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 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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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 스캔들

8월말 드라마가 시작할 때만 해도 이정도일줄은 몰랐습니다. 

화려하고 관심을 끄는 캐스팅이었지만 잘나가고 있던 자이언트와 동이에 치여 제대로 힘을 쓸 수 있을지. 애들이나 보는 드라마겠거니 무심코 보기 시작했는데 웬걸. 
내일모레 마흔을 바라보는 아줌마가 열두살짜리 딸보다 더 빠져서 허우적대고 있지 뭡니까. 처음에 송중기에게 꽂히더니 박유천, 유아인에 이어 정조를 연기하는 조성하씨에게까지 열심히 팬질을 해대고 있습니다. 

친구들, 다른 아짐들, 선후배 동료들 할 것 없이 삼사십대 여자들 몇명 모이기만하면 누가 멋있다며 이야기꽃을 피워대는 것이 남사스러워 마이클럽닷컴 등 인터넷을 슬쩍 봤더니 뒤늦게 동방신기 사진까지 모은다는 중증 아짐들 이야기를 듣고는 배꼽을 잡았습니다. 



KBS2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에 출연하는 박민영이 캔커피로 언 손을 녹이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남장여자. 이 오묘한 존재가 주는 매력이 있지요. 몇년전에도 <커피프린스1호점>이 비슷한 컨셉으로 수많은 여심을 공략했습니다. 
요근래 만화는 잘 모르겠지만 80년대에 초중고의 학창시절을 보낸 여성들이라면 남장여자를 주인공으로 한 영원한 사랑의 로망 오스칼과 유리우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겁니다. 베르사이유의 장미의 오스칼, 올훼스의 창에 등장하는 유리우스. 

만화책을 부여잡고 잠못 이루며 베개를 적시던 그날 밤들, 내가 주인공이 된 양 등장인물들을 생각하며 달뜨던 그 감정에 공부고 뭐고 손에 안잡히던 그날들. 
성균관스캔들을 보면서 무차별적으로 공습을 해 오던 그때 그날의 기억과 감정들은 현실을 잠시 접게 만들더군요. 미니홈피 스킨 바꿔달라는 딸래미에게 도토리 10개도 안사주던 제가 과감히 도토리 200개를 결제하고는 사흘밤을 꼬박 새며 올훼스의 창과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다시 읽어버렸습니다. 


만화를 읽어가면서 <올훼스의 창>의 크라우스를 걸오(유아인)에 비교해봤다가 유스포프를 이선준에 대입해봤다가 ... 
연습장을 펼쳐놓고 관계도를 그려가며 가당치도 않은 인물분석을 하더니 급기야 두 만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죽 늘어놓고 가상 캐스팅놀이를 하고 있는 저를 모닝콜로 맞춰놓은 알람이 울리고서야 발견했답니다. 
꼬박 새웠지만 이상하게도 몸이 그닥 피곤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내 청춘의 그날들, 꽃같은 나이였던 시절을 지내왔지만 내일모레면 마흔인 현재의 나를 생각하니 미묘한 허전함과 아릿함이 온몸을 맴돌더군요. 그렇게 푸석하게 아침을 맞으며 출근해서
쓴 기사입니다. 
 
사족-출근길에 올해 예순 둘이신 엄마에게 뜬금없이 전화를 걸어 물어봤습니다. 엄마, 남장여자 하면 생각나는게 뭐가 있죠? 
휴대폰 건너에서 카랑카랑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엄마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글쎄... 아, 김옥선이?






