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가고 오는 것에 무덤덤하고 신년 다짐도 시큰둥한 나이가 되었지만, 새해 벽두에 지난해를 돌아보니 의미 있게 기억되는 장면은 청년 음악가들의 여러 시도들이다. 청년실업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무한 경쟁체제에 내던져진 청년들의 불안은 음악 분야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 속에서도 거대한 음악산업의 질서 바깥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위해 분투하는 주변의 청년 음악가들이 내게는 무척 귀하게 여겨진다.
‘작곡을 전공한 서른 언저리의 이들은 무엇을 하는가.’ 작년 봄, 도심의 여느 공연장이 아닌 창동과 문래동의 작은 공간에서 열린 이 특이한 제목의 음악회에 눈길이 간 건, 약간의 지원금으로 또래 작곡가 7인의 신작을 무대에 올린 청년 작곡가의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지금 이곳에서 작곡가로 살아가는 것의 어려움을 처절하게 인식한 채, 어떤 헛된 희망도 없지만 시행착오의 잔해들이나마 모아보려 마련했다는 자리. 기존 질서에 쉽사리 편입되지 않고 이 시대에 조응하는 작곡가의 존재 의미를 스스로 찾아보려는 몸부림이 흔치 않기에, 이런 노력들이 계속 이어지길 바라게 된다.
‘신음악의 다잉메세지’라는 팟캐스트의 등장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무겁고 진지한 이름과 달리 ‘신음’과 ‘악의’라는 남녀 두 청년이 경쾌하게 풀어내는 현대음악에 대한 수다를 듣다보면 세상엔 좋은 음악이 여전히 많이 만들어지고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현대음악을 다루지만 이들의 음악적 취향은 특정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온갖 음악 장르를 어떤 편견도 없이 자유롭게 넘나든다. 이들에게 현대음악은 죽어가는 과거의 ‘신음악’이 아니라 말 그대로 시대와 호흡하는 당대의 음악인 것이다. 지난 8개월간 업로드한 13회분의 누적 청취횟수가 2만이 넘었다니, ‘제발 한 번만 들어봐주세요’라는 코너 이름처럼 이들의 바람이 조금씩 자장을 넓혀가고 있는 듯하다.
몇 달 전 웹진 형태로 나온 음악비평동인 ‘헤테로포니’의 존재도 더없이 반가웠다. 담론과 비평이 취약한 음악 분야에서, 국악/전통음악, 클래식/현대음악, 노이즈/실험즉흥음악, 대중음악의 서로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는 네 명의 젊은 필진이 한데 모여 주기적으로 글을 발표한다니 말이다. 주류 매체에서 놓치는 지점들을 예리하게 파고들고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흥미로운 음악현상들을 다루며 이들이 던지는 화두는 현재 음악문화를 반추하는 자극제가 된다. 서로 다른 개성의 성부들이 비슷한 선율을 조금씩 다르게 연주하며 어우러지는 ‘헤테로포니’처럼, 각자의 시선들이 부딪치고 뒤섞이며 이들이 기록해나갈 우리 시대의 음악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지난 연말엔 우체국에서 탈바꿈한 창천동의 한 문화예술공간에서 며칠간 아트마켓 형태의 현대음악 플랫폼이 열리기도 했다. ‘atm’(오디오 트레이딩 매뉴얼)이라는 이름의 행사를 기획한 청년 음악가는 국내외 현대음악 앙상블과 사운드 아티스트들을 초청해 연주·퍼포먼스·전시·워크숍 등을 마련하고 개별 아티스트들의 작업을 알리는 부스도 운영하며, 새롭게 창작되는 음악콘텐츠를 홍보·판매하는 독자적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금전적 이익이나 단기간의 가시적 성과에 따라 평가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청년 음악가들의 이런 창조적 실험들이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가운데 의미 있는 결실을 맺게 되리라 기대하긴 어렵다. 사회의 큰 관심을 받지 못하는 비주류 음악을 하는 이 청년들에게 국가의 지원은 너무나 보잘것없지만, 변화된 미디어 환경을 기반으로 이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전파하고 공감을 얻기 위해 진력하며 비슷한 문제의식을 지닌 이들끼리 연대한다.
세간의 주목을 받는 몇몇 이들만이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활동하는 청년 음악가들이 세상과 소통하며 자기만의 길을 열어갈 수 있을 때 우리 사회도 한층 성숙해지는 것 아닐까. 이들이 만들어갈 미래를 함께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올해도 나는 청년 음악가들의 활동을 열심히 쫓아다니려 한다. 기성세대로서 할 수 있는 것이 응원밖에 없어 미안하다.
<이희경 음악학자·한예종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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