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예술의전당이 개관 30주년을 맞았다. 88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부족한 문화 인프라 구축을 위해 건립된 이곳 음악당은 국내 첫 클래식 전용 공연장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회장의 위상을 누려왔다.
지난 30년간 한국 클래식 음악계는 외형적으로 눈부신 성장을 이뤘다. 그 과정에서 클래식 음악 관객층도 꽤 두꺼워졌다. 세계 유수 음악가와 음악단체들의 내한 공연은 고가 티켓에도 객석 점유율이 높고, 국내 음악단체의 공연도 참신한 프로그램과 신뢰할 만한 연주에는 관객이 모여든다. 그런데 매일 저녁 곳곳에서 넘쳐나는 음악회들을 보면, 과연 이렇게 많은 공연을 감당할 만큼 우리 사회의 클래식 음악 저변이 넓을까 싶기도 하다. 요즘처럼 음원 스트리밍이나 유튜브, 포털의 라이브 생방송 등으로 손쉽게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시대에 말이다.
실제 클래식 공연 가운데에는 음악을 듣기 위해 티켓을 구매하는 자발적 청중보다는 지인과 학생들로 채워진 자족적인 행사들이 많다. 유학이 흔치 않던 시대의 산물인 귀국 독주회, 임용이나 레슨에 필요한 실적을 위해 자비를 들여 만든 무대, 협회와 단체들이 매년 비슷한 포맷으로 진행하는 공연. 다들 나름의 의미가 있겠지만 이런 공연에 클래식 애호가의 발길이 가닿지는 않는다. 클래식 음악이 ‘그들만의 리그’로 비치는 것도 시대와 호흡하는 새로운 콘텐츠를 고민하기보다, 수십년간 비슷한 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먹이사슬로 얽혀 거대한 이익집단이 되어버린 클래식 음악계의 모습 때문이리라. 예술의전당은 그런 음악계의 구조화된 낡은 관행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변화 없이 적체된 클래식 음악 생태계에서 청년 음악가들의 상황은 암울하기만 하다. 기성세대보다 탁월한 음악적 역량을 지녔음에도 입시 레슨, 콩쿠르, 유학이라는 정해진 길을 거쳐 전문 연주자나 음대 교수로 살아남기는 너무나 어려운 시대이기 때문이다. 작년 가을부터 두 달에 한 번씩 열리고 있는 ‘영아티스트포럼’은 협소해지는 클래식 음악시장의 위기를 현장에서 절감한 기획자들이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보기 위해 만든 자리였다. 연사들은 예술의전당이 아니어도 곳곳에 유의미한 무대는 많이 있고, 세계적인 스타보다 주변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는 음악가가 필요한 시대임을 역설했다.
‘클럽M’이나 ‘첼로프로젝트’, ‘달려라 피아노’나 ‘클래식에 미치다’처럼 색다른 형태의 앙상블이나 콘텐츠를 직접 기획해 활동하고 있는 음악가들도 연습실에만 갇혀 있는 후배들에게 폭넓게 사회를 경험하며 자신의 장점을 찾아갈 것을 조언했다. 클래식 음악가들은 어려서부터 악기를 시작해 매일 연습에 매진하느라 세상과 소통하는 법에 익숙지 않은 경우가 많다. 특히 한국처럼 수십년간 콩쿠르와 악기 연습만 중요하게 여겨온 문화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음악가가 음악에만 집중하는 시대는 지나갔으며, 음악을 통해 하고 싶은 것을 스스로 찾아내고 그것을 현실화시키는 방식을 교육해야 한다는 지적에도 크게 공감이 갔다. 해외 음악대학에서는 ‘기업가정신’이라는 과목을 가르치기도 한단다.
세상은 급변하고 있는데 한국의 음악대학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고, 졸업 후 학생들의 선택지도 지극히 제한적이다. 기성세대는 자신의 기득권만 누릴 것이 아니라 도래할 미래 사회에서 예술의 역할을 고민하며 다음 세대에 길을 열어줘야 한다. 최근 예술가교사, 꼬마 작곡가 프로그램, 공적개발원조(ODA)의 음악교육 지원 등 다양한 형태의 음악 활동이 생겨나고 있음은 고무적인 일이다. 과잉 공급 상태인 시장의 파이만 키우려 하기보다, 세상 속에서 사람들과 만나며 음악으로 공감의 접점을 넓혀나가는 것이 더욱 필요한 때다. 현실에 대한 처절한 인식과 세상과 소통하려는 절실한 노력이야말로 클래식 음악의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출발점이 아닐까. 그리하여 지난 세월 특정 계층의 전유물로 여겨져왔던 클래식 음악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자신의 존재의미를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날을 꿈꿔본다.
<이희경 음악학자 한예종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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