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생활에 타격을 입으면서 삶을 돌아보게 됐다. 정신승리 같지만 긍정적인 점이다. 더 이상 수동태로서의 삶에는 미래가 없다는 걸 확신했다. 삶을 재구성해보기로 했다. 일이 들어오길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일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버젓한 어른이라면 창업을 한다거나 시장을 분석하는 그럴듯한 계획을 세우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어른으로 자라지 못했다. 해보고 싶었던 프로젝트를 해보기로 했다.
나는 글쓰기를 배운 적이 없다. 어릴 때부터 제법 글을 쓰는 편이었고, 운 좋게 글로 밥을 먹은 지 20년 가까이 되니 어떤 주제를 어떤 방식으로 써야 한다는 감각은 있지만 그걸 스스로의 이론으로 정립하지는 못했다. 그러니 한창 글쓰기 강의가 성행할 때도 제의에 응할 수 없었다. 사기꾼이 될 수야 없지 않은가. 그런 와중에 글쓰기 수업을 하나 열었다. ‘음악이 글이 된다면’이란 제목으로. 음악 글쓰기 수업이지만, 평론이나 칼럼 쓰기는 아니다. 가르칠 자신도 없거니와 누가 그걸 원하겠는가.
음악은 비언어적 예술이다. 영화, 문학과 달리 음악은 언어와 분리되어 성립했다. 언어를 넘어서 듣는 사람의 마음과 공명한다. 그래서 보편적이다. 가사뿐만 아니라 멜로디와 리듬, 그리고 쌓아올린 소리들이 장벽을 뚫고 뇌와 반응한다. 2시간짜리 영화와 350쪽짜리 소설은 몇 줄의 줄거리로 요약될 수 있지만 음악은 요약되지 않는다. 3분30초에서 15분27초까지, 소리가 채우는 시간이 완료되었을 때 하나의 심상으로 완결된다. 그 심상은 대개 보편적이다. 더 많은 이들이 보편적 심상을 얻을 때, 그 노래는 히트곡이 된다.
하지만 이 보편적 심상은 개별화된 언어로 표현된다. 비언어이기 때문에 더 많은 언어로 태어난다. 음악에서 언어를 길어내기 위해서는 깊게 들어야 한다. 스마트폰으로 웃긴 글을 읽어가며 BGM처럼 들어서는 곤란하다. 지금보다 음악을 진지하게 듣는 사람이 많았던 시절, 즉 음악을 들으며 할 수 있는 딴짓이 별로 없던 때에 대중음악에 대한 담론이 탄생했던 이유다. 그런 시간을 함께 가져보고 싶었다. ‘음악에 대해 글쓰기’가 아니라 ‘음악으로 글쓰기’가 테마였던 동기다.
다행히 몇 사람이 모였다. “이 수업은 음악 안에 담겨 있는 세계를 우리가 가진 언어로 번역해보는 시간이에요”라고 말한 후 예시가 될 글 몇 편을 읽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빌리 홀리데이에 대해 쓴 글, 정바비가 일본 밴드 스피츠에 대해 쓴 글 같은 것들을.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서로 교환한 후 함께 듣고 그 노래들의 느낌을 써보는 것으로 첫발을 떼었다. 데이비드 보위의 ‘스타맨’에 대해 30대 후반의 A는 “조카에게 윙크하면서 하는 위로”라고 썼다. 20대 후반의 B는 “서로에게 선을 긋기 전에 함께 춤추자”라고 썼다. 30대 중반의 C는 어릴 때 친했던 집안 언니를 생각하며 “언니는 나와 자기 사이에 어른과 아이라는 선을 긋기 전에 함께 춤을 추어준 사람, 나의 스타맨이었다”라고 썼다. 세라 매클라클런의 ‘에인절’에서 사람들은 모두 ‘치유와 위로’를 공통의 단어로 표현했다. 자세한 묘사는 무척 달랐다. ‘체온이 닿는 포옹’부터 ‘잔잔한 물결 같은 위로’까지. 보편적 감성은 그렇게 개별적 언어가 됐다. 음악은 글이 되었고, 나는 동일한 곡이라는 촉매제에서 서로 다른 결과가 나오는 이 화학 반응이 그저 신기했다. 그렇게 한 주에 한 번, 네 번 수업을 진행했다. 처음에는 한 문장이었지만 마지막에는 한 문단씩을 학생들은 썼다. 삶과 환경과 정서에 음악이 촉매제가 되어 문장으로 승화됐다.
수업이라 생각했지만 실험이었다. 나는 이 재미있는 실험을 계속하고 싶어졌다. 음악을 함께 나누고 자신의 언어로 감상을 즐기는, 예전 음악동호회들의 공통된 문화를 작게나마 되살려보고 싶어졌다. 음악을 사랑하는 또 하나의 방법을 이렇게 이어가고 싶어졌다.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noisepo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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