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중독자의 야간비행]겨울음악으로의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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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블라블라

[문화중독자의 야간비행]겨울음악으로의 회귀

여름과 가을 음악에 이어 겨울음악을 준비했다. 이번에는 한국예술가의 음악 위주로 골라보았다. 길게는 1986년에서 짧게는 2019년이라는 시간의 간극 사이에서 등장한 음악들이다. 과거에서 현재로의 괘적을 그려가며 1박2일간의 겨울음악여행을 마쳤다. 그들의 음악이 없었다면 내 겨울은 더욱 스산했을 것이며, 체감온도는 늘 저점에서 맴돌았을 것이다.


어떤날의 ‘겨울하루’를 소개한다. 조동익·이병우라는 조합은 한국 대중음악사의 빛나는 기록으로 남는다. 어떤날 1집 음반에 수록한 ‘겨울하루’는 정적과 사유의 완성물이다. 조동익의 얼음 같은 미성과 이병우의 설원 같은 기타는 예고 없이 다가와버린 겨울을 묘사한다. 이 곡은 겨울을 정면으로 응시하려 들지 않는다. 적당한 외면과 적당한 관망을 마음에 품고 계절의 무상함을 노래한다.


조동진의 ‘겨울비’는 죽음에 관한 고백이다. 노래라는 쓸쓸한 언어를 통해 어머니의 죽음을 위로한다. 그의 목소리는 지상에서 영원으로의 공간이동을 수없이 반복한다. 가사처럼, 바람끝 닿지 않은 밤과 낮 저편으로 사라진 이의 모습을 음울한 목소리로 회상한다. 5집 음반 출시와 함께 준비한 서울 대학로 공연에서 조동진을 보았다. 무대엔 동생 조동익이 함께 자리를 지켰다. 그는 2017년 작고한다. 


김현철과 조동진은 그리 자연스러운 조합은 아니다. 시티팝과 음유시란 맥주와 청주처럼 맛과 향의 간극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에 김현철은 재즈라는 편곡수단을 동원한다. 조동진의 원곡인 ‘진눈깨비’가 내성적인 겨울의 수용이라면 김현철의 곡은 겨울의 초입을 알리는 젊은 외침이다. 안치환이 부르는 ‘진눈깨비’는 조동진보다는 높고 김현철보다는 낮은 어딘가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비장한 겨울이다. 


스왈로우(Swallow)의 ‘눈 속의 겨울’은 몽환적인 계절의 풍경을 묘사한다. 그의 음성은 핑크 플로이드의 데이비드 길모어처럼 일상의 빈자리를 파고든다. 현악 연주를 가미한 이 곡은 캐나다의 얼음산 위에서 펼쳐지는 실내악 공연을 연상시킨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흰 눈을 털고서 다시 따뜻한 해가 뜨는 그곳으로 그냥 걸어가면 된다고. 


재즈트리오 젠틀 레인(Gentle Rain)이 연주하는 ‘Gentle Snow’는 결코 쓸쓸하거나 허허롭지 않다. 마치 세상을 원색의 물감으로만 채우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드러머 서덕원이 작곡한 ‘Gentle Snow’는 젠틀 레인의 세번째 음반 <Dreams>에 실려 있다. 피아노, 베이스, 드럼이라는 악기를 통해 지구를 향해 떨어지는 눈송이를 묘사하는 젠틀 레인의 연주는 밝고 긍정적이다. 


‘Between Winter and Winter’는 Jeong Park의 음반 <Deep Sunset>에 담긴 연주곡이다. 기타리스트 박정훈의 음악은 그의 어투처럼 세상을 느린 시선으로 응시하라고 안내한다. 그는 계절의 변화에 무념무상한 연주자다. 박정훈에게 4계절은 단지 겨울의 또 다른 모습일 뿐이다. 결국 1년 365일은 겨울과 겨울 사이에 위치한 시간일 뿐이라는 지점에 도달한다. 그는 허만하 시인의 작품을 떠올리며 이 곡을 완성했다. 


허만하 시인의 ‘나의 계절은 가을뿐이다’와 함께 겨울음악과 접속해보자.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언제나 한 시대는 운명이 되려 한다고, 낙엽은 건조한 고동색만이 아니라고, 그리하여 낙엽은 푸를 수 있다고, 푸른 낙엽이 낯선 볼리비아 흙 위에 눕는 순간 슬픈 열대는 땀에 번득이는 황갈색 피부가 된다고 말이다. 


적어도 우리에겐 음악이라는 치유제가 있고, 시라는 친구가 존재한다. 어쩌면 겨울이란 허만하 시인의 말처럼 음악과 시의 계절인지도 모르겠다. 매서운 추위 속에서 생명의 위대함을 깨닫고 찬바람과 마주하며 평화의 가치를 생각하는 계절, 그 과정에서 새로운 언어와 실천을 배우는 계절, 다시 만나도 낯선 얼굴로 다가오는 계절, 바로 겨울이다.


<이봉호 대중문화평론가 <독서인간의 서재>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