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청와대에 계신 그분께서 2012년 12월 제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던 날, 때맞춰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이 개봉되었다. 적어도 절반에 가까운(어쩌면 그 이상이었을) 한국인들에게는 참담한 선거 결과가 나왔지만, 그들의 정치 성향에 좀 더 호소할 만한 이 영화는 흥행에 성공한 편이었다. 일부 평론가들은 선거 결과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혁명을 노래하는 영화를 보면서 ‘힐링 체험’을 했을 것이라 분석했다. 작품 속 혁명 가요로 불리는 ‘민중의 노래 소리가 들리는가?(Do you hear the people sing?)’가 대선 직후부터 이어진 여러 촛불집회의 운동 가요로 들리기 시작했던 사실에 비추어 보면 그런 듯도 하다.
하지만 당시 이 노래 속의 ‘민중’이라는 단어는 적잖이 낯설게 들렸다. 민중은 이미 한국의 ‘대중’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용어가 되었던 터이기에 그렇다. 2008년 광우병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서부터 그런 면모는 두드러지게 나타났는데, 낡은 ‘민중가요’는 시민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지는 새로운 시위문화에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다는 인식이 당시에 널리 공유되었다. 같은 맥락에서 민중이라는 단어 자체에 대한 거부감도 공공연히 드러났다. 집회 참가자들은 민중이라는 적잖이 비장하고 전체주의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진 집단에 속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영화 <레 미제라블>의 한 장면. UPI코리아 제공
결국 ‘민중의 노래 소리가 들리는가?’와 같은 민중이라는 단어가 담긴 노래가 2010년대의 집회 현장에서 큰 거부감 없이 불릴 수 있었던 것은 역사를 되돌린 퇴행적 정권의 탄생과도 관련이 있겠지만, 뮤지컬이라는 대중적 음악 양식이 민중가요의 이미지나 민중이라는 단어의 정치적 함의를 어느 정도 중화시켰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민중가요의 특수한 양식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민중가요의 의의와 정체성은 생산과 유통, 소비의 ‘불온성’에 있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초까지 한국의 민중가요는 구술적 연행(演行)과 비합법 음반 매체(‘불법 테이프’) 사용이라는 특징이 결합되면서 범주화되었다. 구술적 연행은 멀리 민요 전통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겠지만, 대안적 매체로서 불법 테이프의 활용은 당시의 민중가요를 특징짓는 중요한 물질적 요소였다. 1990년대 초 정태춘이 ‘대중음악가’에서 ‘민중음악가’로 정체성을 변화시키는 과정도 그랬다. 그는 당시 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심의를 거부하고 ‘아, 대한민국’과 ‘1992년 장마, 종로에서’와 같은 ‘불법 테이프’를 제작하고 유포했다.
한국의 민중가요, 곧 ‘민중의 노래’는 이렇듯 초법적 권력에 맞선 초법적 저항의 몸짓과 목소리에서 비롯되었다. 그 ‘민중의 노래 소리’에 힘입은 바가 컸음에도, 한국사회가 1990년대 후반에 이른바 ‘절차적 민주주의’를 달성했다고 자부했을 때 민중은 그 기능과 역할을 다한 것으로 여겨져 용도 폐기되었다. ‘국민’이나 ‘대중’이라는 이름으로, 그 시대의 새로운 관용어로 말하자면, 인수·합병 처리되었다. 정권교체를 이룬 한국인은 ‘민중의 정부’가 아닌 ‘국민의 정부’를 기꺼이 받아들였고, 김민기의 ‘상록수’가 박세리의 여자프로골프리그(LPGA) 우승 장면의 배경음악으로 쓰이는 음악사의 반전을 보고 즐겼다. 그렇게 민중을 버리고 자발적으로 국민이 된 이후 스무 해 남짓 지나고 보니 어느 샌가 역사는 민중가요 이전의 시대로 되돌아가 있다.
세계와 소통하는 세련된 음악들이 만들어지고, 권력의 통제 밖에서의 매체 활용 또한 얼마든지 가능한 시대지만, 그 어느 때보다 음악이 권력자에게 별다른 위협이 되지 못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민중가요의 시대보다 더욱 치졸하고 망상적이며 몰상식한 초법적 권력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는 지금, 우리는 다시 묻고 있다. 민중의 노래 소리가 들리는가? 청와대와 여의도의 정치인들에게만 던질 물음이 아니다. 우리 자신이 오래도록 그 불온한 목소리를 자기 검열해 왔는지도, 아니 지금도 그 목소리에 스스로 귀를 닫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최유준 전남대 HK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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