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모레면 서울국제도서전의 문이 열린다. 400개가 넘는 출판사들이 독자들을 만나기 위해 1년간 준비한 비장의 카드들을 일제히 꺼내 놓을 것이다. 주최하는 입장에서도 공들여 준비한 것들을 내놓아야 한다.
이즈음엔 모든 준비를 끝내고 느긋해야 하는데, ‘볼테르상’ 시상식 준비는 끝까지 마음을 졸이면서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이 상은 출판의 자유를 위해서 희생하거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출판인들에게 전 세계 출판인들이 뜻을 모아 주는 것이다.
18세기를 대표하는 계몽 사상가이자 작가인 볼테르의 이름이 붙은 까닭은 그가 “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할 수 없지만, 당신이 그 말을 할 권리를 지키는 데는 목숨을 걸 수 있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말은 사실 볼테르가 직접 한 말은 아니다. <볼테르와 친구들>(1906)이라는 책을 쓴 이블린 홀이 볼테르의 사상을 요약해서 표현한 말이다. 물론 볼테르가 비슷한 말을 남기기는 했다. “나는 그가 쓴 글이 싫다. 하지만 그가 계속 쓸 수 있도록 하는 데는 목숨을 걸 수 있다.” 1770년에 친구에게 쓴 편지에서 후배 철학자 엘베시우스가 <마음에 대하여>(1758)에서 보인 무신론, 실용주의, 평등주의에 대한 생각을 밝히면서 한 이야기다. 널리 알려진 문구는 정확한 인용은 아니지만 이미 볼테르 관용 정신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 21세기의 볼테르상도 그 정신을 기린다.
작년에 나는 이 상의 시상식에 처음으로 참석했다. 뉴델리에서 열린 국제출판협회 총회 자리에서 있었던 시상식에서 수상자의 부인과 딸들의 연설을 들으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종교적으로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살해당한 방글라데시 출판인의 부인은 남편이 입던 옷을 두르고 무대에 섰다. 그는 의사였는데, 병원에서 계속 일하면서 한편으로 남편이 하던 출판을 꾸준히 하고 있었다. 부인은 남편의 시계를 찬 손을 든 채 남편의 뜻을 기리고 어떤 어려움에도 그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태국에서 체포되어 중국의 감옥에 수감된 홍콩의 출판인은 중국 정부의 뜻을 거스르는 책들을 출판한 까닭에 고초를 겪고 있었다. 아직도 그의 석방 소식은 없다. 그의 딸은 시상식에서 아버지의 안위를 걱정하면서도 아버지가 보여준 용기의 가치를 존경하는 마음을 보여주었다.
지금도 홍콩은 우산혁명 이후 5년 만에 다시 시작된 대규모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범죄인 송환법’ 때문에 시작된 시위 인파가 100만명을 넘어섰다. 홍콩 사람들은 이 법이 발효되면 중국체제에 비판적이거나 정부의 비위를 거스르는 인권 운동가들이 중국으로 소환될 것이라는 걱정을 하고 있다. 이미 2015년에 중국의 비리나 스캔들을 다룬 책을 낸 출판인 다섯 명이 실종되었다. 16일로 예고되었던 대규모 집회를 앞두고 법의 추진이 연기되었지만 언제 다시 추진될지 모른다. 이 과정에 용기 있는 출판인들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올해도 전 세계를 대상으로 후보자를 고르고 6개월이 넘는 토론을 통해 수상자가 선정되었다. 수상자는 이집트의 출판인, 칼리드 루트피. 그는 출판을 통해 군사기밀을 누설했다는 혐의로 감옥에 있다. 창덕궁 규장각 옆 춘당대에서 열릴 시상식에 그는 직접 올 수가 없다. 생각해보니, 볼테르상은 늘 수상자가 시상식에 오지 못하는 상이다. 어찌 보면 수상자에게 축하를 건네기보다 위로와 지지를 보내야 하는 행사다. 이런 상황인데, 시상식에 와서 수상자의 정확한 사정을 알리기로 했던 수상자의 동생이 비자 문제로 입국이 불투명하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는 나름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최선을 다해서 서류를 준비해 보냈는데도 라마단과 휴일이 겹쳐서 비자 발급이 늦어지고 있다는 답변만 듣고 있다. 수상자가 국가기밀을 누설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기 때문에 공식적인 외교 경로로도 도움을 주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행사 전체를 총괄하고 있는 입장에서 개막을 이틀 앞두고 수상자 동생의 참석이 불투명한 것은 비상 상황이다. 백방으로 노력 중이고, 이 글이 신문에 실릴 무렵엔 어느 쪽으로든 결론이 났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가 오지 못할 때를 대비해서 수상자의 육성, 동생의 영상, 그리고 현지의 반응 등을 준비하고 있다.
볼테르상 시상식이 창덕궁 후원에서 열리는 것은 단순히 어려움을 겪는 다른 나라 출판인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블랙리스트 사태를 거치면서 우리는 출판과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지, 자본과 대중의 이중 구속 속에서 어떻게 볼테르의 정신을 구현할 수 있는지 다시 생각해 볼 기회로 삼고자 한다.
<주일우 | 이음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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