코 굴하는 법이 없었다. 1998년 월드컵 때 나이키가 ‘텁섬핑’을 광고 음악으로 쓰겠다며 150만달러를 제안했지만 단칼에 거절했다. 제너럴 일렉트릭사가 음악사용료로 100만달러를 제안했을 때 역시 마찬가지였다. GE사가 군용기 엔진을 생산한다는 이유였다.
2002년 제너럴 모터스사와 음악사용료 7만파운드에 계약한 첨바왐바는 이 돈을 독립 미디어와 시민단체에 전액 기부한다. 거대 기업이면서도 부도덕한 일을 서슴지 않는 제너럴 모터스에 대한 반대 운동에만 사용하는 조건이었다.
결성 당시 실력보다는 시간을 잘 지키고, 권위를 증오하며, 착한 마음씨를 기준으로 멤버를 영입했던 이들은 퇴장도 심플했다. 2012년 7월, 은퇴 공연도 없이 웹사이트에 조용히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사라졌다.
<오광수 경향플러스 콘텐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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