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女神)이 망가졌다. 코믹하게 일그러진 얼굴도 예사로 보여주고, 푼수끼 철철 넘치는 말투로 상대에게 들이대기 일쑤다. 망가졌다지만 귀엽고 사랑스러운 그녀. 대중은 뜨겁게 환호한다.
화려한 ‘스펙’과 뛰어난 외모를 바탕으로 오랜 기간 광고계를 주름잡는 톱스타로 군림하다가 비로소 ‘배우’로 거론되기 시작한 김태희 얘기다. MBC 수목드라마 <마이 프린세스>에서 좌충우돌 여대생으로 출연하고 있는 그에겐 이번 배역이 연기인생의 전환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 망가져서 뜬다? = 고혹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기존 이미지를 버리고 코믹하고 엉뚱한 연기를 통해 재발견되는 여배우는 김태희뿐만이 아니다. 김태희처럼 CF 스타의 이미지가 더 강했던 신민아도 마찬가지다. 그는 지난해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SBS)를 통해 연방 “고기 먹자, 고기가 막 먹고 싶어” “뽀글이 물, 아 맛있다”고 외치며 사랑스러운 매력을 발산했다.
CF 활동은 활발했지만 연기자로서는 뜸했던 김남주도 브라운관에 복귀하면서 푼수끼 넘치고 능청맞은 ‘생활형 연기’를 통해 8년간의 공백을 극복하고 연착륙에 성공했다. 2009년 방송됐던 <내조의 여왕>(MBC)의 성공 이후, 그는 현재 속편격인 <역전의 여왕>(MBC)에서도 타이틀롤을 맡아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비호감, 안티 논란에 시달렸던 연기자들 역시 ‘망가짐’은 구원의 발판이 됐다. 비호감의 대명사로 평가받았던 한예슬은 2006년 방송됐던 <환상의 커플>(MBC)에서 얼굴에 소스를 묻힌 채 자장면을 게걸스럽게 먹던 ‘나상실’을 통해 호감 캐릭터로 급부상했다. 황정음과 이시영 역시 각각 <지붕뚫고 하이킥>(MBC)과 <부자의 탄생>(KBS)에서 감춰진 매력을 보여주며 연기자로서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 친근감과 의외성 = 대중문화에서 ‘스타’로 평가받는 연예인들에 대해 대중이 갖는 감정은 비현실성에 발판을 두고 있다. 말 그대로 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신비하고 접근이 어려운 ‘그들’은 현실에 지친 대중의 마음을 위로하며 판타지를 충족시킨다. 이 때문에 ‘스타’들이 주변의 일반인과 별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대중은 친밀감과 호감을 갖게 마련이다.
비록 연기라 할지라도 이들이 허술한 구석을 드러내며 코믹한 상황을 연출하는 것은 의외성과 신선함을 준다. 리얼 버라이어티에 출연한 톱스타가 진솔한 모습을 보인다거나 개인 홈페이지에 코믹한 사생활을 담은 사진을 올릴 때 대중이 느끼는 친근감도 이와 비슷하다. 문화평론가 하재근은 “망가지는 걸 불사하며 극중으로 뛰어드는 모습에서, 이들이 최선을 다하는 프로라는 긍정적인 인상까지 갖게 된다”면서 “강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던 톱스타라면 그 효과는 훨씬 커진다”고 설명했다.
‘망가짐’으로 성공한 이들이 공통적으로 연기력 논란을 빚어왔다는 점에서 봤을 때, ‘망가짐’은 탁월한 선택인 셈이다. 복잡미묘하고 섬세한 감정연기에 비해 망가지는 연기는 고도의 연기력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이 같은 캐릭터는 사극이나 시대극이 아닌, 트렌디 한 로맨틱 코미디에 주로 등장하기 때문에 연기자 입장에서는 배역에 몰입하기도 쉽다. SBS 드라마국 김영섭 CP는 “같은 노력을 들이고도 연기를 잘하는 것처럼 보일 뿐만 아니라 배우로서 열정을 보여주는 것과 동일시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 절박함 속의 선택 = ‘망가짐’은 종종 탈출구로 사용돼 왔지만 CF로 이미지를 굳힌 여성 톱스타에겐 모험이 된다. CF에서처럼 정제되고 예쁜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망가지는 데는 적잖은 결심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결심의 바탕에는 대중문화계에서 지속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절박함이 깔려 있다. 문화평론가 정덕현은 “과장된 코믹 연기가 보기에는 재미있어 보이지만 이미지를 통해 스타로 만들어진 여배우 입장에서는 몹시 어려운 일”이라면서 “특히 여배우는 ‘스타’로 머무는 연령대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스타에서 연기자로 발돋움하지 못하면 더 이상 활동이 힘들어지는 것이 연예계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연기 변신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김태희의 경우 연기에 입문한 지 8년에 이르고, 연기적으로도 많은 시도를 해 봤지만 그동안 이렇다 할 성과를 얻는 데 실패했다. CF에서는 톱스타지만 배우로서는 콤플렉스를 안고 오랜 기간을 보낸 셈이다. 문화평론가 김선영은 “김태희의 연기 변신은 막바지 선택이었다는 느낌을 줬고 결과는 성공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또 “김남주는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과감한 변신을 통해 새로운 연기 영역을 개척한 사례로 꼽을 만하다”면서 “그렇지만 과거의 이미지와 평가에 머물러 이 같은 판단을 미루고 있는 ‘스타’들은 어느 순간 도태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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