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TV토크] 억지 짜맞춤 그러나 소름돋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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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은의 TV토크] 억지 짜맞춤 그러나 소름돋는 즐거움

#. 록그룹 넥스트, 걸그룹 레인보우.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들 사이에 놀라운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두 그룹은 18이라는 숫자로 얽혀 있다. 데뷔 연도가 각각 1992년과 2010년으로 18년의 차이가 나며, 넥스트의 기타리스트 김세황과 레인보우 멤버 노을의 출생연도는 각각 1971년과 1989년으로 정확히 18년 차이가 난다. 이뿐만 아니다. 넥스트의 리더 신해철이 가수로 태어난 날(데뷔일)과 레인보우 리더 김재경이 태어난 날은 1988년 12월24일로 똑같다.



록그룹의 전설 백두산과 꽃미남밴드 씨엔블루도 거스를 수 없는 운명으로 엮여 있다. 백두산의 김도균은 어린 시절 목관악기 리코더로 상을 탔고, 씨엔블루의 정용화는 목관악기 클라리넷을 연주한다. 원조 아이돌 황보와 엠블랙도 ‘누나’라는 키워드를 공유한다. 엠블랙 멤버들은 스타 연예인을 누나로 뒀고, 황보는 처음부터 누나였으니까. 발라드 황제 신승훈과 짐승돌 2PM의 닉쿤도 똑같은 ‘인형’이다. 신승훈은 인형처럼 변치 않는 동안 외모, 닉쿤은 그 자체로 살아 있는 인형이라서다.


#. 황당무계하고 어이없는 주장 같지만 듣다보면 소름끼칠 정도로 들어맞는 논리. 음악토크쇼 <비틀즈 코드>(Mnet)에서 발견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사람에게 시간 차이를 두고 같은 운명이 반복된다는 ‘평행이론’을 기본 축으로 한 이 프로그램은 신구세대를 대표하는 음악인을 한자리에 앉혀놓고 상대의 인생을 탐색하고 음악세계를 분석한다. 밴드 백두산과 씨엔블루, 작곡가 김형석과 신사동호랭이, 감성발라드로 통하는 전영록과 조성모 등이 짝을 이뤄 출연하는 식이다. 이들은 MC 윤종신과 유세윤이 말도 안되는 논리를 펼치며 “소름끼친다”를 연발하는 동안 이 엉뚱한 토크쇼에 기꺼이 자신을 내맡긴다.

그래도 방송 초기엔 밴드, 작곡가, 아이돌, 뮤직비디오 감독, 보컬리스트 등 외견이나 프로필상 비슷한 점이 발견되는 음악인들이 함께 출연했지만 5개월이 지난 요즘은 그런 법칙마저도 사라졌다. 터닝포인트는 지난해 12월 방송됐던 ‘넥스트와 레인보우’편. 외견상 비슷한 팀을 찾는데 집착하다가 소재 고갈을 맞은 제작진이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내놓은 고육책이었지만 정도가 심해진 억지와 우기기에 시청자들의 환호와 열광은 더 커졌다.


#. 얼토당토않은 조합. 연관성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출연자를 ‘엮는’ 제작진의 능력은 ‘레전드’급이다. 현재 예능계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이 프로그램의 작가 최대웅, 남지연 등 4명이 ‘대덕연구단지’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남 작가는 “섭외가 되는 대로 게스트를 조합하다 보면 공통점을 찾아내는 것이 맨땅에 헤딩하는 정도로 어렵지만, 뒤지고 또 뒤지다가 희한하게도 공통점이 나온다”면서 “데뷔일, 생년월일, 멤버수 등 출연자들과 관련한 온갖 숫자를 뽑아 이리저리 맞춰보고 출연자 가족들의 공통점까지도 맞추다보니 아무런 연관성을 찾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힘들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출연자들이 대화를 나누다가 ‘얻어 걸리는’ 경우도 있다. 유리상자의 이세준과 슈프림팀의 싸이먼D가 경주대 출신이라는 점, 부활의 서재혁과 2AM의 창민이 경찰군악대 출신이라는 것도 녹화 중 발견돼 출연자들을 소름돋게 한 사례다.

안소연 PD는 “음악과 개그 양쪽 분야에서 모두 활약하는 MC들의 역량 덕분에 어이없는 상황이 고도의 개그코드로 승화된 것 같다”면서 “앞으로는 윤상현씨나 현빈씨 같은 배우들도 섭외해 게스트의 폭을 넓히고 싶다”고 말했다. “음악하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드라마에서 가수 역할도 했고 OST도 불렀으니 범음악인”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 <비틀즈 코드>가 무기로 내세운 평행이론의 ‘약발’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최대웅 작가는 “평행이론에 집착하지 않는다. 사회과학, 자연과학에 있는 수많은 법칙을 차용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나비효과, 관성의 법칙, 플레밍의 법칙, 작용반작용의 법칙 등등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예를 들어 용불용설을 볼까요? 잘 나가는 그룹에서 활동했지만 다른 멤버들에 비해 주목받지 못한 사람들만 모아보면 ‘용불용설’을 적용할 수 있을 테고, 일정한 패턴으로 인기를 얻었다가 인기가 떨어지는 사람들을 모아 ‘관성의 법칙’을 대입해봐도 되고…. 이런 식으로 하다보면 100년도 더 갈 수 있을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