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MBC 대학가요제 대상의 주인공은 그룹 무한궤도였다. 당시 심사위원은 가왕 조용필. 이 때문에 그룹의 실질적인 리더였던 신해철은 조용필이 점지한 가수라는 영예가 훈장처럼 따라다녔다. 당연히 음악업계에서는 무한궤도가 아닌 신해철과의 솔로음반 계약을 원했다. 이후 신해철은 철학과를 중퇴하고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한다.
미안하지만 나는 그의 음악을 좋아하지 않았다. 무한궤도의 음악은 금수저 대학밴드의 팝음악으로 치부했고, 솔로시절의 음악은 감성팔이 가요로 취급했다. 평소 즐겨 듣던 재즈나 포크음악이라면 모를까, 신해철의 소리는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그룹 넥스트를 결성한 이후에도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적어도 가수 김민기나 김두수처럼 예술가의 결기가 번뜩여야 한다고 믿었다.
돌이켜보면 신해철은 내가 함부로 재단할 만한 음악가가 아니었다. 그가 완성한 가사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한 살 터울이었지만 신해철은 나보다 높은 자리에서 세상을 응시하던 인사이더였다. 난 신해철과는 결이 다른 20대를 보내고, 무방비 상태로 30대를 맞이했다. 부침이 심한 가요계에서 신해철은 여전히 고군분투 중이었다.
이번에는 가수가 아니라 논객 신해철이었다. 그는 MBC <100분토론>에 등장하여 소신 발언을 투하하기 시작한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100분토론>에 참여하는 행위가 연예인으로서 시장가치를 떨어뜨린다는 사실을. 가수 따위가 권위 있는 방송토론에 얼굴을 내민다는 것이 금기로 취급되던 이상한 시대였다는 사실마저도. 매니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필마단기로 방송토론에 출연한다. 이길 수 없는 전쟁터로 나가는 장수의 심정으로 노회한 논객들과 설전을 벌인다.
일부 시청자는 신해철의 복장을 문제 삼았다. 후드티와 가죽장갑이 방송토론회에 부적합하다는 주장이었다.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서 심정을 밝힌다. 블루진이 노동계급을 상징하듯, 정장에 넥타이를 매는 것은 보수 기득권층인 화이트칼라들의 예복을 상징하는바, 이에 순응하지 않고 자신의 출신성분 혹은 정체성을 표시하는 캐주얼 혹은 록가수스러운 소품으로 토론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물의를 일으켜 송구스럽다고. 반론의 여지가 없는 음악인의 소신 발언이었다.
신해철에 대한 편견을 완전히 바꾼 계기는 한 권의 책이었다. <신해철의 쾌변독설>. 책을 통해서 신해철은 거만하고 잘난 체하는 유명인이라는 낡은 생각을 삭제했다. 그제서야 난 현실을 노래하는 강건한 음악가에게 화해와 사과의 마음을 건넸다. 한대수의 노래 ‘바람과 나’의 가사처럼, 무명무실했던 젊은 시절을 <신해철의 쾌변독설>과 함께 마감했다.
2014년 10월27일. 신해철은 갑작스러운 의료사고로 혼탁해진 지구를 떠난다. 그의 갑작스러운 이별통보가 믿기지 않았다. 아직도 세상을 위해 할 일이 태산처럼 남은 협객의 사망이었다. 노래 ‘민물장어의 꿈’처럼 마왕은 성난 파도 아래 깊은 곳으로 사라졌다. 억울한 죽음을 성토하는 문장들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나는 술자리에서 노래 ‘나에게 쓰는 편지’ 후렴구를 반복해서 뇌까렸다.
그는 한국인에게 많은 숙제를 남겨두고 퇴장했다. 대중가수를 하대하는 1990년대 방송 풍토를 개선하기 위해 전투적 자유주의자의 삶을 자처했던 남자. 노래 ‘수컷의 몰락’을 통해서 절반의 허세와 절반의 콤플렉스로 연명하던 마초이즘을 지적했던 남자. 정치적 발언의 후폭풍 속에서도 품격을 잃지 않았던 남자.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세상을 앞서갔던 남자. 노래 ‘나에게 쓰는 편지’와 함께 그의 찬란했던 시간들을 되새겨 본다.
‘전망 좋은 직장과 가족 안에서의 안정과 은행 계좌의 잔고액수가 모든 가치의 척도인가. 돈, 큰 집, 빠른 차, 명성, 사회적 지위, 그런 것들에 과연 우리의 행복이 있을까. 나만 혼자 뒤떨어져 다른 곳으로 가는 걸까. 가끔씩은 불안한 마음도 없진 않지만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친구여. 우린 결국 같은 곳으로 가고 있는데.’
신해철의 결연했던 미소가 다시 그리운 계절이다. 안녕, 내 젊은 날의 비트겐슈타인. 그렇게 굿바이, 신해철.
<이봉호 대중문화평론가 <음란한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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