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 내일 만들기]한국 애니메이션산업의 ‘논제로섬’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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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내일 만들기]한국 애니메이션산업의 ‘논제로섬’을 기대하며

오는 7월25일 국산 장편 애니메이션인 <레드슈즈>가 개봉한다. 지난 봄 <언더독>에 이어 좀처럼 보기 어려웠던 국산 장편과의 만남이다. <레드슈즈>는 한국 애니메이션의 핵심적인 문제로 대두되었던 입체적인 시나리오의 완성도, 캐릭터라이징의 글로벌화, 더빙과 음악의 전문성, 마케팅과 배급의 기획력 등이 거의 극복되었다고 평가되는 수작이다.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의 기획-제작-배급 등 단계별 제작공정 노하우를 수시로 벤치마킹하며, 실제 미국 현지 스태프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그 성과 또한 한국 애니메이션의 진일보와 세계적 수준의 제작력을 검증해 보여주었다. 


문제는 관객들의 평가다. 한국 애니메이션이 갖는 한계와 그동안의 시행착오 탓에 예비 관객들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한국 애니메이션산업의 가장 큰 오해는 산업계 구성원들 간의 시장인식이다. 여전히 국산 애니메이션시장을 제로섬(zero sum)으로 이해하며, 한정적인 투자재원과 영화계의 관심에 대해 이전투구하는 형상이다. 


1980~1990년대 한국 영화계도 그랬다. 반복적이고 정해진 제작사와 투자자본의 규모 내에서 형식적이라도 한국 영화를 몇 편 제작해야 흥행성과가 기대되는 해외 수입영화를 들여올 수 있는 권리, 즉 수입쿼터를 받을 수 있었다. 결국 이렇게 열악하고 한정적인 시장에서 난무하던 루머와 상호 간의 비방, 제작 과정상의 불투명성 등이 한국 영화산업을 실제 제로섬으로 내몰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악순환을 끊어낸 성공이 1999년 <쉬리>의 흥행이었다. 당시 600만명을 넘는 흥행성과와 삼성영상사업단의 신선한 투자모형이 도입되면서, 이후 영화산업에 관심이 없던 대기업들과 거대 양성자본이 한국 영화계에 실제 투자를 확대하게 된다. 


그러한 지속적인 투자는 이후 2000년대 초반 <실미도> <왕의 남자> <괴물> 등 천만명 이상의 흥행을 기록하는 한국 영화의 레전드들로 확인되었고, 이제는 할리우드 영화가 한국 영화 흥행 예상작들을 피해 개봉 일정을 고려하는 상황까지 되었다. 이제 한국 영화산업은 논제로섬(non zero sum)이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극장용 장편 역사는 1967년 어린이신문에 연재되었던 신동우 화백의 원작을 당시 국내 최고 제작진을 규합하여 신동헌 감독이 직접 만든 <홍길동>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작품의 성공 이후, 1976년 <로보트태권V>, 1996년 <아기공룡둘리-얼음별 대모험>, 2011년 <마당을 나온 암탉> 등이 그래도 작품성과 흥행성과에서 역사적인 기록으로 평가된다. 100억원 이상의 투자 및 제작비를 최초로 기록했던 <원더풀데이즈>와 좋은 원작의 수작으로 평가되는 <오세암>, 해외 공동제작으로 손익분기점 이상의 성과를 거둔 <넛잡> 등 우리에게도 자랑할 만한 장편 애니메이션의 역사는 존재한다. 


그러나 여전히 국내 애니메이션시장은 제로섬이다. 산업 구성원들과 관객들이 모두 인정하는 성과가 아직 검증되지 않았고, 이러한 시행착오의 연속이 국산 애니메이션의 투자장벽으로 작용한다. 


역설적이지만, 국산 애니메이션산업에 종사하는 실무자들의 열패감과 비관적인 전망이 외부 양성자본의 투자를 직간접적으로 막는 내부자 역할로 작동하기도 한다.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는 상황은 항상 제로섬의 악순환 구조를 더 심화시키고, 구성원 모두를 더욱 힘들게 할 수 있다. 


이번 <레드슈즈>가 그러한 굴레를 신선하게 극복해내는 퀀텀점프의 골든크로스가 되기를 기대한다. 오랜 고민과 검증 단계를 거쳐 수작으로 내놓은 국산 장편 애니메이션의 흥행성과가 논제로섬으로의 체질개선을 선도하고, 추가적인 거대 양성자본의 유입을 통해 세계적인 한국 애니메이션의 해외 진출로 연계되길 기원한다.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는다.


<한창완 세종대 융합예술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