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수 ‘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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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블라블라/노래의 탄생

박인수 ‘봄비’

봄은 짧지만 봄노래는 넘쳐난다. 누구나 봄 앞에서 흔들리기 때문이리라. 지난 몇 해 동안 장범준이 봄을 점령했지만 봄노래의 대명사는 따로 있었다. 비라도 흩뿌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박인수의 ‘봄비’가 그것이다.


‘이슬비 내리는 길을 걸으며/ 봄비에 젖어서 길을 걸으며/ 나 혼자 쓸쓸히 빗방울 소리에/ 마음을 달래고/ 외로운 가슴을 달랠 길 없네/ 한없이 적시는 내 눈 위에는/ 빗방울 떨어져 눈물이 되었나.’


사실 박인수가 불러 유명해졌지만 작사·작곡자인 신중현을 빼고는 얘기할 수 없는 노래다. 1969년 그가 이끄는 밴드 덩키스의 앨범에서 이정화가 먼저 불렀다. 그러나 박인수가 다시 불러 히트시켰다. 



박인수는 가슴을 파고드는 창법으로 솔풀한 느낌을 극대화시켜 이 노래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이정화가 부슬부슬 내리는 봄비를 불러오는 목소리라면 박인수는 바람에 흩뿌리는 봄비를 부르는 목소리쯤 될까. 이후 김추자, 장사익, 인순이, 체리보이, 홍서범, 하현우 등이 끊임없이 리메이크하면서 명곡이 됐다.


솔풀한 목소리를 가진 박인수는 파란만장한 삶으로도 눈길을 끈다. 


함북 길주 태생의 박인수는 1·4후퇴 때 부모와 헤어져 껌팔이를 하다가 미군부대에서 일하게 된다. 14살 때 미국으로 입양을 간 그는 켄터키 중학교와 베어모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러나 향수병 때문에 21세 때 한국으로 돌아와 미8군 무대서 노래하던 그는 신중현을 만나 일약 스타가 됐다. 


결혼과 이혼, 대마초로 인해 인생의 굴곡을 겪었던 그는 훗날 극적으로 어머니도 찾았으나 잦은 투병으로 평탄하지 않은 인생을 살고 있다. 1990년대 그를 인터뷰했을 때 재기를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을 봤지만 끝내 그 뜻을 이루지 못했기에 안타깝다. 


그러나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창법으로 부른 그의 ‘봄비’는 우리 가슴속에 봄의 문신처럼 남아있다.


<오광수 경향플러스 콘텐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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