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은 음악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망망대해 같았다. 음악 블로그, 음원 사이트, 음반사 홈페이지, 음악 웹진, 음악가가 직접 운영하는 웹페이지 등 음악을 찾을 수 있는 곳은 그 수를 다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었다.
무한한 자원이 가득 차 있는 것만 같았던 그 공간에서 나는 ‘서핑’을 하거나 ‘디깅’을 하며 음악을 찾는 데 오랜 시간을 사용했다. 이 과정에서 나를 몹시 즐겁게 했던 것은 무엇보다도 음악을 적극적으로 찾는 행위에서 비롯되는 발견의 기쁨이었다.
여전히 인터넷을 떠돌며 오랜 시간 음악을 듣지만, 예전보다 그 발견의 기쁨은 조금 시들해졌다. 최근에는 특정 플랫폼의 유료 회원이 되어 그곳에서만 음악을 듣는 데다 검색 방법이 갈수록 쉬워져서 그런지 어쩐지 심드렁해진 듯도 하다. 또 내가 좋아할 음악을 알려주는 추천 알고리즘이 생겨난 후에는 플랫폼이 건네주는 음악을 순순히 따라 듣는 시간도 길어졌다.
내가 많이 들었던 음악을 분석해 유사 콘텐츠를 추천해주는 이 시스템은 내가 선호하는 톤의 음악을 손쉽게 재소비하게 만든다. 때로는 의외의 음악이 등장해 청취의 확장이 이뤄지기는 하나 추천된 음악을 듣다 보면 이따금 내가 만든 덫에 스스로 갇혀 있다는 인상도 받곤 한다.
‘에코 체임버’라는 개념을 알게 된 것은 지난해 11월 스튜디오 독산, 대안공간 루프, 아카이브 봄에서 진행된 페스티벌 ‘에코 챔버: 사운드이펙트 서울 2019’에서였다. 주최 측은 에코 체임버의 뜻을 “인공적으로 소리의 잔향감을 만드는 공간”이지만 “인터넷 이용자가 선호하는 정보를 필터링하여 먼저 제공하는 상황”에도 쓰이는 용어라 설명하며, 이 개념하에서 “공명, 잔향, 반복, 기억, 자기 반사, 확인 편향과 가짜뉴스를 탐구하는” 작업들을 소개했다. 이 페스티벌에 다녀온 뒤, 나는 문득 내 온라인 청취환경을 에코 체임버에 대입해봤다. 최근 내게 맞춤형으로 제안되고 있는 인터넷 속 음악 세상은 낯설고 귀한 음악이 가득한 망망대해가 아니라 과거의 내 목소리가 메아리치는 비좁은 방 같아 보였다.
문제는 이것이 답답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의심스럽기도 했다는 것이다. 대체로는 내가 선호할 만한 것들이 제안됐으나, 간혹 전혀 그렇지 않은데도 집요하게 추천되는 콘텐츠들이 있었다. 이들은 엄선된 정보도, 분석에 실패한 정보도 아닌 교묘한 광고에 가까워 보였다. 나의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해 어떤 결과값으로 재생산하는 알고리즘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이 슬금슬금 생겨났다. 하지만 플랫폼의 첫 화면에 자리한 이 콘텐츠들이 대단히 기대할 만하지 않다는 것을 경험상 잘 알고 있음에도, 때로는 의심스럽다는 것을 알고서도 콘텐츠가 눈앞에 놓여 있다는 그 편리함 때문에 클릭하게 되는 것을 완전히 멈출 수는 없었다.
최근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음원 사재기 논란을 추적하며 ‘톱 100’ 등 음원 순위가 조작되어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방송을 보며 이 조작이 과연 조회수에 기반한 정보에서만 한정적으로 이루어질지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각자의 선호를 재생산하는 곳, 개개인의 목소리가 되돌아오는 곳이라고 여겼던 ‘에코 체임버’에서도 그런 조작이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어쩌면 타인의 이득을 위한 선호의 학습이 이루어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편리한’ 세계가 건네주는 데이터의 진위를 판가름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더 이상 자유로운 정보의 바다가 아니게 된 온라인에서 어떤 방식으로 음악을 들을 것인가. 그 현실적인 방법을 고민한다.
<신예슬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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