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전 세계 음악계는 1988년생 영국의 여가수 ‘아델’ 열풍에 휩싸여 있다. 음반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고 음악인구가 온통 그에 대한 관심에 쏠려있는 것을 보면 가히 전염병 퍼져나가는 ‘신드롬’의 수준이다. 신곡 ‘헬로’를 담고 있는 신보 <25>에서 주목할 것은 형체를 갖춘 이른바 ‘음반’이 폭발적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음반이 아니라 엄연히 음원시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컴퓨터 통신망으로 파일을 내려받는 ‘다운로드’ 아니면 실시간 듣기인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접한다. 엘피(LP)는 저 옛날얘기고 시디(CD) 구매를 하지 않은지 오래다. 시디를 들을 오디오나 플레이어가 없다. 음악 산업을 견인한 시디의 판매량은 미국만 해도 2004년 7억6700만장에서 10년이 지나서는 1억4100만장으로 급감했다.
대세는 다운로드가 아닌 스트리밍이다. 그런데 아델은 신곡 ‘헬로’와 앨범 <25>를 출시하면서 ‘헬로’를 빼놓고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한했다. 이 말은 앨범에 수록된 곡 개별로 구매해서 다운로드하거나 아니면 시디를 사서 들으라는 뜻이다. 놀랍게도 ‘디지털 시대’의 음악수요자들은 때아닌 아델의 ‘아날로그’ 전략에 충성으로 화답했다. 앨범이 나온 지 6주 만에 미국에서만 700만장 이상, 세계적으로는 한 달 만에 1200만장의 앨범이 판매됐다. 속도와 양에서 이전의 모든 기록을 갈아엎는 가공할 매기(賣氣)의 지속이다.
사실 음반의 전성기였던 1970~1980년대에도 이러한 판매량 폭주는 톱스타가 아니면 요원한 것이었다. 그러니 ‘디지털 시대 속의 아날로그의 대반격’이니 ‘음반 깡패’니 하는 격한 표현이 나올 법도 하다. 실제로 음악 관계자들은 이번 앨범이 다운로딩과 스트리밍에서 다시 시디로 일부 소비자 구매 패턴을 돌리는 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한다. 도대체 아델의 음악이 왜 이토록 시대를 거스르는 선풍으로 나타나는 걸까.
지난 20일 전세계에 동시 발매된 아델의 새 앨범 ‘25’.
요즘은 장르 유행을 주도하는 일렉트로닉 댄스음악과 힙합이 득세하면서 ‘듣는 음악’이 줄었다. 아델 음악은 그런 주류와는 울타리를 치는 감상용 발라드의 전형이다. 하지만 차분함으로 그치지 않고 요소요소 격정적으로 목청을 높여 내질러 후련하고 시원하다. 쾌감은 배가된다. 시디로 듣고 소장하고픈 욕구가 솟는다. 본고장 언론도 그에게 목청껏 부른다는 점에서 ‘벨터’라는 수식을 붙이고 있다. 디지털 시대의 기계적이고 정해진 패턴으로 일관하는 음악과는 사뭇 다른 전통의 노래미학으로 특화에 성공했다고 할까.
우리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섹시한 군무와 비주얼을 내세운 K팝이 판을 움켜쥔 가운데 2010~2011년에는 춤이 아닌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슈퍼스타K’나 ‘나는 가수다’ 등의 오디션 프로 열풍이 불었다. 빠른 템포의 춤과 천편일률적인 무대스타일이 싫은 시청자들은 “노래가 돌아왔다!”며 환호했다.아델의 음악은 많은 젊은이의 지지를 받지만 스탠더드 발라드에 가깝다. 전문용어를 빌리면 ‘어덜트 컨템포러리’다. 정체가 퇴행적이라는 점에서 이 음악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영국밴드 ‘오아시스’의 노엘 갤러거는 아델을 두고 ‘할머니나 듣는 음악’이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어덜트 컨템포러리 음악은 미국의 경우 역사적으로 전체 시장의 대략 25% 지분을 차지해 왔고 특히 청춘 위주의 음악이 독점적이거나 어른의 감성 혹은 취향과 부조화를 이룰 때 강한 반발력을 형성한다.
지금의 아델이 그렇고 1985년의 휘트니 휴스턴이 그랬다. 성향을 떠나 아델 음악의 급부상은 어덜트 컨템포러리 스타일의 음악이 그간 상대적으로 너무 위축되어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크게 보면 유행이 결코 한쪽으로 쏠리지 않으려는 균형과 조정의 흐름으로 봐도 무방하다. 문화 분야는 다양성을 위해 이전 유행과 부분 동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소수가 묻히지 않고, 어른 취향도 대접받고, 아날로그도 살아있으며 이런저런 스타일이 공존하는 것, 그게 문화의 참모습이다.
임진모 |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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