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스(Blues) 음악.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미국 남부의 흑인들 사이에서 일어난 두 박자 또는 네 박자의 애조를 띤 악곡을 의미한다. 음악이란 문명처럼 변형과 융합의 과정을 겪는다. 조지 거슈윈의 클래식과 재즈, 마일스 데이비스의 재즈와 록, 비지스의 팝과 디스코처럼 블루스도 태생 여부와 상관없이 지역과 장르와 역사라는 변수에 영향을 받는다.
1980년대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블루스란 어색하고 생소한 음악이었다. 해석에 따라 나이트클럽에서 흘러나오는 느린 춤곡을 블루스라고 이해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일명 ‘블루스 타임’이라는 유행어의 영향이었다. 여기에 일침을 가한 음악인들이 있었으니 바로 신촌블루스였다. 당시 신촌은 뉴욕의 빌리지 뱅가드처럼 젊은 음악인을 위한 열린 공간이었다.
그룹 시나위에서 신대철의 역할을 기타리스트이자 리더라는 의미만으로 해석하는 건 충분치 않다. 시나위란 신대철의 분신과도 같은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신촌블루스에서 엄인호라는 인물은 비슷한 비중을 지닌다. 그는 부산에서 음악다방 DJ 생활을 하며 연주생활을 이어나간다. 1970년대 후반기에 만든 ‘아쉬움’ ‘골목길’은 신촌블루스의 대표곡으로 자리 잡는다.
엄인호는 1979년 이정선, 이광조와 함께 <풍선>이라는 포크음반을 발표한다. 1982년에는 <장끼들>이라는 음반에서 블루스를 가요에 접목한다. 그는 전유성의 친구가 운영했던 신촌의 레드 제플린이라는 음악카페를 인수한다. 1986년에는 레드 제플린에서 블루스 공연을 시작한다. 같은 해 6월에는 대학로 샘터 파랑새극장에서 정식 공연을 시작한다. 본격적인 신촌블루스의 태동이었다.
서울 올림픽으로 부산하던 1988년에 신촌블루스 1집 음반이 소리소문 없이 등장한다. 엄인호를 필두로 이정선, 한영애, 윤명운, 정서용, 박인수가 블루스라는 우산 아래로 모여든다. 신촌블루스는 당시 TV 음악방송의 주역은 아니었지만 공연을 통해 존재감을 유지한다. 1989년 발표한 2집에서는 김현식의 ‘골목길’과 봄여름가을겨울의 ‘또 하나의 내가 있다면’을 감상할 수 있다.
1990년에는 신촌블루스 3집이 등장한다. 이번에는 정경화와 이은미가 보컬로, 이정식이 연주자로 참여한다. 병마에 시달리던 김현식은 ‘이별의 종착역’을 남긴다. 같은 해 11월1일 김현식은 간경화로 세상을 떠난다. 엄인호는 훗날 인터뷰에서 신촌블루스 최고의 음악인으로 김현식을 꼽는다. 같은 해 엄인호는 첫번째 솔로작이자 가장 아끼는 음반 <Sing the Blues>를 발표한다.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신촌블루스는 진행형이다. 엄인호의 음악인생 40년을 맞이하는 2019년에도 신촌블루스는 공연을 멈추지 않는다. 그는 1997년 발표한 음반 <10년 동안의 고독>을 통해 신촌블루스를 거쳐간 수많은 블루스맨을 그리워하는 곡을 선보인다. 그는 블루스란 편곡과정에서 완벽을 기할 필요가 없는 자유로운 음악이라고 언급한다.
영화 <러덜리스(Rudderless)>에는 음악으로 과거의 상처와 화해를 시도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신촌블루스의 전성시대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멤버들은 오히려 신촌블루스를 떠난 상태에서 유명 음악가라는 염원을 달성한다. 이는 엄인호가 언급한 블루스의 운명과 부합하는 또 다른 현실이다. 외로움과 고통을 동반하는 과정이 블루스의 정체성이라는 노음악인의 발언이 기억에 남는다.
다시 <러덜리스>로 돌아가보자. 작은 음악카페에서 연주생활을 하던 샘은 지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포기하는 자는 이길 수 없다”고. 신촌블루스는 포기나 승리가 아닌 존재의 음악이다. 찬란하지 않았기에 변함없이 존재 가능했던 신촌블루스. 3집 수록곡 ‘향수’와 함께 그들의 음악을 추억해본다.
<이봉호 대중문화평론가 <취향의 발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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