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재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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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블라블라/전인권의 내 인생

④ 재채기

나는 초등학생 시절 내내 성적이 30등 이하였다. 성적이 30등 이상인 아이들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 친구들은 나와는 다른 아이들. 얼굴이 왠지 하얗고 도시락 반찬도 달랐다. 도시락에 반찬통도 따로 있고, 같은 계란말이도 왠지 하얘 보였다. 그 아이들은 우리가 노는 곳에는 거의 오지 않았다. 우리와 서로 따로 놀았다. 그냥 우리와 서로 다른 애들. 가끔 “야, 걔가 또 일등했대”로 시작하는 야유 정도. 나는 그런 속에서 간혹 우울감을 느꼈다. 


5학년 때 내 짝이던 여자애는 이뻤다. 공부를 잘했고 역시 나와 모든 게 달랐다. 나는 그림을 잘 그렸지만 그 애와 가까워질 수 없었다. 외로웠다. 공부 잘하고 집도 부자인 아이들과 공부 못하고 가난했던 우리는 이 다음에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다른 공간에 서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는 씩씩하게 현실을 받아들였다. 실제로 초등학생 때부터 30등 이하였던 친구들 중 상당수는 육체노동자가 되어 먹고산다. 그중 한 선배는 열심히 일해서 서울 종로에 김치찌개집을 냈고, 돈을 벌어 작은 빌딩까지 샀다.


‘재채기’ 악보.


나는 주로 혼자 놀거나 나의 작은형님과 함께 산에 다녔다. 산속 깨끗한 개천의 구석 즈음에 다다르면 물속의 돌들을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그 순간 크고 작은 거무튀튀한 가재 여러 마리가 마구 달아나는데 정말 신기했다. 


나는 북악산의 열매나무 있는 곳을 진짜로 모두 안다. 주로 많은 게 버찌(벚나무 열매). 우리는 버찌나 아카시아꽃을 따 먹었다. 11월이 되면 서리가 내리는 속에 ‘파페’라는 열매가 나온다. 잎사귀는 없고 앵두보다는 조금 작고 통통하고 빨갛게 익는데 맛이 일품이다. 날이 저물어서까지 혹시 뭔가 먹을 게 있을까 찾아헤매던 내가 우연히 발견한 나무가 파페나무다. 그 열매를 딸 때는 추워서 손도 곱는다. 나무는 크지 않은 게 주로 많지만 열매는 다닥다닥 기분좋게 풍성하다. 그렇게 열매를 따 먹으러 산을 오르내릴 때는 산의 모양새를 관찰했다. 여기는 밟아도 안 넘어질 것 같고 저기는 ‘부웅~’ 하고 뛰어넘어도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하기 위해서다. 처음에는 감잡기가 어려웠지만 계속 시도하면서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도 다치지 않는 지혜가 생겼다. 내 삶의 지혜는 어릴 때 내 집 바로 뒤 북악산에서 놀며 자연스럽게 생기게 된 것 같다.



나는 내 노래 ‘재채기’ 중 ‘옛날이여 지금 어디 살기 바빠~’ 부분이 슬프다. 그래서 노래 스타일에 약간 기분을 가미했다. 문학·미술·음악의 서론의 느낌들은 우리나 서방이나 같다고 생각한다. 미국 LA에 멜로즈라는 거리가 있는데 인도나 다른 나라의 골동품도 사고판다. 여기는 말의 스타일로 친구들 ‘끼리끼리’가 형성되는데, 전혀 편파적이지 않고 선진국다운 면이 있다. 말의 느낌이 통하면 친구가 된다.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도 돈이나 권력을 가졌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대하며 잘난 척하는 사람들이 많다. 못된 범죄행위나 다름없다. 


‘재채기’의 마지막 가사는 ‘어제의 다툼은 깊은 곳의 내 마음 아니지. 너와 내가 만들어낸 유령이 분명한데’이다. 이 노래 역시 만든 사람과 돈 버는 사람이 다르다. 이해할 수 없다. 어쨌든 음악이 발전하면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데 여러 가지로 큰 힘이 된다.


일제는 안중근 의사를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범죄자로 폄하했다. 그러나 안중근 의사는 세계를 한손에 쥔 거인이시다.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15가지 이유를 보면 얼마나 범상치 않은 분인지 알 수 있다.


요즘 이상한 거짓뉴스들이 쏟아지고 있다. 유령이 분명하다.


<전인권 싱어송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