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사이키델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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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블라블라

영국의 사이키델리아


1967년 7월 런던 UFO 클럽에서의 핑크 플로이드의 공연.
미국이 샌프란시스코였다면, 영국은 런던이 사이키델릭 록의 중심이 되었다.

자, 앞에서 했던 사이키델릭 록의 이야기를 잠시 떠올려 본다면 어떤 흐름의 방향상 차이가 있게 된다. 앞서, 미국이 로큰롤을 발명하고, 그 로큰롤이 영국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발전하여 미국을 정벌하였다는 식으로 얘기했었다. 그렇다면, 사이키델릭 록은 처음에 로큰롤이 미국에서 영국으로 넘어간 것을 빼고 얘기한다면, 영국이 다시 미국으로부터 음악적 양식을 도입하게 되는 경우라는 것이다. 물론 1968년을 정점으로 할 이 시기의, 히피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 전반의 정치적 내지는 영적 변화의 추구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도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그러한 흐름에서 나타난 하위 문화의 음악적 규정 형태를 사이키델릭 록이라고 한다면 영국 또한 그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음은 사실 명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국의 사이키델릭 록이 미국만큼 폭발적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로커와 모드의 힘은 아직 꺼지지 않은 시점이었다) 영국식 사이키델리아를 얘기하는 것은 중요할 것이다.

사이키델릭 록의 스타일이 매우 천차만별이었다는 것은 이미 얘기한 바지만, 영국에서 사이키델릭 록의 선구자격이었던 것은 아마 야드버즈(Yardbirds)일 것이다. (스타일이 천차만별인 만큼, 블루스적 색채가 많았다는 것은 이상할 일이 못 된다)헤비해진 스타일에 블루스를 전기 음향으로 재해석한 이런 스타일의 음악은 물론 야드버즈뿐만 아니라 롤링 스톤즈도 60년대 중반부터 이미 시도한 것이었지만, 야드버즈는 스톤즈와는 달리 연주에 긴 시간을 할애하였고, 특히나 야드버즈의 비르투오시티는 사이키델릭 록의 모습과도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영국의 사이키델리아의 중심에 있었던 밴드라면 아무래도 야드버즈 이후에 나타났던 트래픽(Traffic)이나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소프트 머신(Soft Machine) 등의 밴드를 이야기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스펜서 데이비스 그룹(Spencer Davis Group) 출신의 스티브 윈우드(Steve Winwood)가 주축이 되었던 트래픽은, 사실 윈우드가 참여한 작품 중 제일 유명한 것은 아무래도 에릭 클랩튼과 함께 했던 블라인드 페이스(Blind Faith)와 자신의 솔로작일 것이기 때문에 국내에서 좀 덜 알려진 감이 있지만, 브리티쉬 블루스에 소울, 클래식에 재즈적 요소까지 받아들였던(관악기까지 도입했던) 특유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밴드였다. 사실 뒤의 소프트 머신이나 이들 같은 경우는 이에 따른 실험적 연주 파트를 통상 사이키델릭 록의 범주로 얘기되는 이상까지 확장하기도 했고, 뒤에 이야기할 재즈록 퓨전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Traffic - Dear Mr. Fantasy. 1972년 산타모니카에서의 라이브

핑크 플로이드는 물론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지만, 로저 워터스(Roger Waters) 이전에 밴드의 음악을 주도했던 시드 배럿(Syd Barrett)의 재적기에는 사이키델릭 록을 연주하였다(뭐 그래봤자 1집뿐이구나). 밴드 이름 자체가 배럿이 좋아했던 블루스 뮤지션인 Pink Anderson과 Floyd Council에서 따서 명명했다는 것은 꽤 알려진 이야기이다.

1967년 싱글 ‘Arnold Layne’ 과 ‘See Emily Play’ 로 데뷔한 핑크 플로이드의 데뷔작이었던 “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 은 곧 당대 최고의 영국 사이키델릭 록 앨범의 하나로 꼽히면서 주목받기 시작한다. (에피소드로는, 이 앨범의 녹음 당시 비틀즈가 바로 옆 스튜디오에서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를 녹음하고 있었다고 한다) 특히나 삐걱거리는 기타 연주와 릭 라이트(Rick Wright)의 오르간 연주는 물론, 거의 무조음악에 가까울 정도로 격렬한 애드립 등이 돋보이는 ‘Interstellar Overdrive’ 는 사이키델릭 록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록 역사에서 유명한 ‘싸이코’ 였던 배럿이 정신질환을 이유로 밴드를 떠난 뒤에 사이키델릭적 색채는 약해졌지만, 데이빗 길모어(David Gilmour)가 가입하면서 밴드의 우주적 색채는 유지되었고, 이후 최고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로서 활동하게 된다.

Pink Floyd - Interstellar Overdrive. 듣기 좀 '빡센' 곡이니 모르시는 분들은 유의하시길.

소프트 머신(Soft Machine)도 많은 밴드들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인상적인 활동을 하였던 밴드였다.(나중에 얘기하겠지만, 이들과 같이 소위 ‘캔터베리 씬’ 에 속하던 밴드들은 정말 왕성한 창작력을 보여주었다) 공(Gong)의 데이빗 앨런(Daevid Allen)이 잠깐 같이 하기도 했던 이 밴드는(물론 데이빗은 마약 문제로 입국이 금지되어 프랑스에서 공을 결성하고 따로 놀게 된다) 앞서 나온 트래픽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사이키델릭 록과는 상당히 다른 사운드를 연주했고, 어찌 보면 예전 모드족의 이상을 히피의 방식으로 실현한 밴드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들의 음악은 그런 만큼 멜로디 지향의 팝적인 모습이 분명히 있었고(데뷔작의 ‘We Did It Again’ 같은 곡은 확실히 킹크스를 연상시킨다), 핑크 플로이드 같은 밴드들과는 달리 유머러스함이 넘치는 밴드였다.

밴드를 이끌었던 로버트 와이엇(Robert Wyatt)과 케빈 에이어즈(Kevin Ayers. 뭐 1집만 내고 이 분은 나가시긴 했지만. 그러고보니 이 분이 오래 있었던 밴드는 없었다)은 이후에도 매칭 몰(Matching Mall)이나 솔로 활동 등으로 많은 걸작들을 남겼다.


Soft Machine - Why Are We Sleeping? 편하게 들을 수 있는 곡이지만, 의외일 정도로 복잡한 리듬 섹션에 주목할 것

그리고 의미심장한 것은, 처음에 비틀즈나 버즈 같은 밴드의 ‘팝송’ 으로 시작했던(사실, “Sgt. Pepper...” 앨범은 록이라고 해도, 팝이라고 해도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사이키델릭 록은 그 모습을 계속 변형시켜 가면서 팝송 이상의 것처럼 보이는 것이 되어 갔다는 것이다. 기존 록 음악의 비트 반문화나 포크의 공동체적 진정성 등은 이 시대에 오면서 모두 대체되었다. 복잡 다양한 양상이 있지만, 사이키델릭 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바로 개인적 진정성이었고, 록 음악은 이제는 쾌락을 위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게 되기 시작한 것이다. 즉, 록 음악은 히피를 중심으로 한 반문화의 음악적 언어가 되면서, 다른 팝 음악과는 다른 것이 되기 시작했다. 사실 록 음악의 진정성(같은 케케묵은) 논의 같은 것은 그렇다면 이 시기에 도입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시대적 의미라는 걸 찾는 게 좀 그렇기도 하지만)사이키델릭 록의 시대적 의미라면 이런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