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갱신되는 ‘버닝썬-승리 사건’을 보며 새삼스레 ‘음악’을 되돌아본다. 그런 일이 벌어진 곳은 음악을 즐기는 공간이었고, 범죄 혐의를 받는 그들은 노래하는 자였고, 그들의 삶을 지탱해준 것은 화려한 퍼포먼스로 가득 찬 무대였다. 음악을 통해 부와 명예를 쌓은 이들은 이제 검찰에 소환되어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사람의 죄가 곧 음악의 죄는 아닌 탓에 법이 그들의 음악까지 심판하지는 않는다. 음악에 대한 판단은 듣는 사람들의 몫으로 남는다. 이제 그 음악들을 어떻게 들어야 할까?
그 음악은 선의로 가득할 수도, 대체 불가능한 아름다움을 선사할 수도, 사람들에게 삶의 희망을 줄 수도, 엄청난 예술적 성취를 이뤄냈을 수도 있다. 또 일찍이 롤랑 바르트는 문학을 이해할 때 저자를 중심에 두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를 중심에 두자고 주장하며 ‘저자의 죽음’을 선언했다. 창작자가 아니라 작품에 더 주목을 하자는 이 생각을 음악에도 적용한다면 우리는 음악가를 굳이 떠올리지 않고 음악만 들을 수도 있겠다. 그런가 하면 음악가의 삶에서 벌어진 구체적인 사건들과 음악은 애초에 완전히 무관할지도 모른다. 음악이 그저 음악일 뿐이라면, 그들의 음악만큼은 무고할 것이다.
하지만 그 생각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나는 오랫동안 이탈리아 작곡가 카를로 제수알도의 ‘나는 고통 속에 죽어야 하네’를 좋아했었다. 스산한 도입부가 몹시 매력적인 이 음악을 이전처럼 즐겨 들을 수 없게 된 것은 작곡가가 자신의 부인과 정부를 왜 그리고 어떻게 살해했는지 알게 된 후부터였다. 이 음악을 들을 때마다 그 사건이 빠짐없이 떠올랐다. 이런 일은 이후에도 여러 번 반복됐다. 너무도 사랑했던 피아니스트가 아동 성추행으로 기소됐을 때, 멋진 행보를 보인다고 생각했던 가수가 동료에게 폭력을 휘둘렀다는 뉴스를 봤을 때, 존경했던 지휘자가 성폭행 의혹으로 퇴출됐을 때 나는 애써 음악과 그들은 다르다고 생각하며 내가 몹시 아껴왔던 그들의 음악만큼은 구출해내고 싶었다. 음악은 여전히 아름답게 반짝반짝 빛났다. 그러나 나는 결국 듣기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당장의 짧은 즐거움을 위해 내 안의 중요한 무언가를 저버리는 기분이었다.
실상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았다. 이 상황에는 온갖 죄를 다 적용해 볼 수 있었다. 최근 아이슬란드의 밴드 시규어 로스는 14억원 탈세 혐의로 기소됐고, 일본의 가수 피에르 다키가 마약 혐의를 받자 소속사인 소니 뮤직은 해당 가수의 음원 서비스를 중단했다. 성범죄나 폭행, 권력형 범죄혐의를 받는 경우는 고민할 필요도 없었던 반면 이런 뉴스를 보자 ‘이 정도의 사안쯤은 모른 척 넘기고 계속 들어도 괜찮을까? 아무리 그래도 14억원은 너무했나? 폴 매카트니도 마약 복용을 고백했는데 다들 그 음악을 잘 듣고 있지 않았나?’ 하는 불편한 고민이 조금씩 피어올랐다. 마치 불매운동을 하듯 잘못된 행동을 저지른 사람의 음악을 듣지 않겠다고 한다면 그 기준점을 무엇으로 삼아야 할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가볍게 넘기면 될 일을 내가 너무 심각하게 생각한 것인지도 모른다. 고심해봐야 결국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듣거나 혹은 듣지 않거나다. 이렇게나 사소한 결정에 지나치게 큰 힘을 쏟는 일이 시간 낭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한편으론 음악은 정말로 무고한 것 같아서 음악가의 ‘죄질’에 따라 음악의 운명이 뒤바뀌는 것이 어불성설 같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래도 그 음악 뒤에 누가 있는지를, 그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를 잊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어떤 이들의 음악을 듣지 않기로 했다. 그 기준을 잡아가는 데에는 많은 고민이 뒤따르겠지만 더 이상 예술을 ‘치외법권’에만 두고 싶지 않다. 음악의 아름다움이 윤리의 눈을 가려버리는 것은 아닐까 두렵기도 하고, 어떤 음악이 누군가에게는 직접적인 피해를 떠올리게 하는 끔찍한 대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무엇을 듣는지, 누구의 음악을 듣는지, ‘듣는 일’에도 최소한의 윤리와 책임이 부여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음악 역시 우리의 삶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므로.
<신예슬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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