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경외롭게 생각하는 게, 처음에 천둥소리나 호랑이 울음소리를 들으면 다들 기절초풍을 할 거예요. (중략) 호랑이 입에서는 천둥이 나오는 소리가 들려요. 그러니 너무 놀라잖아요. 그런 경험과 비슷한 걸 좋은 소리를 들으면 느껴요. ‘우리 상상력이 너무 트랜지스터에 위축되어 있구나. MP3에 갇혀 있구나.’ 어마어마한 상상력을 펼쳐야 한다는 걸 배우게 되죠. 그건 경험해봐야 해요. (중략) 우리는 산울림 2집 때 ‘어느 날 피었네’를 녹음하면서 움트는 소리를 만들어 보려 했어요. 그걸 녹음하려고, 그 사운드를 만들려고 수십가지를 해봤죠. 물론 그런 소리는 없겠죠. 하지만 상상에는 있어요. 처음 시작은 유리가 금이 가는 소리로 시작해서 솜털이 돋아나오는 소리, 그래서 꽃이 확 웃는 소리를 재현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못했죠.” 소리가 주는 상상력에 대해 김창완이 언젠가 들려줬던 말이다.
태아가 외부와 소통하는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 수단은 듣기다. 태아는 달팽이관이 형성되는 4개월 반이 되기 전부터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양수의 진동을 통해서 말이다. 자궁에 빛이 없으므로 10개월 내내 보지 못한다. 탯줄로 영양을 공급받기에 먹지 못한다. 태아가 만질 수 있는 건 고작 태반의 벽일 뿐이다. 오직 듣는다. 그래서 옛 인디언 임신부들은 끊임없이 자연의 소리를 태아에게 들려주고 인디언의 이야기를 노랫가락으로 불러줬다. 소리로 상상하며 새로운 세상을 꿈꿨다. 그렇게 10개월 내내 소리로 태교를 받은 인디언 아이는 태어나서도 칭얼대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프랑스의 음악가이자 소설가인 파스칼 키냐르의 고백적 저작인 <음악 혐오>는 음악의 이런 운명성에 대한 내면으로부터의, 무의식으로부터의 토로다. 300년간 오르간 연주자를 배출한 가문에서 그는 어릴 때부터 오르간,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를 익혔다. 영화화되며 그를 널리 알린 <세상의 아침>도 바로크 음악의 미학을 다룬 작품이었다. 1992년에는 미테랑 대통령의 지원으로 베르사유 바로크 음악 페스티벌을 기획했고 ‘르 콩세르 데 나시옹’ 오케스트라를 주관했다. 소설가로서뿐만 아니라 음악 기획자로도 절정을 찍던 그는 1994년 음악과 저술, 모든 것을 그만뒀다. 1996년에는 급성 폐출혈로 사선을 헤맸다. <음악 혐오>는 그사이에 쓰였다. 활동을 멈춘 2년간 그는 음악으로부터 도망쳤다. 키냐르는 음악의 근원으로 회의적 사유를 떠났다.
음악의 힘은 마치 칼과 같은 것임을, 키냐르는 역사와 신화의 사례를 통해 발견하고 제시한다. 미술의 기원으로 해석되는 알타미라 벽화에서 이 그림이 그려진 동굴의 음향적 속성 ‘공명’에 주목했다. 동굴의 울림이 청각적 신성의 기원이 됐고, 이 음악이 곧 계급의 발원이 됐음을 말한다. <오디세우스>의 세이렌을 통해 음악이 주는 아름다움은 곧 죽음에 이르는 덫임을 재론한다. 아우슈비츠에 이르러 마침내 죽음의 전조곡으로서의 음악은 신화에서 현실에 당도했다. 수용소의 병원에 갇힌 유대인들은 가스실로 끌려가기 전 병실에서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강제로 봐야 했다. 비명조차 못 지르고 세상을 뜨는 홀로코스트의 현장엔 활이 현을 그어 만들어내는 선율이 있었다. “음악은 나치의 강제수용소에 징발된 유일한 예술 장르다.” 최초의 현악기였던 리라가 사냥과 전쟁에서 무엇인가를 죽이던, 활의 떨림에서 착안한 악기임을 떠올리면 음악과 죽음이 공유하는 시원의 궤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음악 혐오> 이후 쓴 <부테스>에서 키냐르는 세이렌의 노랫소리에 이끌려 바다로 뛰어든 부테스를 통해 음악은 인간의 의지를 뛰어넘는 유혹임을 말한다. 음악이 ‘생의 기쁨’일 뿐 아니라 ‘사의 찬미’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게 되면서 음악은 공기나 수돗물 같은 존재가 됐다. 어디에나 있기에 한없이 가벼워졌다. <음악 혐오>를 읽으며, 다시 음악의 힘을 생각한다.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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