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두 편의 사과문을 읽었다. 둘 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쓴, 몇해 전 벌어진 일에 관한 것이었다. 소설가 신경숙이 표절 논란 4년 만에 신작을 계간 ‘창작과 비평’ 여름호에 발표하며 언론사에 배포한 ‘사과문’과, 김경주 시인이 대필 사실이 3년 만에 알려져 논란이 되자 한 매체를 통해 공개한 ‘사과문’이었다.
신경숙에게 4년이 충분한 ‘자숙’의 시간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미시마 유키오의 단편 ‘우국’을 표절했다는 의혹 이후 칩거했던 신경숙과 당시 그를 옹호하고 이번 신작을 발표할 지면을 내준 출판사 창비엔 충분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신경숙은 “젊은 날 한순간의 방심으로 제 쓰기에 중대한 실수가 발생했고…망각한 채 오랜 시간이 흘렀다”며 “미안하고 죄송하다”고 밝혔다. ‘표절’에 대한 명확한 언급은 없었다. 정말 ‘방심’과 ‘실수’, ‘망각’에 의해 일어난 것인지 그의 머릿속에서 벌어진 일을 심문하고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표절 논란 이후 벌어진 일에 대해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창비 측은 “의도적인 베껴쓰기로 볼 수 없다”고 옹호했다. ‘표절’ 자체보다 그를 둘러싸고 벌어진 문단의 반응이 더 문제가 됐고 ‘문학 권력’이란 비판을 받았다.
김경주에게 3년은 덮어둔 잘못이 드러나기까기 걸린 시간이었다. 2016년 미디어 아티스트 흑표범의 세월호 전시 도록에 실린 글과 비슷한 시기 도서관 소식지에 발표한 글이 후배 작가 차현지가 대필한 글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이는 김경주의 고백으로 흑표범이 페이스북에 저자를 김경주에서 차현지로 정정하는 글을 올리면서 외부로 알려졌다. 그렇게 김경주는 도록에 없는 이름이 되었다.
대필을 두고 김경주와 차현지의 입장은 엇갈렸다. 김경주는 “서로 돕는 일로 생각하고 대필이라는 이름으로 무겁게 생각하지 못했다”며 “협의에 의해 고료를 지급했다”고 밝혔다. 차현지의 말은 조금 달랐는데, “선후배라는 상하관계에서 대필 제안을 거절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김경주는 정말 ‘대필’이 문제라는 걸 몰랐을까? 아마 대필이 알려져 ‘문제’가 될 일이 없다고 생각한 쪽에 가깝지 않았을까. 그는 차 작가에게 “그 파급력은 너의 주변 사람들과는 다를 것”이라고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두 사건은 별개지만 배후에서 언급되는 ‘권력’이란 말은 같았다. 문단 권력에 대한 문제제기는 표절 논란으로부터 시작돼 2016년 말 ‘#문단_내_성폭력’ 고발 운동으로 터져나왔다. 전자가 베스트셀러 작가와 대형 출판사가 표절이란 사건에 대한 윤리적 성찰과 책임을 회피한 일이라면, 후자는 기성 작가가 ‘영향력’을 기반으로 예비·신인 작가를 상대로 벌인 폭력이었다. 천희란 소설가는 “문학의 권위가 폭력이 될 수 있다. 그해의 작품들 가운데 몇몇 작품에게 상을 주고, 특정 작가를 조명하고 평가하며, 작품을 실을 기회와 출판의 기회가 나뉜다. 문학은 수평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문단 내 권력에 대한 문제제기와 동시에, 외부에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 위한 움직임이 이는 것은 희망적이다. 차현지 작가는 홈페이지를 개설해 자신의 소설과 비평글을 독자에게 직접 유·무료로 서비스하는 플랫폼을 만들었다. ‘파급력’ 밖에서 스스로 존재하기로 한 것이다.
문단 내부는 어떤가. ‘자성’과 ‘사과’ 이외에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할 시스템을 고민하고 마련해 왔는가. 이것은 ‘표절’이나 ‘대필’이란 주홍글씨를 낙인찍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예술 안에서 벌어지는 잘못에 대해서, 예술 밖의 일과 마찬가지로 해결할 수 있는 합리적 시스템이 필요하단 말이다. ‘자성’과 ‘낙인’의 간극은 시스템 안에서 메워질 수 있다.
“인간을 앞서는 예술, 그 세계는 끝났습니다. 작은 세계를 작은 세계로서 사랑하고, 그 일에 종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라는 이성미 시인의 말이 마음에 남는다.
<이영경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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