ㆍ‘로맨스 + 정치’ 중년층이 홀딱 빠졌다


조선시대 대학인 성균관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청춘유생들의 이상과 열정, 로맨스를 버무려낸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뒷심이 무섭다. 
아이돌 스타인 믹키유천(박유천)을 비롯해 송중기, 유아인, 박민영 등 신인급 연기자들을 파격적으로 캐스팅하면서 화제를 모을 당시만 해도 이 드라마는 10대들을 겨냥한 로맨스 사극일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묵직한 정치적 주제와 생동감 넘치는 당시 젊은이들의 삶과 사랑이 조화를 이루면서 시청자층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30·40대 여성층을 중심으로 <성균관 스캔들>에 열광하는 폐인들이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미시족이나 골드미스를 주요 대상으로 한 포털사이트 마이클럽닷컴 등에는 드라마 감상문을 비롯해 출연진 사진, 뉴스 정보를 모은 글이 빼곡하다.
주요 게시판마다 “서른을 훌쩍 넘은 나이에 동방신기 사진을 뒤지고 있는 내 모습을 동료들이 볼까봐 두렵다” “이 나이에 내가 미쳤나보다” “애들 보는 드라마인 줄 알았는데 뒤통수 맞았다”는 식의 코믹한 감상평도 줄을 잇고 있다. 



남장여인 김윤희(오른쪽)와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명문가의 자제 이선준.
이들을 중심으로 ‘잘금 4인방’ 사이를 감도는 애틋한 감정은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KBS 제공


◇ 여성 시청자층 열광 = 지난 8월30일 전파를 탄 <성균관 스캔들>의 초기 시청률은 6%대였다. 경쟁 드라마인 <동이>와 <자이언트>가 각각 20%를 넘는 높은 시청률로 단단한 아성을 쌓아놓은 터라 시청률 면에서 고전이 예상됐다.
그러나 횟수를 더해가면서 시청률은 상승곡선을 그렸다. 지난달 말 10%를 넘어섰고 지난 5일에는 11.1%(AGB닐슨·수도권 기준)를 기록했다. 초기에 비하면 시청률이 배나 증가한 셈이다. 이 같은 시청률 상승은 30·40대 여성층의 유입이 바탕이 됐다.
방송 초기만 해도 전체 시청자 가운데 10대 여성의 비중이 18.7%로 가장 높았지만 12회까지 진행되면서 10대 여성은 12%대로 줄어든 반면 30·40대 여성시청자 비율은 각각 18.2%, 18.6%로 높아졌다. 


드라마가 인기를 얻으면서 원작 소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도 재조명받고 있다. 2007년 출간 당시에 인기를 모았던 이 소설은 최근 베스트셀러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달에는 한국출판인회의가 집계한 온·오프라인 서점 통합 베스트셀러 6위에 올랐으며 이달 들어서는 2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출판업계에서는 독자층의 30~40% 정도가 30대 여성층인 것으로 보고 있다.

◇ 로맨스와 현실감 버무려져
KBS 드라마국 이강현 EP는 “이선준(박유천), 문재신(유아인), 김윤희(박민영), 구용하(송중기) 등 ‘잘금 4인방’(여자들이 맥을 못 출 정도로 매력적인 이들을 일컫는 원작소설 속 은어)의 매력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데다 이들을 통해 의미있는 메시지가 전달되면서 중년시청자들을 끌어들이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드라마에는 여성들에게 인기를 얻었던 대중문화 작품의 흔적이 어른거린다. 꽃미남, 남장여자라는 모티브는 <커피프린스 1호점> <꽃보다 남자>가 주었던 흥미로움과 닮아 있으며 잘금 4인방 개별 캐릭터에는 198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던 만화 <올훼스의 창> <베르사이유의 장미> <캔디캔디>의 등장인물을 떠올릴 만한 연결고리도 있다.
여기에다 드라마는 정통사극의 문법을 차용해 무게감을 더했다. 개혁군주 정조와 정약용의 고뇌, 노론과 소론의 대립, 당대조정의 갈등 구조를 성균관 판으로 압축한 잘금 4인방과 성균관 장의 하인수 간 대결구도 등이다. 이 같은 장치는 판타지적인 로맨스에 현실감을 부여했다.
이 같은 현실감은 30·40대 여성의 몰입을 이끌었다. 인터넷 게시판에 남긴 한 주부의 글은 이를 뒷받침한다. “치열한 성장통을 겪으면서 추억을 쌓아왔던 청춘의 시기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상실감 때문에 이 드라마에 몰입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