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에게 올해는 ‘베토벤의 해’가 될 예정이었다. 탄생 250주년을 맞아 연초부터 베토벤을 기념하려는 공연 일정들이 쏟아져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상반기 일정은 코로나19로 인해 대부분 취소됐고, 많은 이들이 지난 과거보다는 ‘코로나 이후’를 상상하며 미래를 대비하는 데 주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사태가 조금 진정세를 타자 잠시 사그라들었던 베토벤 250주년이 다시 화두에 오르고 있다. 코로나 시대의 베토벤이라니. 애초에 서구 클래식이 대단히 오래된 음악이긴 하지만 요즘은 특히 더 먼 과거처럼 느껴진다.
베토벤의 음악은 서양음악의 핵심적인 ‘정전’(canon)으로 여겨지며 서구 음악인들에게 각별한 사랑과 존경을 받아왔다. 물론 대단히 상징적인 위치에 자리한 만큼 냉정한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도 피할 수 없었다. 일례로 베토벤의 교향곡은 페미니즘 음악학이라 분류되는 수전 맥클러리의 연구에서 뿌리 깊은 남성중심적 문화를 깊게 체화한 음악으로 상정되어 비판의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베토벤의 음악은 서양음악사에서 단연 가장 시끌시끌한 공론장 중 하나였고, 그것이 긍정이든 부정이든 베토벤이라는 존재는 꽤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왔다.
그간 수많은 ‘위인전’들은 베토벤의 인생에서 청각장애라는 운명에 굴복하지 않은 불굴의 의지를 읽어냈고, 서구 음악의 역사는 그가 이루어낸 음악적 혁신에 주목했다. 음악가와 청중은 베토벤의 음악으로부터 어떤 영웅적 서사가 펼쳐졌다가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광경을 거듭 만들고 지켜봤다. 오늘날 베토벤의 음악은 의심의 여지 없는 대작들로 여겨지지만 당시에 이 음악은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음악엔 한눈에 파악하기 어려운 구조적 전략이 숨어 있었고, 때로 거칠게 접합된 구조들은 소리의 표면으로 튀어 올라 불협화와 이해하기 어려운 진행을 만들어냈다. 한 음악학자는 그 역사를 되돌아보며 당대 청중들이 베토벤을 듣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당시엔 물음표 가득한 음악이었겠으나, 지금은 그 중요성을 부인하기 어려운 의미 있는 작품으로 변화한 것이다.
그 변화를 추동한 힘에 대해서는 더없이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나, 최근 번역·출간된 책 <소리 잃은 음악: 베토벤과 바버라 이야기>는 베토벤에 대해서 우리가 생각해보지 못했던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가 발표한 더없이 독창적인 작품들은 ‘귀가 들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귀가 들리지 않은 덕분에’ 가능했던 것은 아닐까. 그의 명성을 높인 작품들의 창작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펜과 건반을 모두 활용해 새로운 소리와 짜임새를 빚어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 그는 본의 아니게 자신의 음악적 두뇌뿐 아니라 후세 사람들의 음악적 두뇌를 ‘재배선’했는지도 모른다.”
베토벤의 음악을 단순히 음악적 혁신을 이끌어낸 정전으로 보거나 그를 위대한 인간으로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의 음악을 통해 우리의 음악적 두뇌가 ‘재배선’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추측하는 이 대목은 음악적 상상력을 베토벤 너머로 훌쩍 이끈다. 어쩌면 우리가 계속해서 베토벤을 기억하고 그의 존재를 중요히 여기는 이유는 그 음악 자체를 너무나 좋아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하나의 ‘음악적 사고회로’를 건설한 인물이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베토벤 250주년을 맞아 다시 한번 그의 음악을 떠올리며, 지금 어떤 거칠거칠한 소리의 표면 아래에서 우리의 음악적 두뇌를 재배선하고 있는 음악은 무엇일지 상상해본다.
<신예슬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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