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조동진, 그런 음악인이 또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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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조동진, 그런 음악인이 또 나올까

 

조동진을 생전에 직접 만난 적이 있다. 공연기획자로 일하는 친구가 부산에서 조동진 공연을 기획해서 관람을 갔다가 친구의 ‘빽’을 믿고 공연 뒤풀이에 참석하려고 조동진을 직접 만나 물었던 적이 있다. “뒤풀이에 참석해도 될까요?” “네, 그러세요.” 그런데 그 목소리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마치 고목나무 뿌리에서 울려나오는 듯한 아주 묵직한 저음이었다. 그 이전에도 조동진의 음악을 좋아했지만 주로 히트곡 위주로 들었는데 조동진을 만나고 난 이후 이전에는 잘 듣지 않았던 ‘겨울비’ ‘어둠속에서’와 같은 깊고 무거운 곡들이 마음에 다가오기 시작했다.

 

조동진의 음악은 또 다른 기회에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인생의 방향을 잃고 방황하던 시절 주로 강가를 하염없이 거닐었다. 그때 조동진의 음악을 들으면서 조동진의 많은 곡들이 강가를 산책하면서 사색을 통해 만든 것이라고 느꼈다. ‘바람부는 길’ ‘긴긴 다리 위에 저녁해 걸릴 때면’ ‘어떤 날’과 같은 곡들이 마음에 위안을 주었다. 그 뒤로 음반에는 수록됐지만 히트하지 않았던 소박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는 곡들이 마음에 스며들어 왔다.

 

이렇게 조동진의 음악들을 온전히 이해하기까지 10여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러다가 2015년 푸른곰팡이에서 발매한 강을 주제로 한 옴니버스 음반 <강의 노래>를 듣고 조동진의 음악이 강을 닮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은 모든 것을 흡수하고 녹여낸다. 그리고 천천히 흘러 제일 낮은 곳으로 흘러들어간다. 강가를 혼자 걷기 좋아하는 사람은 고요한 내면을 지닌 사람일 것이며 혼자서도 그 고독의 무게를 능히 감당해낼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강을 닮고 싶어 하는 사람은 느리게, 낮게, 작게, 끈질기게 사는 삶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를 증명해줄 수 있을 것이다.

 

조동진이 삶의 위안과 태도에 대해 말하는 음악가인 줄 알았는데 거장이라 불러도 족할 만한 대단한 음악가라는 사실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1996년 5번째 음반을 발매한 지 20년 만인 2016년 발매한 6집 <나무가 되어>를 듣고는 내가 몰랐던 조동진의 음악세계가 또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음반은 조동진이 그토록 오랫동안 뚝심 있게 벼려온 음악세계를 21세기에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작품으로 재탄생시킨 걸작이었다. 70이 가까운 나이에 이런 음악적 내공과 반전을 보여줄 수 있는 음악인이 한국에 과연 또 있을까?

 

한국 대중음악에서 조동진의 음악적 위치는 참으로 특별하다. 그는 1979년에야 자신의 첫 음반을 발표하여 1980년대에 알려지게 되지만 사실은 세시봉 스타들과 친구이며 1960년대 후반에 같이 음악을 시작했다. 트윈폴리오의 전신인 트리오세시봉이 결성될 1967년에 조동진은 쉐그린이란 록밴드로 음악을 시작했다.

 

한국의 통기타음악 1세대인 세시봉 스타들이 대마초 사건으로 1975년에 완전히 몰락한 이후 통기타음악 2세대인 대학가요제 스타들이 출현하는 1980년대에 조동진은 자신의 시대를 맞이하며 통기타음악의 대부로 불리게 된다. 통기타음악 1, 2세대가 <콘서트 7080>에 나와 추억을 회상할 때 조동진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음악가로서 21세기를 지향하는 자신의 걸작 음반을 발매한다.

 

2017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조동진의 <나무가 되어>가 올해의 음반상과 최우수팝음악 부문의 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또 있다. 그것은 수상 부문이 2015년 신설된 포크음악 부문이 아니라 팝음악 부문이라는 사실이다. 더 이상 한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조동진만의 음악세계를 이룩했고 그것이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조동진만의 음악적 위치를 달성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건이었다. 그것도 70세의 나이에…. 이 기록은 앞으로 깨지기 힘들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오래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것은 천하의 진시황도 실패한 일이다. 하지만 방법이 있다. 예술가로서의 한 정신세계를 오롯이 담은 걸작을 남긴다면 비록 육신은 사라져가도 그는 후대 사람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죽기 전에 자신의 걸작을 남기고 박수 칠 때 떠날 수 있었던 조동진의 죽음은 참으로 행복하고도 완전한 죽음이다. 내일은 조동진의 음악을 들으며 낙동강변을 거닐어야겠다. 주막에 가서 술 한잔하며 고인의 명복도 빌고….

 

<김형찬 | 대중음악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