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을 앞두고 있는 <에이미>는 2011년 스물일곱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떠난 영국 여가수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행적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다. 그의 음악은 2000년대에 들어 막강 트렌드가 된 ‘빈티지 솔’이란 이름의 복고 흐름에 기폭제 역할을 했다는 평을 받는다. 2008년 그래미상의 주요 4개 부문 가운데 셋을 싹쓸이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가 남긴 앨범 <백 투 블랙>은 21세기 최고라는 높은 판매량과 평단의 찬사 등 모든 영예를 누렸다. 하지만 성공은 영원한 자유, 외로움 없는 사랑을 갈망한 그를 더욱 옥죄었다. 운명이나 다름없었던 남자와의 결혼이 파탄 나면서 음악팬들 상당수는 그가 머지않아 자살할 것으로 예측했다. 영화는 “만약 나의 재능을 거둬 평범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거야”라는 대사와 함께 깊은 여운을 남긴다.
열네 살 때부터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부모가 갈라선 후 온갖 무질서의 늪에 갇힌 그에게 음악은 결코 성공의 수단이 아니었다. 그에게 성공은 발표곡이 1위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을 때 동료들과 아무 때나 녹음실에 들어가 음악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의미했다. 이 점에서 “남이 만든 것을 부르지 않고 내 경험을 바탕으로 내 곡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그의 말은 메아리를 울린다.
한마디로 그는 자신과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고백하는 음악을 했다. 자신이 겪은 고통을 적나라하게 표출하면서 거기서 자기 위로를 구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온통 자신의 실제 경험담이다. 허구나 꾸밈, 남의 얘기, 여기저기서 스크랩한 정보의 나열이 아니라 자신이 가쁜 숨을 내쉬며 절절하고 치열하게 겪은 것들이다.
에이미 와인하우스_경향DB
그래미상의 광채를 낳은 곡 ‘리햅’은 망가진 자신을 알코올갱생원에 보내려는 조치를 뿌리치고 가지 않겠다는 내용이고 ‘백 투 블랙’은 실연을 당하고 “그는 다시 그녀에게 가지만 난 다시 어둠으로 간다”는 비탄의 심정을 담았다. 다른 곡들에도 거칠고, 농담 잘하고, 술 잘 마시고, 걸핏하면 울고, 마리화나에 찌든 그의 리얼 스토리가 마치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딴 예술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음악은 분명 1인칭 예술이다. 제3자를 말하기보다는 먼저 자신을 토로하고 그를 통해 만족을 얻는 터가 음악인 것이다. 이러한 솔직한 자아 토로에 음악소비자들이 공감하는 것이며 양자 간에 이뤄지는 작용 반작용의 상호 ‘케미’가 곡의 수명을 늘리면서 ‘예술은 길다’라는 명제를 만들어낸다. 결국 오랜 세월을 관통하는 세기의 명작들은 거의가 음악가 자신의 진실한 삶을 담은 노래들이다. 그런 노래를 만든 사람이 또한 아티스트다.
존 레넌은 비틀스 해산 직후 “난 예수를, 히틀러를, 밥 딜런을, 엘비스를, 비틀스를 믿지 않아. 난 나를 믿어”라고 용트림하며 1인칭 삶의 고단한 길로 내달려갔다. 그가 20세기 음악 위인으로 손꼽히는 것은 수려한 멜로디와 실험적 사운드보다도 이런 태도와 관련한다. 확실히 투명한 자기고백은 폴 매카트니보다 존 레넌의 노래가 훨씬 많다. 대중이 결국 이것을 높이 평가했다. 그래서 비틀스 당시와 1970년대까지의 인기와 호감지수는 폴 매카트니가 앞섰지만 1980년 존 레넌의 사망 이후 비틀스의 대표성은 존 레넌으로 넘어갔다.
마빈 게이라는 이름의 흑인 음악가가 존 레넌에 버금가는 역사적 위상에 오른 것도 늘 사랑 노래만을 부르던 그가 어느 순간 1인칭 자아를 되찾으며 자신의 삶과 경험을 간절하게 음악에 담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내가 보고 내가 느낀 것을 쓰겠다!”는 자세가 그 출발점이었다. 우리 대중음악은 의외로 가수의 자기고백이 별로 없다. 아이돌댄스의 K팝은 물론이고 근래에는 인디음악에서도 이런 경향이 뚜렷하다. 적당히 위로와 용기를 주는 가사 아니면 놀자 판을 펼쳐 실은 히트곡을 내려는 속셈이다. 이러니 오랫동안 들을 음악이 없다. 훈계나 가상 스토리가 아닌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것처럼 ‘실화’를 듣고 싶다.
임진모 | 데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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