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기타로 만들어진 성가곡인 이 노래를 나름 대중화시킨 앨 스튜어트는 1970년대 중반쯤 ‘Year of the cat’이라는 노래로 유명해진 포크록(folk rock) 가수다. 포크록은 대중들이 어떤 시대의 불만이나 아픔들을 흥얼대며 노래하는 것으로 입소문으로 번지게 될 때 큰 힘이 된다. 록 음악의 정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백구’ ‘작은 연못’ ‘친구’ 등 천재 김민기의 모든 노래가 포크 음악이다.
‘사랑한 후에’ 악보.
김광희의 ‘세노야’ 같은 곡들은 1970년대 초부터 큰 사랑을 받으며 우리 국민들에게 ‘민초끼리’라는 힘을 갖게 했다(서방, 특히 미국은 ‘House of the rising Sun’ 같은 곡이 원래 흑인들이 자주 불렀지만 백인들, 가령 밥 딜런 등이 불러 크게 알려졌다. 그후 애니멀스가 록 블루스로 노래해 세계적인 명곡이 됐다. 이 노래를 밥 딜런이나 애니멀스가 만든 곡으로 아는 사람이 꽤 있지만 그렇지 않다. 원래 포크뮤직이다.
우리나라의 포크 음악들은 포크의 정신이라고 할 ‘풍자성’으로 볼 때 그 수준이 서구의 그것과 비교해도 훨씬 높다고 자부할 수 있다. 기막힌 ‘정선아리랑’ 등도 포크 음악이다. 지금 불러도 대중음악으로서 손색이 없다. 세계가 모를 뿐이다. 만약 세계인들이 우리나라 포크 음악의 풍자 수준을 안다면 크게 놀랄 것이다. 확신한다.
나는 어느 날 내 삶에는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았던 죽음의 실체를 뼈저리게 느꼈다. 어머니의 죽음이었다. 나의 어머니는 현실과의 타협을 싫어하는 한학자의 아내였다. 아버지는 평생 공부하며 잘 쓴 서예, 잘 그린 그림을 병풍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하셨다. 옳고 그름을 정확하게 짚어내고(서예·문학 등의 잘된 것과 잘못된 것을 판단하는 것을 좋아하셨다), 누가 뭐라 해도 당신께서 판단한 것에 대해선 고집을 굽히지 않으셨다.
나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 대해 궁금했다. 분명히 강한 분임에도,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 부드러운 분을 나는 아직 만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의 아버지도 포크적 예술가였다. 북청사자놀음의 꼭쇠를 자처하며 즐기셨다. 그러니 생활고는 모두 어머니의 몫이었다. 형님들이 돈을 번 것은 나중의 일이다.
어릴 때 나와 나의 작은형님은 공부하는 것보다 어머니와 놀고 싶었다. 어머니와 같이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어 보고 싶은 마음이 늘 간절했다. 어머니는 자식들과 먹고살기 위해 매일 새벽 6시경이면 남대문시장으로 장사를 나가셨다. 그때는 자정이면 사이렌 소리가 들렸는데 어머니는 매일 사이렌이 울리기 직전에야 돌아오셨다. 그래서 나와 작은형님은 우리 친척 중에서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아주머니 손에 의해 키워지다시피 했다. 하지만 우리는 어머니의 절대적인 사랑의 힘이 필요했다.
“에구 요것들아. 너희는 내가 없으면 고생문이 훤하다.”
어머니께서 자주 하시던 그 말씀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함경도 사람들은 “사랑한다”라는 말을 잘 안 한다. 어머니는 한 달에 한 번, 셋째주 일요일에 딱 한 번 쉬셨다. 그러나 그것도 두세 달 만에 한 번이었다. 약속은 깨지기 일쑤. 집에 돈이 없었다. 구청은 툭하면 무허가로 지어진 우리집 지붕을 헐어버렸다. 나와 작은형님은 엄마 빽밖에 없었다. 지붕이 헐린 것을 장사를 마치고 돌아와 확인한 어머니는 우셨다. 우리도 따라 울었다.
우리 삼형제 중 나를 어머니는 유독 이뻐하셨다.
“학교 다녀오는 길에 시장으로 와라. 냉면 사줄게.”
어머니도 우리가 보고 싶으신 거다. 그런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원래 그러면 안되지만 병원에서 ‘야매로’ 집으로 모신 어머니 앞에는 하얗게 촛불이 밝혀졌다. 나는 그때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광경을 목격했다. 갑자기 아버지께서 하얀 방의 어머니 시신 앞에 털썩 주저앉아 “내가 미안하다. 잘 가거라. 내가 잘못했다”며 커다란 소리로 엉엉 우시는 거였다. 나도 울었다. 작은형님은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늘 들어오시던 뒷문 앞에서 울었다. 동시에 큰형님은 갑자기 “어머니!” 하고 밖에서 어머니를 목놓아 부르셨다.
나는 그후 지독한 허무주의에 빠졌다.
이 노래의 사연은 ‘사랑한 후에’ 가사 안에 모두 있다. 그로부터 1~2년 후, 들국화는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다.
긴 하루 지나고~
<전인권 싱어송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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