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철 ‘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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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블라블라/노래의 탄생

김수철 ‘별리’



‘정주고 떠나시는 님 나를 두고 어디 가나/ 노을빛 그 세월도 님 싣고 흐르는 물이로다/ 마지못해 가라시면 아니 가지는 못하여도/ 말없이 바라보다 님 울리고 나도 운다/ 둘 곳 없는 마음에 가눌 수 없는 눈물이여/ 가시려는 내 님이야 짝 잃은 외기러기로세.’


마치 판소리 한 자락을 연상케 하는 김수철의 ‘별리’는 ‘못다 핀 꽃 한 송이’와 더불어 1983년 발표된 1집의 명곡으로 꼽힌다. 그룹 작은 거인 시절에 불렀던 ‘일곱색깔 무지개’ 등과는 사뭇 다른 노래다. 그가 록음악에 한국적인 정서를 녹여넣는 시도 끝에 탄생한 국악가요라고 볼 수 있다.


마치 우리 민요의 한 자락을 듣는 듯한 유장함이 느껴지는 이 노래는 얼핏 사랑노래로 들린다. 나를 버리고 떠나는 ‘님’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이 뚝뚝 묻어난다. 그러나 김수철이 이 노래를 만들게 된 이유는 전혀 엉뚱한 데 있다. 1980년 12월1일 자정. 김수철은 전두환 정권의 언론통폐합 조치로 문을 닫게 된 TBC(동양방송) 라디오의 고별방송을 듣고 이 노래를 썼다. 황인용 아나운서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문을 닫게 된 안타까움을 청취자한테 전했다. 김수철은 ‘말없이 가라시면 아니 가지는 못하여도 말없이 바라보다 님 울리고 나도 운다’고 정권의 힘에 의해 강제로 문을 닫는 라디오의 운명을 얘기했다. 처음에는 님을 향한 그리움을 담은 노랫말이 아니라 좀 더 직설적이고 반항적인 노래였지만 당시 공연윤리위원회 심의를 통과하지 못해 님을 넣어 개사했다. 


그러나 이유야 어찌됐든 노래는 듣는 이들의 몫이기에 ‘별리’가 애절한 사랑노래임은 분명하다. 그 이후 김수철은 동서양의 조화를 추구하면서 한국적인 록음악의 완성을 위해 노력해왔다. 1984년 영화 <고래사냥>을 시작으로 <칠수와 만수> <서편제> <태백산맥> 등 영화음악 발전에 큰 축을 담당하기도 했다. 또 한편으로는 <황천길> <불림소리> <팔만대장경> 등 주목할 만한 국악앨범을 선보이기도 했다. 술도 담배도 안 하면서 음악과 함께 살아온 김수철. 그는 여전히 소년의 미소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작은 거인이다.


<오광수 경향플러스 콘텐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